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환자는 여러모로 힘들다. 밤낮 없이 괴롭히는 통증과 끝 모를 싸움을 해야 한다. 와중에 고통을 몰라주는 세상의 시선도 견뎌내야 한다. 그 탓에 몸의 병이 마음으로 번지기 일쑤다. 우리 사회가 이들의 등에 꽂힌 비수를 손톱 밑 가시쯤으로 여기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누구나 아플 수 있다.
79년생 김민수씨는 한때 음료회사 원료배합원으로 일했다. 서른에 접어들던 2008년, 김씨는 작업 도중 물탱크 위에서 떨어져 척추와 꼬리뼈에 금이 가는 사고를 당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뼈는 붙었지만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병원 여러 곳을 돌아다닌 지 1년쯤 됐을 때 김씨는 자신이 CRPS 환자라는 걸 알았다.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Complex Regional Pain Syndrome). 이름도 생소한 이 병은 외상 후 신체 일부에서 극심한 신경병성 통증을 느끼는 희귀난치성 질환이다. 다친 것에 비해 훨씬 더 아프고, 손상 부위가 다 나아도 통증이 사라지지 않는 특징이 있다. 주로 팔다리에서 발생한다. CRPS는 대부분 외상이나 수술·시술 후 나타나는데 아직 정확한 원인은 모른다. 그러니 예방도 어렵다. 국내에 CRPS 환자는 1만~1만2000명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증상이 가벼운 복합부위통증증후군은 자연 치유되기도 한다. 하지만 마약성 진통제도 소용없을 만큼 심각한 경우도 있다. 어떤 환자는 옷깃이 스쳐도 극심한 통증을 호소한다. 김민수씨는 일주일 중 5일은 팔다리가 부러져있는 것 같은 통증을 겪는다고 했다. 나머지 이틀은 몸살 기운을 느끼는 정도라 그나마 견딜만하다고 했다.
대한통증학회 홍보이사인 문호식 가톨릭대 은평성모병원 교수(마취통증의학과)는 “CRPS는 통증이 잘 안 낫고 오래가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통증의 강도가 심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통증을 경증, 중등도, 중증으로 나눴을 때 환자 과반은 중등도 이상의 통증을 갖고 있는 것 같다”며 “이 가운데 20~25%는 중증의 극심한 통증을 호소한다”고 밝혔다.
김씨는 CRPS 진단을 받은 후 경북 문경시에서 경기도 수원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통원 치료를 했다. 심한 통증 때문에 대중교통은 이용할 수 없었다. 10여 년간 아버지가 자가용으로 자신을 실어 날랐다. 그러다 4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김씨는 아예 병원 근처로 터를 옮겼다.
고약한 병마에 시달리고 있는 김씨는 일 할 처지가 못 된다. 함께 사는 70대 어머니가 건물 청소를 하며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희귀난치병인 CRPS에는 건강보험 혜택이 폭넓지만 그에게는 일주일에 7만원가량인 약값도 부담이다. 김씨는 경제적으로 어려워 다른 치료는 못하고 있다고 했다. CRPS 환자는 기본적으로 약물 치료와 신경차단술을 받는다. 중증 환자는 척수자극기나 척수강내약물펌프 삽입술을 받기도 한다.
김씨는 통증이나 치료비 부담만큼 견디기 힘든 게 있다고 했다. 자신을 향한 삐딱한 시선이다.
회사를 그만두기 전에는 병원에 갈 때마다 눈치를 봐야했다. 일이 많을 때 휴가를 내면 ‘한두 군데 안 아픈 사람이 어디 있느냐’, ‘참을성이 없다’는 핀잔이 돌아왔다. ‘꾀병을 부린다’는 말까지 들은 적 있다. 김씨는 “통증이란 게 직접 느껴봐야 얼마나 아픈지 알 수 있는 거라 ‘그럴 수 있지’ 싶다가도 야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통증을 객관적으로 측정하는 방법은 아직 없다. 최종범 아주대병원 교수(마취통증의학과)는 “현재까지는 시각통증등급(VAS)이나 숫자통증등급(NRS)을 가장 많이 사용한다”면서 “통증이 없을 때를 0점,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극심한 통증을 10점으로 가정해 환자에게 어느 정도의 통증을 느끼는지 물어보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이때 3점 이하는 경증, 4~6점은 중등도, 7점 이상은 중증으로 분류한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는 모르는 사람들이 눈치를 줬다. 김씨는 산책을 하거나 병원을 오가는 길에 이웃들에게 험한 말을 여러 번 들었다. 동네사람들은 거동이 불편한 그의 뒤통수에 대고 ‘젊은 사람이 치매에 걸렸나보다’라고 수군댔다. ‘저 사람 또 나왔네, 안 나오면 좋겠는데’라고 내뱉었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다. 대놓고 하는 뒷담화에 지쳐버린 김씨는 지금 살고 있는 동네로 이사했다.
김씨는 “내가 전염병 환자도 아닌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따지지도 못했다. 오히려 계속 듣다보니 ‘내 잘못인가’하는 죄책감이 들었다”고 했다. 또 “다치기 전에는 몰랐는데 겪어보니 아픈 사람만 서럽다”고 말했다. 15년째 CRPS와 싸우고 있는 김민수씨는 몸보다 마음이 더 힘든 날이 늘고 있다.
신승헌 기자 ssh@kukinews.com
79년생 김민수씨는 한때 음료회사 원료배합원으로 일했다. 서른에 접어들던 2008년, 김씨는 작업 도중 물탱크 위에서 떨어져 척추와 꼬리뼈에 금이 가는 사고를 당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뼈는 붙었지만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병원 여러 곳을 돌아다닌 지 1년쯤 됐을 때 김씨는 자신이 CRPS 환자라는 걸 알았다.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Complex Regional Pain Syndrome). 이름도 생소한 이 병은 외상 후 신체 일부에서 극심한 신경병성 통증을 느끼는 희귀난치성 질환이다. 다친 것에 비해 훨씬 더 아프고, 손상 부위가 다 나아도 통증이 사라지지 않는 특징이 있다. 주로 팔다리에서 발생한다. CRPS는 대부분 외상이나 수술·시술 후 나타나는데 아직 정확한 원인은 모른다. 그러니 예방도 어렵다. 국내에 CRPS 환자는 1만~1만2000명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증상이 가벼운 복합부위통증증후군은 자연 치유되기도 한다. 하지만 마약성 진통제도 소용없을 만큼 심각한 경우도 있다. 어떤 환자는 옷깃이 스쳐도 극심한 통증을 호소한다. 김민수씨는 일주일 중 5일은 팔다리가 부러져있는 것 같은 통증을 겪는다고 했다. 나머지 이틀은 몸살 기운을 느끼는 정도라 그나마 견딜만하다고 했다.
대한통증학회 홍보이사인 문호식 가톨릭대 은평성모병원 교수(마취통증의학과)는 “CRPS는 통증이 잘 안 낫고 오래가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통증의 강도가 심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통증을 경증, 중등도, 중증으로 나눴을 때 환자 과반은 중등도 이상의 통증을 갖고 있는 것 같다”며 “이 가운데 20~25%는 중증의 극심한 통증을 호소한다”고 밝혔다.
김씨는 CRPS 진단을 받은 후 경북 문경시에서 경기도 수원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통원 치료를 했다. 심한 통증 때문에 대중교통은 이용할 수 없었다. 10여 년간 아버지가 자가용으로 자신을 실어 날랐다. 그러다 4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김씨는 아예 병원 근처로 터를 옮겼다.
고약한 병마에 시달리고 있는 김씨는 일 할 처지가 못 된다. 함께 사는 70대 어머니가 건물 청소를 하며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희귀난치병인 CRPS에는 건강보험 혜택이 폭넓지만 그에게는 일주일에 7만원가량인 약값도 부담이다. 김씨는 경제적으로 어려워 다른 치료는 못하고 있다고 했다. CRPS 환자는 기본적으로 약물 치료와 신경차단술을 받는다. 중증 환자는 척수자극기나 척수강내약물펌프 삽입술을 받기도 한다.
김씨는 통증이나 치료비 부담만큼 견디기 힘든 게 있다고 했다. 자신을 향한 삐딱한 시선이다.
회사를 그만두기 전에는 병원에 갈 때마다 눈치를 봐야했다. 일이 많을 때 휴가를 내면 ‘한두 군데 안 아픈 사람이 어디 있느냐’, ‘참을성이 없다’는 핀잔이 돌아왔다. ‘꾀병을 부린다’는 말까지 들은 적 있다. 김씨는 “통증이란 게 직접 느껴봐야 얼마나 아픈지 알 수 있는 거라 ‘그럴 수 있지’ 싶다가도 야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통증을 객관적으로 측정하는 방법은 아직 없다. 최종범 아주대병원 교수(마취통증의학과)는 “현재까지는 시각통증등급(VAS)이나 숫자통증등급(NRS)을 가장 많이 사용한다”면서 “통증이 없을 때를 0점,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극심한 통증을 10점으로 가정해 환자에게 어느 정도의 통증을 느끼는지 물어보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이때 3점 이하는 경증, 4~6점은 중등도, 7점 이상은 중증으로 분류한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는 모르는 사람들이 눈치를 줬다. 김씨는 산책을 하거나 병원을 오가는 길에 이웃들에게 험한 말을 여러 번 들었다. 동네사람들은 거동이 불편한 그의 뒤통수에 대고 ‘젊은 사람이 치매에 걸렸나보다’라고 수군댔다. ‘저 사람 또 나왔네, 안 나오면 좋겠는데’라고 내뱉었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다. 대놓고 하는 뒷담화에 지쳐버린 김씨는 지금 살고 있는 동네로 이사했다.
김씨는 “내가 전염병 환자도 아닌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따지지도 못했다. 오히려 계속 듣다보니 ‘내 잘못인가’하는 죄책감이 들었다”고 했다. 또 “다치기 전에는 몰랐는데 겪어보니 아픈 사람만 서럽다”고 말했다. 15년째 CRPS와 싸우고 있는 김민수씨는 몸보다 마음이 더 힘든 날이 늘고 있다.
신승헌 기자 ssh@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