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되려고 재판하는 사회… “비극 끝내자” [누구나 아플 수 있다③]

장애인 되려고 재판하는 사회… “비극 끝내자” [누구나 아플 수 있다③]

대법원, ‘통증으로 인한 지체기능장애’ 처음으로 인정 
판결 마중물 삼아 현실에 맞는 장애 판정 기준 마련할 때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환자는 여러모로 힘들다. 밤낮 없이 괴롭히는 통증과 끝 모를 싸움을 해야 한다. 와중에 고통을 몰라주는 세상의 시선도 견뎌내야 한다. 그 탓에 몸의 병이 마음으로 번지기 일쑤다. 우리 사회가 이들의 등에 꽂힌 비수를 손톱 밑 가시쯤으로 여기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누구나 아플 수 있다.   

첩첩산중에 놓인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환자들이 바라는 건 많지 않다. 그들은 “병을 낫게 해줄 수 없다면 납득할 만한 장애 판정이라도 받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환자들이 원하는 ‘제도 개선’ 논의의 단초는 마련됐다. 대법원은 지난 2월 CRPS 환자가 장애를 인정해 달라며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제기한 장해등급결정처분취소소송 상고심에서 ‘통증환자를 장애인 등록에서 배제할 이유가 없다’고 판결했다. 환자 손을 들어준 것이다. 

대법원은 지난 2월 통증으로 인한 지체기능장애를 인정하는 첫 판결을 내놨다.   그래픽=이승렬 디자이너

최고법원인 대법원이 처음으로 ‘통증으로 인한 지체기능장애’를 인정하자 CRPS 환자 장애 판정 시스템을 개선하자는 논의에 불이 붙었다.

문호식 가톨릭대 은평성모병원 교수는 “통증의 강도를 객관화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 제대로 된 장애평가를 막는 허들”이라며 “현행 장애평가항목을 CRPS 중증도를 반영하는 합리적인 항목으로 바꿔야한다”고 했다. 문 교수는 “미국에서는 CRPS 장애 평가를 위해 다양한 검사항목을 제시한다”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의학적 근거도 없고 외국 사례도 없는 이상한 평가방법을 적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용우 환우회장은 CRPS로 인한 장애를 ‘심하지 않은 장애(구 장애등급 4~6급)’로만 판정하도록 만드는 장애판정기준을 이참에 뜯어고쳐야 한다고 외쳤다. 이 회장은 “청주지방법원(2017구합1365)·서울중앙지방법원(2005가합79450) 등 법원은 CRPS로 인한 장애의 심각성을 여러 번 인정했다. 이와 달리 장애심사 결과는 한결같이 ‘심하지 않은 장애’로만 나온다. 판정기준에 문제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국회서도 목소리를 냈다. 보건복지위원회에서 활동하는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은 “현재 장애인정 기준은 CRPS 장애인 당사자 상황보다 의료적인 면에만 치중돼 있다”며 “이를 보완한 선정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생각을 밝혔다.

장애인 정책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를 바꿔야한다는 의견도 냈다. 우리나라 장애인 복지정책이 ‘공급자 중심’이다보니 장애 판정에 매우 소극적이라는 지적이다. 이 의원은 “이러한 경향으로 인해 결국 수요자들이 실제 필요한 영역에서 사각지대가 발생한다”면서 “복지서비스를 제공받는 사람들을 선정하는 기준은 수요자의 상황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 객관적으로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막상 보건복지부는 장애정도판정기준(고시 제2022-167호)을 손볼 계획이 아직까지는 없다. 복지부 관계자는 “보통 고시는 1년에 한 번 정도 개정한다. 고시 개정에 앞서 개선요구 등을 취합한다”면서 “특별히 CRPS 관련해서 고시 개정을 계획하고 있지는 않다”고 밝혔다.

그래픽=이승렬 디자이너

장애심사기구를 개선해야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환자의 장애 여부나 등급은 국민연금공단 장애판정위원회에서 진단서·진료기록·검사결과 등을 검토해 결정한다. 이 장애판정위원회에 대해 최종범 아주대병원 교수는 “위원들의 전문성에 강한 의구심이 든다”고 했다. CRPS 환자 장애 판정을 할 때 의학적 판단을 우선 반영했다면 매번 이해할 수 없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거라는 취지로 풀이된다. 최 교수는 “CRPS를 전문적으로 진료하는 마취통증의학과 의사들이 장애판정위원회 주축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이와 관련해 국민연금공단 관계자는 “심사에는 원칙적으로 2명 이상의 자문의사가 참여한다”면서 “장애등급결정은 자문의사의 의학적 소견을 바탕으로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문 교수는 “CRPS 대부분은 증상이 매우 오래 간다. 심지어는 평생 갈 수도 있다”며 “2년마다 장애 재판정을 받도록 하는 건 너무 소모적”이라고 말했다. 환우회는 CRPS에 대해서도 ‘최초 장애 판정 이후 1회만 재평가’라는 통상적 기준을 적용하길 바랐다.

15년째 CRPS와 싸우고 있는 김민수씨(45·남)는 극심한 통증 때문에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할 수 없다. 외출할 땐 택시를 타는데 이것도 매번 고역이다. 콜택시를 부를 때 ‘몸이 불편하다’고 말하면 승차거부를 당하기 일쑤고, 미리 알리지 않으면 승하차 때 눈총을 받는다. 그는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할 수 있으면 사는 게 한결 나아질 것 같다”고 했다. 

김씨가 장애인 콜택시를 타려면 우선 CRPS 환자 장애정도판정기준이 바뀌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세상 밖으로 나갈 때마다 설움을 삼키며 살아가야 한다. 지금처럼.

신승헌 기자 ssh@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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