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세대 ‘이유 있는’ 반중 정서, K팝을 흔들다

Z세대 ‘이유 있는’ 반중 정서, K팝을 흔들다

지난 4일 열린 ‘2022 베이징 동계 올림픽’ 개회식에 한복이 등장해 논란이 됐다.   연합뉴스

중국에서 나고 자란 그룹 에스파 멤버 닝닝은 지난 5일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2000m 혼성계주 경기가 열린 직후 폐쇄형 메시지 플랫폼에 ‘중국이 금메달을 따서 기쁘다’고 적었다가 입길에 올랐다. 당시 중국 대표팀은 준결승에서 경기 규칙을 어기고도 편파 판정에 힘입어 결승에 진출했다며 뭇매를 맞고 있었다. 해당 메시지가 온라인에 공개된 건 이틀 뒤,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000m 결승전에서 한국 선수들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실격된 직후였다. 닝닝은 중국 대표팀을 응원한 직후 “(올림픽 중계를) 보면서 모든 나라의 선수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고도 썼지만, 논란은 한중 네티즌 대결로 번졌다.

지난 4일 개막한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연이은 편파 판정 논란으로 얼룩지면서 세계 각지에서 반중 정서가 격화되고 있다. 티베트와 신장위구르, 홍콩 등지에서 자행되는 중국 정부의 인권 탄압과 시진핑 체제 아래서 한층 강해진 중화민족주의, 타국 문화와 역사를 왜곡하는 동북공정 등 여러 문제가 겹친 결과다. 2000년대 후반부터 중화권 출신 가수들을 적극 영입해온 K팝 업계도 고민에 빠졌다. 중국 애국주의에 복무하는 중화권 출신 가수들 행보에 글로벌 팬들이 거세게 반발해서다. 업계에선 K팝 인재 영입지로서 중국의 수명이 다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K팝 팬덤 내 반중 정서는 2010년대 중반부터 감지됐다. 그룹 슈퍼주니어 멤버였던 한경을 시작으로 그룹 엑소 전 멤버 루한과 크리스, 타오 등 중국인 멤버들이 잇따라 팀을 무단이탈한 뒤 중국에서 독자활동을 시작하면서 팬들의 불신이 커졌다. 이런 반중 정서는 2016년 중국 정부의 한류수입제한령으로 본격화했고, 중화권 출신 아이돌 가수들의 잇단 정치적 발언이 여기에 불을 붙였다. 이들은 홍콩에서 범죄인 인도 조례(송환법) 반대 시위가 한창이던 2019년 ‘홍콩은 중국의 일부’라고 한 목소리를 냈다. 이듬해엔 ‘항미원조(미국에 대항해 북한을 도움·한국 전쟁의 중국식 표현) 작전 70주년을 기념한다’는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을 SNS에 올려 논란이 됐다.

팬사인회에서 큰절 대신 중국식 인사를 한 그룹 에버글로우 멤버 왕이런(가운데). 웨이보 캡처.

익명을 요구한 가요 관계자 A씨는 “K팝 팬덤 안에선 오래 전부터 중국인 멤버를 둘러싼 여론이 악화됐다. 이번 동계올림픽 편파 판정이 맞물려 반중 정서가 극에 달한 것”이라고 봤다. 실제 온라인에선 중국인 멤버들이 자국 전통에 따라 큰절을 거부한 사진과 영상이 재조명되고, 과거 친중 발언도 다시 도마에 올랐다. 정민재 대중음악평론가도 “그간 중국인 멤버들의 무단이탈과 ‘하나의 중국’ 발언으로 인한 피로감이 컸는데, 이번 동계올림픽을 기점으로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간 것 같다”며 “SM엔터테인먼트가 온라인 커뮤니티에 게시된 닝닝의 금메달 축하 메시지를 삭제해달라고 즉각 요청한 걸 보면, 기획사들도 이런 문제를 심각하게 인지하는 걸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반중 정서와 맞물려 K팝 시장의 중국 의존도가 낮아지면서 기획사들이 중화권 멤버 영입에 예전만큼 열을 올리지 않으리라는 분석도 나온다.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 몇 년 간 K팝 음반 전체 수출액 중 대(對) 중국 수출액 비율이 낮아진 반면, 미국과 유럽으로 수출되는 K팝 음반은 크게 증가했다. A씨는 “최근 데뷔한 그룹을 보면 일본이나 태국 출신 멤버들은 늘었지만 중국에서 온 멤버들은 거의 없다”며 “기획사들이 중국인 멤버 영입을 조심스러워하고 있는 것”이라고 짚었다. 4세대 아이돌 대표 주자로 꼽히는 그룹 스트레이키즈, 에이티즈, 엔하이픈, 있지, 스테이씨, 아이브 등은 멤버 전원이 한국인으로 구성됐거나 일본·미국·호주 국적 멤버가 섞였을 뿐, 중화권 출신은 한 명도 없다.

전문가들은 반중 정서가 일시적인 현상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정 평론가는 “K팝 주 소비층인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태어난 세대)는 정치적 올바름을 중요하게 여긴다. 신장위구르, 티베트, 홍콩 등에서 벌어진 인권 유린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세대라서 ‘하나의 중국’ 메시지에 강하게 반발하는 것”이라면서 “맹목적인 감정이 아니기 때문에, 중국의 정치·외교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반중 정서도 해소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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