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앤장 선임하고도 무릎 꿇은 한국기원, 다른 대책 없나

김앤장 선임하고도 무릎 꿇은 한국기원, 다른 대책 없나

한국 바둑 총본산 한국기원, ‘바둑 유튜버’ 김성룡에 소송전 5전 5패 수모
2015년부터 ‘기보저작권’ 주장해온 한국기원…중계권 위주로 전략 바꿔야
법조계·저작권 전문가, 이구동성으로 “바둑 기보에 저작권 있을 수 없어”

한국기원 조직도. 홈페이지 갈무리

한국기원이 국내 최고 법률사무소로 손꼽히는 김앤장을 선임하고도 ‘바둑 유튜버’ 김성룡과 소송전에서 5전 5패 수모를 당했다. 일각에서는 지금이라도 전략을 바꿔야 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6일 쿠키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한국기원은 지난 2021년 1월부터 김성룡과 법적 다툼을 시작했다. 부정경쟁방지법 본안 소송을 청구한 한국기원은 ‘23만 구독자’를 보유한 국내 1위 유튜버 김성룡이 소송 기간 동안 바둑 방송을 하지 못하도록 가처분을 냈다. 본안 소송에 앞서 치른 가처분 소송에서 1심·2심에 이어 대법원 상고심까지 패배한 한국기원은 본안 소송에서도 1심과 2심을 모두 졌다. 본안 소송도 상고심까지 가게 됐지만, 결과가 뒤집힐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 법조계의 분석이다.

한국기원 입장에선 다소 억울한 측면이 있다. 바둑 유튜버들이 중계를 하고 있는 바둑 대회는 대체로 한국기원이 주최·주관하는 프로 기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략이 잘못됐다는 지적이 일관적으로 나온다. 바둑계에서 ‘기보’라고 부르는 것은 바둑 기록으로, 바둑판에 착수된 돌의 순서를 일정한 형태의 기보 용지에 적은 경기 기록지다. 법조계와 저작권 전문가들은 바둑 기보가 야구 기록지 등 스포츠 기록과 동일 선상에 있는 것으로 본다. 2심 재판부가 “속보는 공개된 즉시 상업적 가치가 소멸해 과거의 역사적 사실이 된다”면서 “공개 이후에는 속보의 사용을 금지할 수 없다”고 판시한 것도 같은 이유다.

저작권 업계 전문가는 쿠키뉴스에 “저작권이 발생하려면 그것이 어떤 아이디어를 독자적으로 표현한 창작물이어야 한다”면서 “바둑 기보에 저작권이 생긴다면, 특정 수법에 ‘특허’를 내는 것이 가능해지는 등 이용자들의 권리가 침해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축구나 야구에서 경기 결과를 기록한 내용에 저작권이 없는 것도 같은 이치”라고 부연했다.

한국기원은 지난 2015년부터 “기보는 저작물”이라고 주장하는 내용을 홈페이지 공지사항에 게재하고 있다.

하지만 차이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먼저 축구나 야구와 같은 스포츠는 유튜버들이 이른바 ‘입중계’라고 표현하는 방식으로 라이브 중계를 진행한다. 경기 화면을 전혀 보여주지 않고 다른 장면을 띄워놓은 상태로 시청자들과 대화를 나누며 중계를 하는 방식이다. 반면 바둑은 법원에서도 언급했듯, 컴투스타이젬 등 온라인 바둑 업체들이 바둑 기보를 실시간으로 공개하고 있다. 바둑은 대국자의 행동을 실시간으로 관찰하는 것보다 바둑판에 어떤 수를 뒀는지가 더 중요한 마인드스포츠 종목이다. 따라서 인기 유튜버 김성룡과 같이 바둑판을 띄워놓고 바둑 수에 대한 해설을 재밌게 할 수만 있다면 시청자들이 굳이 중계방송을 볼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한국기원이 운영하는 바둑TV 공식 채널 시청자 수가 김성룡이 운영하는 ‘김성룡 바둑랩’ 채널보다 시청자 수가 현저히 적은 것이 이를 방증한다.

한편 김성룡은 쿠키뉴스와 통화에서 “한국기원에 국내 대회는 라이브를 하지 않고 세계대회만 중계하겠다는 절충안을 제시했는데 기원이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성룡은 “1년에 라이브 하는 바둑이 150판이 넘는데, 이 중 세계대회는 50판이 채 안 된다”면서 “한국기원의 체면과 입장을 고려해 손해를 감수하고 제안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기원 측은 법원의 중재로 진행한 협의 단계에서 이사를 맡고 있는 김현석 법무법인 수호 대표 변호사를 앞세워 김성룡과 소통했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이후 소송전에서 연전연패하면서 이제 다른 돌파구를 찾기도 여의치 않은 국면이다.

올해 연말께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이는 본안 소송 상고심까지 패한다면 한국기원은 막대한 소송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 쿠키뉴스는 김성룡이 제안한 합의안을 받지 않은 이유와 소송 비용 마련 대책 등에 대해 질의했으나 한국기원은 답변하지 않았다.
이영재 기자
youngjae@kukinews.com
이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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