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교육청 충무교육원이 주관하는 창의융합 인문학 기행단이 지난 24일부터 30일까지 일본 체험학습에 나서고 있다.
이번 인문학 기행은 체험활동을 통해 학생들에게 역사과 시민의식을 고취시키고, 역사·문화·생태 감수성과 인문학 상상력을 심어주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충남 도내 고등학교 1학년 학생 30명씩 3개의 기행단을 선발해, 각각 역사와 문화, 생태를 주제로 일본의 연관된 지역과 명소를 탐방하고 있다.
이번 탐방을 통해 백제의 우수한 문화 전파의 이면에서 벌어진 일본의 한반도 침략과 관계된 슬픈 역사의 현장은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일본의 역사에서 고대부터 한반도와 관계된 것에는 찬란한 문화 전달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물음표가 찍혀있는 것이다.
특히 근래 들어서는 기술과 문화를 전한 한국의 영향력을 축소하기 위해 ‘도래인’을 은근히 한국이 아닌 ‘대륙’에서 전해졌다며 의도적 역사 왜곡을 시도하고 있다고 한다.
충무교육원의 ‘창의융합 인문학 기행’은 역사는 그렇다쳐도 일본에 그대로 살아 남아 있는 우리의 찬란하고 빛나는 문화유산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라는 고민 속에서 출발했다.
문화기행단은 7일 동안 일본 북큐슈 간사이 지방 탐방을 시작으로 오사카까지 이어진다.
첫날인 24일에는 한반도 농경문화가 전래된 규슈 사가현의 요시노가리 마을 유적부터 1592년 임진왜란 때 고향 공주에서 규슈로 끌려가 도자기의 신으로 추앙받는 이삼평을 모시는 신사, 이름없이 스러져간 조선 도공들의 영혼이 깃든 ‘도공무연탑’과 매화동산에 있는 ‘고려인의 비’를 찾았다.
이어 25일 둘째날에는 임진년 조선 침략의 전초 기지였던 히젠나고야 성터와 백제 무령왕의 탄생 동굴이 있는 가카라시마를 방문했다. 또 나당연합군의 공격에 대비한 방어시설 다자이후 청사 터와 백제 왕인 박사의 후손으로 학문의 신으로 일컬어지는 스가와라 미치자네를 신으로 모신 다자이후 텐만구를 체험했다.
26일 셋째날에는 시모노세키로 이동해 조선통신사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아카마신궁과 상륙기념비를 비롯해 청·일강화기념관, 근대화의 산물인 모지코항을 탐방하며 일본 문화와 그 안에 살아 숨 쉬는 우리나라 문화를 살펴봤다.
탐방 첫 걸음으로 찾은 요시노가리(좋은 평야란 뜻)는 약 3000년 전 마을이 조성되고 한반도의 농경문화가 전래된 곳이다.
일본 최대의 마을 유적으로 총 300m에 걸쳐 500여기에 옹관묘와 약 2100년 전의 역대 왕이나 그에 버금가는 신분의 귀족이 매장된 북분구묘 등 31채의 건물이 고증에 따라 깔끔하게 복원되어 있었다.
이곳에서 학생들은 한강 하류에서 금강까지 이어지는 중서부 해안지역에서 처음 등장한 토기와 동검 등이 일본열도에서도 발견돼, 우리의 문화가 전해졌을 것이라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느끼는 듯 보였다.
한 학생은 “우리 민족이 옛부터 동양문화 형성에 적극 공헌했으며 세계문화발전에 크게 기여해왔다는 사실에 가슴 뿌듯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이 지금 누리는 문화 혜택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탐색하는 과정에서 벼랑에 부딪히는 듯 보였다.
수천년에 걸쳐 문화를 전하고 교류하던 일본이 침략과 식민정책으로 한반도의 역사와 문화를 왜곡하고 우민화하려 했다는 사실에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백제인들로부터 받은 문화 전수의 혜택만도 이루 헤아릴 수 없는데 오히려 그것을 부정하고 멸시하는 풍조마저 보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도잔신사에서 예산여고 엄지영 학생은 일부 전시된 도자기를 둘러보고 “아름다운 모습에 눈을 뗄 수 없었다”면서 “이렇게 위대한 기술을 전한 사람이 바로 우리의 조상이라는 사실에 설레고 가슴 한켠이 뜨거워졌다”고 감동을 전했다.
그러면서 “자부심과 존경심을 마음에 새겨 미래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문화기행단의 걸음은 나고야 성터로 옮겨졌다.
전국시대 일본을 통일한 후 한반도 침략을 계획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출병지로 정하고 조선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 쌓은 나고야성은 지금은 건물 한 채 남아있지 않고 일부 성벽만 남아 권력의 무상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다만 입구쪽에 나고야성 박물관에는 원시시대부터의 역사 뿐 아니라 신라시대 금관, 불상, 이순신 장군의 초상화와 거북선 모형 등 한반도 문화를 짐작케하는 유물과 유품을 전시해 다소 객관적으로 전하고 있을 뿐이다.
기행단은 이어 훼리를 타고 백제 무령왕이 출생한 곳으로 전해 내려오는 가카라시마 섬의 동쪽 해안가에 위치한 동굴을 찾아 헌화·묵념과 함께 주변 환경정화 봉사활동으로 추모의 의미를 더했다.
문화기행단장인 덕산고등학교 임명진 교장은 “여기가 곧 학교이고 교실이다”라며 “교과서를 통해 배운 것을 현장에서 직접 접할 기회가 많지 않은데 오늘의 문화탐방을 자양분으로 대한민국의 인재로 자라가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곧바로 특히 조류로 인해 한반도에서 밀려온 온갖 해양쓰레기를 접한 학생들은 안타까움과 함께 미리 준비한 봉투에 차곡차곡 주워담으며 “백제 역사의 흐름에 동참한 것 같아 보람을 느꼈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탐방단은 시모노세키로 이동해 일본에 첫 발을 딛은 조선통신사가 묵었다던 아카마신궁 일대는 시간을 뛰어넘어 색다른 감흥을 불러온다.
조선통신사가 탄 배가 간몬해협에 들어서면 시모노세키에서는 화려하게 장식한 안내선 100여척을 보내 항구로 끌어당길 정도로 환대를 받았다고 한다.
반면 아카마신궁 인근 이토 히로부미와 청나라의 이홍장 사이에 체결된 시모노세키조약이 맺어진 청일강화기념관을 둘러보며 학생들은 전쟁에 졌을 때 치러야 하는 혹독한 댓가에 놀라워하는 모습이었다.
지난 3일간의 현장을 둘러 본 학생들은 일본에 문화를 전해준 은혜에도 불구하고 사실을 왜곡하는 일본의 행태에 놀라움도 드러냈다.
최근 일본 사회에서는 메이지 시대가 과장되고 미화된다고 한다. 현재의 일본인들이 그 시대를 동경하고 우익성향까지 더한다면 우리가 전한 찬란한 문화마저 언제 어떻게 왜곡될지도 모른다.
한 학생은 "우리 민족은 고대부터 백제에 이르기까지 동양문화 형성에 기여했는데 불구하고 이렇게까지 나오는 것은 한국의 성장에 위기감을 느끼는 것 아니냐"며 의젓한 평가를 내놓았다.
기행단은 2시간여 고속열차 신칸센을 타고 오사카로 넘어왔다.
일본 열도 중심부에서 아래쪽에 있는 긴키 지방에 속한 오사카는 한국과의 교류가 깊고, 한국인들 역시 가장 친숙하게 생각하는 곳이다.
문화기행단은 앞으로 4일간 오사카에 머물며 백제인의 혼과 빛나는 문화가 깃든 도다이지와 호류지, 다카마쓰와 이시부타이 고분 등을 방문한다.
일본 오사카=홍석원 기자 001hong@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