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들춰보기] 직접 쓰는 한 편의 소설 같은 게임 '디스코 엘리시움'

[게임 들춰보기] 직접 쓰는 한 편의 소설 같은 게임 '디스코 엘리시움'

[쿠키뉴스] 문창완 기자 = 지난 10월 16일 인디 게임 개발사 ZA/UM는 RPG(역할수행게임) '디스코 엘리시움'을 출시했다. 출시 직후 각종 해외 언론으로부터 RPG 장르에 새로운 혁신을 가져왔다는 극찬을 받은 이 게임은 타임지 선정 2019년 최고의 게임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디스코 엘리시움은 '레바숄'이라는 가상의 도시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게임은 한 호텔에서 주인공이 숙취에 찌든 채로 일어나면서 시작된다. 주인공은 대부분의 기억을 잃은 상태이지만 곧 자신이 형사라는 것을 알게되고 호텔에서 일어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이 곳에 왔음을 깨닫게 된다. 

게임의 첫 인상은 '색다르다' 였다. 화려한 실사 형식의 그래픽은 아니지만 유화풍으로 표현된 캐릭터와 배경은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OST 또한 게임 배경과 굉장히 어울리고 웬만한 대형 영화 이상 수준의 퀄리티를 자랑한다.   

가장 놀라운 부분은 텍스트의 분량이다. 디스코 엘리시움의 텍스트는 약 97만 이상의 단어로 구성돼 있다고 한다. 그만큼 게임을 진행하는 데에 텍스트가 주는 영향력이 크다. 한편으로는 게임을 진행하면서 피로가 생길 법도 하지만 생각 이상으로 텍스트를 익살스럽고 재밌게 서술했다. 

다만 아직 한글화 패치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이상 게임을 즐기기 힘들다. 다행힌 것은 개발사 ZA/UM이 국내 게임 번역팀 '팀 왈도'와 지난 12일 계약을 체결해 한글화 작업을 공식화 했다는 것이다. 23일 기준 약 45% 정도가 완성된 것으로 확인됐다.      

게임 진행 방식 또한 여느 RPG와 느낌이 다르다. 기본적으로 주사위를 굴려서 행위에 대한 성공, 실패를 결정하는 TRPG 방식을 따랐지만 전투 요소는 거의 없다. 주사위는 대부분 자신이 어떤 행동, 대화를 선택했는지에 따라 나타나는 결과를 결정 짓는데 사용이 된다. 비슷한 게임을 꼽자면 '플레인스케이프 토먼트' 정도가 되겠다.

주사위 수치에 영향을 주는 것은 주인공의 능력치와 스킬이다. 게임을 시작하기 전 플레이어는 주인공의 능력치를 조정할 수 있다. 능력치를 어디에 투자했는지에 따라 논리적인 사고와 예리한 관찰력을 가진 지능형, 상대방과 공감 능력이 뛰어난 감성형, 타고난 신체 능력을 가진 육체형, 시각, 청각, 후각, 반사 능력이 뛰어난 운동형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반대로 모든 능력치에 공평하게 분배해 특출나지는 않지만 무난한 능력의 주인공도 만들 수 있다. 

자신이 어떤 능력치에 투자했는지에 따라 스킬을 얻을 수 있다. 각 항목별로 6가지의 스킬이 있으며 스킬에 따라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달라진다. 스킬들은 마치 하나의 인격으로 묘사돼 있어 끊임없이 주인공의 머리 속에서 말을 걸어온다. 재밌었던 부분은 각 스킬의 인격이 각각 다르게 묘사돼 있어 성격도 다르고 화법에도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스킬은 보통 결정적인 선택을 할 때 발동이 된다. 게임 진행에 영향을 주는 주요 선택지에서 플레이어는 주사위를 굴릴지 말지를 결정을 할 수 있는데 자신의 스킬과 능력치에 따라 확률이 표시된다. 플레이어는 머릿속의 스킬들이 제공하는 정보와 단서를 조합해 주어진 확률로 이 선택지가 고를 만한 가치가 있는지 판단을 해야한다. 

자신이 내린 결정에 안 좋은 주사위가 나와 실패해도 크게 실망할 필요는 없다. 디스코 엘리시움의 주사위 시스템에는 절대 확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 두 개의 주사위 눈이 모두 1이 나오면 선택지 성공 확률이 아무리 높아도 무조건 실패로 간주된다. 반대로 모두 6이면 나오면 무조건 성공이 된다. 디스코 엘리시움의 선택지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에 그저 자신의 선택에 따라오는 결과물에만 책임을 지면 된다. 심지어 주사위에 실패 했을 경우에도 의외의 보상이 주어지는 경우도 있다.  

선택지를 고르는 상황이 아닐 때도 스킬과 능력치는 게임에 항상 영향을 준다. 예로 지성이 높은 경우 발견할 수 있는 단서를 지성이 낮으면 그냥 지나칠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게임 내에서는 '지성이 몇 이상이면 이 단서를 찾을 수 있다' 명시하지 않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스킬이 언제 게임에 영향력을 미쳤는지 알 수 없다. 이때문에 자신이 능력치를 어떻게 설정했는지에 따라 매번 게임의 흐름은 달라지게 된다.  

능력치와 스킬은 레벨업을 통해 얻는 포인트, 게임을 진행하면서 얻은 옷, 도구 등의 아이템을 통해서 조절할 수 있다. 

능력, 스킬 이외에도 '생각 캐비넷'이라는 능력이 있다. 게임을 진행하면서 무심코 떠오른 아이디어나 의문점 등이 이 곳에 저장된다. 플레이어는 이를 생각 캐비넷의 슬롯에 지정하면 내면화 할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주인공은 그 아이디어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게 되고 이 또한 향후 게임을 진행하면서 나오는 선택지에 영향을 주게 된다. 

NPC 등에게 퀘스트를 받는 일반적인 RPG와 다르게 디스코 엘리시움은 주인공이 자신에게 스스로 퀘스트를 내리는 경우가 많다. 예로 무대 위에 있는 가라오케 기계를 보면서 주인곤은 "언젠가 저기서 노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럼 퀘스트 목록에 '가라오케에서 노래하기'라는 항목이 뜨며 목표를 완수하면 경험치를 준다. 즉 '사건 해결'이라는 큰 틀 안에서 주인공은 다양한 사물, NPC, 기억, 경험과 상호 작용하며 사이드 퀘스트를 얻게 된다. 이러한 사이드 퀘스트들 또한 굉장히 심도있게 다루기 때문에 하나하나 찾아내는 것도 디스코 엘리시움만의 재미다. 

개인적으로 느낀 게임의 난이도는 중상 정도의 수준이다. 주인공에게는 체력과 사기라는 두 가지 수치가 있는데 둘 중 하나가 0이 되면 게임 오버가 된다. 잘못된 선택이나 행동을 했을 경우 상황에 따라 수치는 감소한다. 하지만 극단적인 상황이 아닌 경우에는 주변에서 얻을 수 있는 아이템으로 회복할 수 있다. 또한 선택에 대한 단서와 정보도 스킬들이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알려주기 때문에 텍스트만 꼼꼼히 읽는다면 충분히 헤쳐나갈 수 있다. 다만 텍스트의 양이 워낙 방대하고 한글화가 아직 안된 부분 때문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디스코 엘리시움은 '내가 직접 써내려가는 책'과 같은 느낌이었다. 전체적인 틀을 봤을 때는 '추리' 요소가 강할 수도 있다고 생각되지만 사건을 파헤치는 것 보다 '내가 실제로 이런 상황이면 어떤 결정을 내릴까'에 더 치중한 느낌이다. 선택지도 굉장히 세분화 돼 있고 '이런 상황에서 저런 선택지를 누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감정 이입이 굉장히 잘 된다. 만약 기회가 생기면 친구와 각자 플레이를 해보고 술 한잔 하면서 느낀 경험을 얘기해 보고 싶다.     

개발사 ZA/UM이 디스코 엘리시움 개발하는데 걸린 시간은 무려 16년이라고 한다. 그들이 만든 방대한 세계관 속에서 자신이 과연 어떤 성향을 가진 사람인지를 궁금해하는 플레이어들에게 강력히 추천한다. 

lunacyk@kukinews.com
문창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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