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양꿀 구매하셨나요? 자연을 학대하셨습니다” [꿀벌을 찾아서②]

“사양꿀 구매하셨나요? 자연을 학대하셨습니다” [꿀벌을 찾아서②]

사양꿀 생산, 기후위기 겹치며 꿀벌 실종 가속
가공식품에 사양꿀 대다수…소비 생태계 교란
벌꿀 생태계 악화 주범…“천연꿀 시장 보호해야”

5일 경기도 수원시의 한 양봉농가에서 꿀벌 집단 실종으로 인해 벌통과 벌집을 정리하고 있다. 사진=김건주 기자

사양꿀 생산·유통을 합법화한 정책들로 꿀벌들이 생존 위협을 받고 있다. 꿀벌 상태계와 유통 산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실정이다. 사양꿀 생산을 위해 설탕물만 먹은 꿀벌들은 영양분 보충이 부족해 죽거나 실종된다는 지적이다.

양봉업계에 따르면 꿀벌은 밀원의 화밀과 화분에서 탄수화물과 단백질 등을 얻고 면역력을 강화한다. 그러나 수익을 위해 사양꿀을 생산하며 설탕물을 먹이는 기간이 늘어나고, 꿀벌은 영양분을 섭취하지 못해 단명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설탕물 사료에는 밀원에 있는 필수 영양분이 없기 때문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전 세계 식량 90%를 공급하는 농작물 100여종 가운데 71%는 꿀벌의 수분으로 열매를 맺는다. 문제는 최근 이상기후와 꿀벌 ‘착취’가 맞물려 식량 작황 부진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5일 경기도 의왕에서 만난 장성범 한국양봉협회 경기지회 사무국장은 지난해 11월부터 올 봄까지 절반 이상의 벌통에서 벌이 사라졌다고 밝혔다.

장 사무국장은 “180여개였던 벌통이 30개까지 줄었다”며 “주변 농가들도 벌이 없어 지난해와 비교해 절반 가까이 작황에 타격을 입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2대째 양봉을 하고 올해 양봉으로 생계를 이어간 게 14년차이지만, 꿀벌 실종이 늘어난 것은 최근에 생긴 일”이라고 덧붙였다.

천연꿀 및 사양꿀 생산량. 그래픽=윤기만 디자이너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꿀벌의 공익적 가치 및 양봉 직불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꿀벌 생산성(군 당 벌꿀 생산량)은 주요 국가에 비해 낮은 수준이며 생산성 하락 추세는 지속되고 있다. 천연꿀 생산량은 2014년 대비 2021년 74.8% 감소했으나 사양꿀 생산량은 34.1% 증가했다. 농촌진흥청이 한국양봉농협과 한국양봉협회 자료를 인용해 확인한 결과에도 지난 2014년 3200톤이었던 사양꿀은 생산량은 2021년 6529톤으로 104%가 늘었다.

특히 꿀 외에도 양봉산업은 부가가치의 중요성이 있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꿀벌의 화분매개가치는 약 6조6001억원으로 추정된다. 2020년 벌꿀 생산액 1392억원의 47.4배에 해당하는 수치다.

그러나 사양꿀 생산이 늘고 밀원이 부족해지며 벌이 생존하기 힘든 환경이 계속되고 있다. 보고서를 작성한 송우진 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밀원 부족으로 인해 꿀 생산성 저하뿐 아니라 꿀벌의 질병, 기후 저항성을 악화시켜 집단 폐사로 이어지고 있다”며 “설탕물 사료에 의존하는 사양꿀 농가를 양산하고 기형적인 꿀벌사육 구조를 만드는 요인이 됐다”고 분석했다.

밀원 부족에 대한 양봉산업의 대응은 밀원 확충으로 이어진 게 아니라 설탕 사료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천연꿀 농가는 생산량 변동이 나타난 반면 사양꿀 농가는 안정적인 생산이 가능해져, 사양꿀 농가의 규모가 커지고 천연꿀 농가가 영세해지는 결과가 나타났다.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사양꿀 사용 제품들. 각각 (왼쪽부터)삼립 미니꿀약과, 동화양봉 사양벌꿀, 호연당 아카시아꿀물. 사진=김건주 기자

사양꿀 생산이 지속적으로 높아졌다는 증거는 마트에서도 찾을 수 있다. 우리가 구매하는 가공식품 중에서도 사양꿀이 제품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식품안전정보원 식품안전나라에 따르면 빵류 제조업 점유율 40%대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SPC의 대표 계열사 SPC삼립의 경우 제품명에 ‘꿀’이 들어간 빵류·떡류 등 38개 제품 중 ‘벌꿀(천연꿀)’로 표기된 제품은 꿀카스테라 등 4개가 전부였다. ‘당류가공품’, ‘꿀호떡필링’ 등으로 표기돼 어떤 꿀을 사용하는지 나타나지 않은 제품은 11개, 이 외 18개는 모두 사양꿀이 쓰였다.

오뚜기의 요리용 꿀이나 풀무원 올가홀푸드의 꿀유자차·꿀모과차 등에도 사양꿀이 사용되고 있다.

특히 꿀과 액상차 등을 제조하는 꽃샘식품도 제품명에 ‘꿀’이 포함된 제품 92개 중 28개에만 벌꿀을 사용했다. ‘꿀분말’로 표기된 제품 1개, 나머지 63개 제품은 모두 사양꿀이 사용됐다. 약 60%의 제품에 사양꿀이 사용되는 셈이다. 액상차를 생산하는 자임에프앤비는 제품명에 꿀이 들어간 22개 제품 전체에 사양꿀이 쓰였다.

편의점·마트 등에서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꿀물’에도 대부분 사양꿀이 쓰인다. 시중에 판매중인 꿀 음료 19개 제품 중 델몬트·썬키스트·미닛메이드 등 14개 제품에도 사양꿀이 함유됐다. 70% 이상이 사양꿀을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반면 천연꿀만 사용하는 업체도 있다. 대표 꿀과자 ‘꿀꽈배기’를 판매하는 농심의 경우 한국양봉농협으로부터 천연꿀을 구매해 식품 제조에 사용하고 있다. 농심 관계자는 “동반 성장을 위해 한국양봉농협에서 업계 최다 구매량인 연 150여톤의 국내산 아까시꿀을 구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송인택 한국꿀벌생태환경보호협회 이사장은 “기업들이 가공식품에 사양꿀을 계속 사용하는 것은 꿀벌 학대에 일조하고 있는 것”이라며 “영양분을 보충하지 못한 꿀벌들은 과로로 죽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한 양봉농가에서 벌들이 집단 실종해 비어버린 벌집이 바닥에 버려져 있다. 사진=김건주 기자

사양꿀은 소비자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지 않아 ‘꿀’이 들어간 제품이면 천연꿀을 사용한 줄 알고 구매하는 경우도 나타난다. 이 때문에 사양꿀이 소비자를 속일뿐만 아니라 천연꿀 생산 시장도 약화시킨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를 막을 방법은 무엇일까. 학계에서는 사양꿀 생산·유통을 근절하거나 사양꿀 명칭을 ‘설탕꿀’로 바꾸는 등 소비자들이 바로 알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설명이 나온다. 앞서 식품의약품안전처도 명칭에 ‘설탕’을 포함했었다. 지난 2015년 10월 공고한 ‘식품의 기준 및 규격 일부개정고시(안) 행정예고 2015-325호’를 보면 사양꿀의 식품 유형 신설 명칭은 ‘설탕사양벌(집)꿀’이다. 이를 통해 벌꿀류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를 회복하고 정보가 명확한 식품을 국민에게 제공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이후 적용된 명칭은 ‘설탕’이 빠진 ‘사양벌꿀’이었다.

이에 대해 식약처 관계자는 “행정예고 의견수렵에서 소비자 혼동 우려가 있다는 의견이 제출돼 자율표시제에서 사용했던 ‘사양벌꿀’로 고시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에 대한 비판이 지속되고 있어 기업에서도 천연꿀을 구매하는 흐름이 나타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철의 안동대 식물의학과 교수는 “최근 꿀을 사용하는 제품 중에도 ‘천연꿀을 사용합니다’ 같은 문구가 나오기 시작한 만큼 식품업계도 사양꿀의 존재로 인한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본다”며 “업계에서도 사양꿀을 수입 천연꿀로 대체하는 흐름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 천연꿀 양봉업자는 “꿀의 진정성을 보장하는 것이 소비자 신뢰를 유지하는 것”이라며 “정당하게 천연꿀을 생산하는 양봉업자들의 경제적 이익을 보호하는 데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김건주 기자 gun@kukinews.com

한국에서만 꿀로 취급하는 사양벌꿀 [사양꿀의 불편한 진실]

김건주 기자
gu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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