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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노동부가 ‘퇴직연금의 투자 활성화’를 통한 자본시장 육성에 발 벗고 나선 모습이다. 최근 2주 사이 퇴직연금 관련 보도자료를 속속 내놓으면서 기획재정부 중장기전략위원회가 지난 19일 발표한 ‘미래세대 비전 및 중장기 전략’에 발을 맞추는 모양새다. 이를 두고 공무원 조직 내부와 시민단체에서는 불편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와 다소 거리가 먼 일에 고용부가 적극적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고용부를 선두로 정부가 노동자를 대상으로 ‘불완전판매’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고용부(장관 김문수)는 최근 보도자료를 통해 “퇴직연금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드옵션)의 내실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면서 해당 상품의 수익률 등을 공개했다. 여기서 말하는 디폴트옵션이란 퇴직연금 가입자가 운용 지시를 내리지 않을 경우 사전에 정해둔 묶음 상품으로 자동 운용되는 제도를 말한다. 묶음 상품 속에는 예금처럼 원금이 보장되는 것뿐만 아니라 주가나 경제 상황에 따라 수익률이 변하는 투자형 펀드 등도 포함된다. 원금이 보장되지 않는 상품이 많이 포함될수록 고위험형으로 분류된다.
이와 관련 고용부는 “은행과 증권사 등 41개 금융기관에서 판매하는 315개 상품이 지난해 불안정한 금융시장 상황 속에서도 안정적인 수익률을 보이면서 퇴직연금 시장에서 상품 경쟁력을 입증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중위험 또는 고위험 등급의 68개 상품의 연간 수익률(지난해 4분기말 기준)이 15%를 초과한 것을 근거로 제시했다.
다만 비원금보장형 일부 상품(15개)의 연간 수익률이 0%를 기록한 점은 발표 자료에서 빠졌다. 이 가운데 한 상품의 경우 1개월과 3개월 수익률이 각각 -0.75%, -2.31%를 기록, 단기적으로 손실전환된 점도 알리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고용부는 “디폴트옵션 제도 도입 취지가 수익률 제고에 있기 때문에 정부는 원리금보장상품에 편중된 현상을 완화하기 위한 제도 개선을 지속 추진하고 있다”며 “올해부터 상대적으로 수익률이 낮은 원리금보장상품의 편중 정도를 알림으로써, 가입자에는 적극적인 투자를 유도한다”고 강조했다.
위험 명칭 빼고 적극 투자 유도...불완전판매 지적도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방안도 제시됐다. 올해 4월부터 모든 디폴트옵션 상품의 명칭을 △초저위험→안정형 △저위험→안정투자형 △중위험→중립투자형 △고위험→적극투자형 등으로 변경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 고용부는 “현행 디폴트옵션 상품 명칭은 ‘위험’을 강조하고 있어 합리적 투자를 저해하는 측면이 있었으나, ‘투자’ 중심으로 명칭을 변경함으로써 가입자 성향에 적합한 디폴트옵션 상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퇴직연금의 고위험 상품 투자를 직접적으로 권유하는 모습이지만, 투자 과정에서 유의할 점에 대해선 고용부의 언급은 없었다. 금융권에서는 안정추구형 투자자에게 고위험 상품을 추천하는 것은 ‘불완전판매’로 인정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실제 금융당국은 원금 비보장형 펀드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ELS(주가연계증권)를 판매한 금융사에 ‘상품의 위험성을 투자자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라는 이유로 수조원대 배상액을 지급하라고 결정한 바 있다.
더욱이 투자 환경은 최근 우호적이지 않은 상황이다. 트럼프 2기 정부 출범에 따른 보호무역 강화로 대외 불확실성은 증가했다. 또 건설경기 침체로 올해 우리 경제의 전망은 밝지 않다. 한국은행도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2.3%(2023년 11월)에서 2.1%(2024년 5월), 1.9%(2024년 11월)로 점차 하향했다. 2월에는 1.5%로 다시 낮췄다. 이처럼 고위험 상품 투자에 있어 위험 요소가 증가하고 있다.
금융사 배불리는 정책...공직 내외부 의심스런 눈초리
시민단체와 공무원 내부에선 한 목소리로 고용부를 비판했다.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회장은 “정부가 할 일은 아닌데 왜 그런 일을 하죠”라고 반문하면서 “투자자의 자율적인 판단에 의해서 가입·투자하는 것을 정부가 관여한다는 것 자체가 옳지 않다. 무슨 다른 뜻을 가지고 있다면 더욱 더 바람직하지 않은 정책”이라고 일갈했다.
국가공무원노동조합(국공노) 관계자도 “공무원뿐만 아니라 노동자 대부분은 안정적인 노후를 위해 예적금과 같이 원금을 보장받을 수 있는 상품 투자를 선호한다. 퇴직연금을 위험 감수하면서까지 투자할 이유가 있는가. 더욱이 노동자 권익을 보호해야 할 고용부가 투자를 적극 권유하고 있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노동부의 바람대로 위험상품 투자 비중이 늘어나면 금융사들은 반길 일이다. 수익 구조 개선뿐만 아리라 퇴직연금의 적극적 투자를 통해 증시 선순환 구조도 구축할 수 있어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초저위험 상품의 경우 수수료가 거의 없다. 위험상품으로 갈수록 수수료가 늘어나는 구조다. 초고위험 상품의 경우 1%를 넘는 것도 있다”고 밝혔다.
고위험 상품이 늘어날수록 수익구조가 2배 이상 커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금융사의 퇴직연금 운용 수수료 수익은 1조4000억원이다. 퇴직연금의 고위험 상품 비중이 늘어날 경우 금융사들은 최소 3조원 이상 수익을 낼 것으로 추산된다.
고용부 “투자 수익 기회를 주는 것...금융당국 싫어할 이유 없어”
이런 논란에 고용부 김부경 퇴직연금복지과장은 “디폴트옵션의 경우 선정위원회에서 심의하면서 아주 위험한 상품이 걸러진다. 고용부가 철저히 관리 감독을 하고 모니터링과 평가한다. 안정성이라는 가치를 버리지 않고 있지만 수익성도 잡아야 된다는 입장”이라며 “무지에 의해서 단순히 원금보장형인 예적금에 아무 생각없이 넣는 선택을 하는 건 지향해야 한다. 상품 라인업을 알려 수익을 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너무 지나친 초저위험에 편중되는 현상은 문제”라면서 “노후 생활에 직접적으로 얼마나 풍요롭게 살 것인가에 대한 자금을 운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합리적인 투자를 통해 적정 수익률을 내야하는 게 기본이 아니겠는가”라고 강조했다.
금융당국이 해야 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선 “자본시장 활성화를 위해서 퇴직연금 자금이 투입된다는 식의 관점은 아니지만 (투자위험을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았다고) 금융당국도 싫어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금융당국이 적극적으로 주식에 투자하라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세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