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참사 12년…의과학계 “과학적 근거 고려돼야”

8일 의학·환경·보건·독성학계, 가습기살균제 관련 기자회견
CMIT·MIT 사용 5년 전후 천식 5배·입원 10배 증가
“제조·유통·판매사들 책임 있단 사실 선언되길”

가습기살균제 참사 12년…의과학계 “과학적 근거 고려돼야”
국내 의학·환경·보건·독성학계는 8일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가습기살균제 형사재판 항소심에 대한 입장을 발표했다. 학계는 그간 축적된 과학적 근거가 사법적으로 충분히 고려되기를 기대했다. 사진=신대현 기자

CMIT·MIT(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메틸이소티아졸리논) 성분 가습기살균제의 건강 피해에 관한 2심 재판을 앞두고 의학·과학계가 재판부에 과학적 근거를 고려한 판결을 내려줄 것을 촉구했다.

국내 의학·환경·보건·독성학계가 8일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가습기살균제 형사재판 항소심에 대한 입장을 발표했다. 대한예방의학회, 대한직업환경의학회, 한국역학회, 한국환경보건학회, 한국환경법학회, 한국환경사회학회, 환경독성보건학회 등 7개 학회의 공동 입장이다.

학회들은 “세계적으로 그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대규모 화학물질 안전사고”라면서 “이미 12년이 지났음에도 우리 사회는 가습기살균제 사건에 관해 여전히 빙산의 일각만을 바라보고 있으며 아직도 제대로 된 사회적 합의와 피해자들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2021년 1월 나온 1심 판결 결과도 비판했다. 당시 1심 재판부였던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부장판사 유영근)는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SK케미칼, 애경산업, 이마트 임직원 등 13명에 대해 무죄 선고를 내렸다. 가습기살균제 독성물질인 CMIT·MIT와 폐질환·천식 간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게 무죄의 이유였다.

학회들은 “과학자들이 만들어낸 수많은 과학적 근거들이 재판에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고 비판하며 그동안 가습기살균제와 건강 피해 사이의 인과적 관련성을 뒷받침하는 여러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CMIT·MIT 등의 물질이 간질성 폐렴과 천식이 발생하는 하기도에 도달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또 흡입독성시험을 통해 용량에 상관없이 2주라는 비교적 짧은 노출 시간에도 폐 변색과 염증세포의 침윤과 염증, 불규칙적인 호흡 등이 나타날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민건강보험 빅데이터를 활용한 역학 연구에선 CMIT·MIT 가습기살균제 사용 전후 5년을 비교한 결과 천식 발생이 5배, 천식으로 인한 입원 발생은 10배 증가했다는 객관적 사실도 입증됐다. 학회들은 2011년 말 가습기살균제 수거 전후 전 국민 건강실태를 비교한 결과를 들며 “가습기살균제 사용자들은 사용하지 않은 사람에 비해 폐렴, 천식, 간질성폐질환 등 대부분의 호흡기계 질병 발생률이 최대 5~20배 높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검증된 과학적 근거들이 고려돼야 하며 원인 제공자에게 면죄부를 부여하는 판단이 다시 반복돼서는 안 된다”면서 “많은 생명과 건강을 앗아간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판매하고 충분한 과학적 근거 없이 아이에게도 안전하다는 광고를 하며 국민을 위험에 빠뜨린 제조사들은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과학적 근거가 명백한 물질에 대해서도 제조·판매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앞으로 어떻게 유해물질로부터 가족의 생명과 건강을 지킬 수 있을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그간 축적된 근거가 사법적으로 충분히 고려되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기업은 국민의 건강을 보호해야 하는 책임을 통감하고 공공의 복지 증진을 위해 사회적 기여를 해야 한다”며 “가습기살균제를 제조·유통·판매한 SK케미칼, 애경산업, 이마트가 가습기살균제 피해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사실이 선언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지난달 26일 검찰은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2심 결심 공판에서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 등에게 각각 금고 5년, 함께 기소된 애경산업·SK케미칼·이마트 관계자 등 11명에게는 금고 3~5년을 구형했다. 2심 판결일은 내년 1월11일이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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