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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방지법, 무엇을 구하나

-용돈 필요해 사진 거래하는 아이들…‘놀이’ 된 디지털 성폭력
-N번방 방지법, 경각심 높이는 계기…성교육도 수반돼야

‘N번방 방지법’(전기통신사업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불완전하다. 사적 대화 검열과 실효성 부족한 규제가 법안의 발목을 잡고 있다.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법을 없애자는 목소리도 크다. 완벽하지 않은 법은 폐지해야 하는 것일까. 디지털 성폭력 피해자를 돕는 사람들을 만났다. 이 법이 있어야 하는 이유를 들었다. 그들은 말한다. N번방 방지법은 오늘도 누군가를 살렸다. [편집자주]
그래픽=이희정 디자이너.

같은 반 친구 사진을 몰래 찍어 SNS에 게시한다. 친구들이 모인 대화방에서 거리낌 없이 ‘지인 능욕’(지인의 얼굴 사진을 음란물에 합성해 유포하는 것)을 한다. 랜덤 채팅방에서 만난 사람에게 성기를 찍어 보낸다. 때로는 돈을 받고 판다. 일부 학생의 일탈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의 놀이. 불법 촬영물 소지는 권력의 상징이 됐다.

청소년 디지털 성폭력 심각성은 이미 위험수위를 넘었다. 경고음은 곳곳에서 울린다. 지난 7일 경북 포항 디지털 성범죄 특화상담소에서 최금주 상담원을 만났다. 최 상담원은 “초등학생의 경우 랜덤채팅으로 만난 가해자에게 ‘온라인 그루밍’(피해자를 길들여 성착취로 이어지는 행위)을 당하는 사례가 많다”면서 “중고교생은 직접 불법 촬영물을 제작하고 유포하는 수준까지 갔다”고 밝혔다. 이유는 사소하다. 친구를 사귀거나 용돈이 필요해서다. 청소년들은 불법 촬영물 소지와 거래를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자랑한다. 일선 학교에서는 성매매 방지 교육 요청이 쏟아진다. 

10대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수는 빠르게 늘고 있다. 디지털 성폭력 지원센터가 지난해 1월부터 9월까지 파악한 10대 피해자 수는 1268명이었다. 지난 2018년 111명의 10배가 넘는다. 특히 10대 피해자 수는 지난해 처음으로 20대를 추월했다. 10대는 1268명(22.3%), 20대는 1194명(21.0%)로 나타났다.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서 불법 촬영물을 찾을 때 자주 쓰이는 ‘몰카’ 단어의 검색이 막혔다. 

청소년은 디지털 성폭력이 얼마나 심각한 범죄인지 모른다. 지난해 5월 서울시는 디지털 성범죄 가해 청소년의 범행 동기를 조사했다. 큰일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는 답변이 21%로 가장 높았다. 재미나 장난 19%, 호기심 19%, 충동적으로 16%, 남들도 하니까 따라 해 보고 싶어서 10%, 합의된 것이라고 생각해서 4% 순이었다.

N번방 방지법 시행은 청소년에게 디지털 성범죄 경각심을 준다.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뜻이다. 불법 촬영물 게재를 사전에 막는 기술이 N번방 방지법의 전부가 아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플랫폼 사업자에게 다양한 조치를 의무화했다. 불법 촬영물을 찾을 때 자주 쓰이는 단어는 검색을 막았다. 해당 단어는 연관검색어로도 볼 수 없다. 사업자는 이용자가 불법 촬영물을 언제든 신고할 수 있게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신고 기능은 이용자들이 쉽게 찾을 수 있어야 한다. 문제 게시물의 처리 결과를 신고인에게 14일 이내 통보하도록 했다.

13일 포털사이트 네이버와 다음에서 ‘디지털 성범죄’, ‘몰카’ 단어를 검색했다. 디지털 성범죄 예방 캠페인 문구가 떴다. 단어의 검색 결과 대신, 불법 촬영물 삭제 지원 및 상담 기관 정보가 나왔다. 트위터에는 N번방 방지법 시행 이후 고객센터 신고란에 ‘한국법’이라는 별도 카테고리가 생겼다. 시민단체 대전여민회에서는 디지털 성폭력 실태 모니터링 참가자들이 신고 절차가 간소화되고 문제 게시물 삭제 처리 속도가 빨라지는 등 변화를 느꼈다고 밝혔다.

디지털 성범죄 특화상담소 한 관계자는 “청소년의 경우 판단력이 성인보다는 부족하다”며 “N번방 방지법 시행이 청소년에게 디지털 성폭력의 심각성을 인지하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 청소년이 작성한 성인지 감수성 자가진단지. ‘외출 시 화장실 이용할 때마다 불안해하는 여자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문항에 ‘매우 그렇다’고 답했다.  사진=정진용 기자

보완은 필요하다. 사적 대화를 통한 유포는 막을 방법이 없다. 불법 촬영물 유통 온상지였던 텔레그램, 디스코드는 사적 대화로 분류됐다. N번방 방지법 적용을 피했다. 청소년 디지털 성폭력 피해 유형 중 하나인 온라인 그루밍 수법은 이렇다. 처음에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등을 통해 피해자에 접근한다. ‘친하게 지내자’, ‘너 귀엽다’는 말로 환심을 산다. 그 뒤 1대1 SNS로 따로 이야기하자고 유인한다. 메신저 특성을 이용해 법망 밖에서 악용하는 것이다. 

성인지 감수성을 키워줄 체계 있는 성교육도 필요하다. 이현숙 탁틴내일 대표는 “성교육 수준이 과거보다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지역별, 학교별 편차가 있는 편”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디지털 성범죄 교육에 대한 정부, 학교 그리고 교사의 의지가 중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학부모의 관심”이라며 “디지털 성범죄를 우리 아이와는 관련 없는 이야기로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 모두가 관심을 기울여 아이들의 미래를 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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