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 싸인 ‘의대 배정 절차’…교육부 직원이 손으로 쓴 뒤 ‘파쇄’

베일 싸인 ‘의대 배정 절차’…교육부 직원이 손으로 쓴 뒤 ‘파쇄’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왼쪽)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교육위원회와 보건복지위원회의 ‘의과대학 교육 점검 연석 청문회’에 증인으로 참석해 엄무보고를 마친 뒤 자리에 앉고 있다. 연합뉴스

‘배정심사위원회 회의록 파기’ 논란이 청문회를 뒤덮었다. 정부가 ‘의과대학 정원 배정’이라는 사안의 민감성 때문에 심의 회의 내용을 수기로 작성했으며, 메모 후 파기했다고 시인하면서다. 야당은 회의 결과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냐며 공세하고 나섰다.

‘파기’ 된 배정위 회의 요약본…“신빙성 어떻게 증명하냐” 비판

국회 교육위원회와 보건복지위원회가 16일 개최한 ‘의과대학 증원에 따른 의대 교육 점검 연석 청문회’에서 정원 배정심사위원회(배정위) 회의록 논란이 도마에 올랐다. 

배정위는 지난 3월 정부가 의대 증원 규모를 2000명으로 결정한 뒤, 이를 대학별로 어떻게 나눌지 결정한 회의체다. 회의 결과를 토대로 정부는 서울에 위치한 의대는 정원을 배정하지 않았고 경인권에 18%, 비수도권에 82%의 증원 정원을 배정했다.

논란은 정부가 배정위 회의록 원본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히며 시작됐다. 법적으로 회의록 작성 의무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배정위는 법정기구가 아닌 장관의 자문을 위한 임의 기구”라며 “배정 사항이 워낙 민감하기 때문에 배정위원을 임명할 때 저희가 개인정보는 보호하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청문회에서 배정위 회의 개최 일정과 장소는 처음으로 공개됐다. 교육부에 따르면 배정위 회의는 지난 3월15일부터 18일까지 3차례 개최됐다. 회의 장소는 첫 번째 회의 땐 정부서울청사에서, 두 번째는 정부서울청사와 정부세종청사에서 영상회의로 진행됐고, 세 번째 회의는 정부서울청사 인근에서 이뤄졌다. 김영호 국회 교육위원장은 “서울정부청사 인근이라고 돼 있는데, 식당에서 한 거냐”고 물었고, 오석환 교육부 차관은 “확인 뒤 말씀드리겠다”고 답했다. 

배정위 위원 명단은 여전히 극비에 부쳤다. 몇 명이 참석했는지, 이름을 지우고 자료를 제출하라는 국회의 요청에도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김 위원장은 “기본적인 자료도 제출하지 않으니, 많은 국민과 국회 위원들도 ‘떳떳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심지어 회의 요약본은 수기로 작성했으며, 이마저도 파쇄한 상태다. 강선우 복지위 더불어민주당 간사는 “(배정위) 위원들이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도록 녹음을 하지 않았으며 회의 내용을 기록하지도 않았고, 단지 교육부 직원이 손으로 메모를 했다. 손으로 메모한 것에 기초해 회의 결과물을 작성했고, 그 메모는 파기했다고 말씀했는데, 맞냐”고 물었고, 오 차관은 “그렇게 듣고, 그렇게 알고 있다”고 말했다. 강 의원은 재차 “(교육부 직원이 수기로 작성한) 메모를 파쇄한 것이 맞냐”고 묻자, 심민철 교육부 인재정책기획관이 “그렇다”고 답했다. 강선우 간사는 “회의 참고 자료, (실무자) 메모까지 다 파쇄했다면, 회의 결과의 신빙성을 어떻게 증명하겠느냐”고 꼬집었다.

교육부가 배정위 회의록 원본을 파쇄했다고 밝혔다가, 애초에 회의록을 작성한 적이 없다고 답하는 등 말을 뒤집자, 청문회를 잠시 정회하고 속기록을 확인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오 차관은 “회의 결과서(회의록 원본)를 파쇄한 것은 아니다. 회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참고자료를 활용했는데, 최종 결과가 정리돼서 이를 파쇄했던 것”이라며 “혼란을 일으켜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배정위 회의록은 애초에 없었고, 파쇄한 것은 참고자료였다는 것이다.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교육위원회와 보건복지위원회의 ‘의대 정원 증원에 따른 의대 교육 점검 연석 청문회’가 개최됐다. 연합뉴스

충북도청 공무원 참석 의혹…교육부 “확인 못 해”

배정위 명단이 베일에 쌓여있다 보니, 전국 의대 중 최대 규모로 정원이 증가하는 충북대를 향한 의심도 제기됐다. 충북대 의대 입학 정원은 종전 49명에서 200명으로 4배 이상 늘게 됐다. 다만 내년도에 한해서는 125명만 선발하기로 했다.

박주민 복지위원장은 “첫 번째 배정위 회의가 있던 날 김영환 충북지사는 ‘충북의대 정원이 200명으로 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페이스북에 썼다. 충북도청 관계자가 배정위 회의에 참석했다는 보도도 있었다”며 “의대 증원은 김 지사의 지방선거 공약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합리적 근거에 기반해 결정돼야 할 사안임에도, 정치적 고려 아래 이런 판단(정원 배정)이 된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면서 “충북도청 관계자가 회의에 참석한 것 맞냐”고 따져 물었다. 박 위원장이 여러 차례 물었음에도 심 기획관은 “확인해드릴 수가 없음을 송구하게 생각한다”는 답변만 반복했다. 

교육부 “배정위 운영, 숨길 것 없이 정정당당”

다만 교육부는 의대 정원 배정이 적절하게 이뤄졌다는 입장이다. 이 부총리는 "배정위 운영에 있어 결코 부끄러움이나 숨길 것 없이 정정당당하게 했다"고 강조했다. 

배정위에 대한 불신이 크기 때문에, 의대 정원 재배정을 논의하자는 김영호 위원장의 제안도 거절했다. 이 부총리는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의 벽이 정말 의료 분야에서 높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또 정부가 의료계를 이기지 못한다는 믿음도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배정위의 배정은 간호대나 약대 등 교육부가 쭉 해오던 일”이라며 “(회의록 작성을 하지 않은 건) 그런 관행을 그대로 따라서 한 것이고, 기타 배정위에 비해 결코 투명성이나 공정성이 (없지 않다는 건) 자신이 있다”고 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김은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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