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 못 하는데 납 벨트 차고 잠수” 열아홉 정운이의 죽음

고 홍정운군의 친구들이 사고 현장을 바라보며 홍군을 추모했다. 이소연 기자 

[쿠키뉴스=전남 여수] 이소연 기자 =“너랑 조금만 친해도 네가 물에 들어가길 싫어하는 걸 알 텐데. 네가 왜 죽었어야 하는지 믿기지 않아. 충분한 안전교육을 받았다면, 누군가 감독하고 있었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어째서 자격증도 없는 네가 잠수 작업을 해야 했을까”

발언을 마친 학생은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함께 기자회견에 나선 학생들도 눈물을 훔쳤다. 열아홉, 떠나가기에도 떠나보내기에도 너무나 이른 나이. 교복과 검은 셔츠를 차려입은 학생들은 친구가 떠나간 요트 선착장 앞에 국화꽃을 바쳤다. 

고 홍정운군의 빈소. 유가족 제공 

전남 여수의 한 레저업체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고교생이 물에 빠져 숨졌다. 제대로 된 안전감독 없이 미성년자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시켰다는 비판이 나온다.

6일 오전 10시30분 여수 웅천동 요트 선착장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고교생 고(故) 홍정운(19)군이 바다에 빠져 숨졌다. 홍군은 레저업체에서 현장실습 중 요트 바닥에 붙은 따개비를 제거하는 작업을 하던 중 사고를 당했다. 직업계 고등학교 해양레저과 3학년인 홍군은 지난달 27일부터 레저업체로 현장실습을 나갔다. 요트투어를 온 손님을 맞이했다. 때로는 요트도 운항했다. 이날 집을 나선 홍군은 돌아오지 못했다. 실습 10일 만이다.

쿠키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홍군은 사고 당일 30분간 홀로 수경과 수영복만 착용한 채 따개비 제거 작업에 투입됐다. 장비 없이 작업을 지속하기 어렵자 업체 사장은 인근에서 잠수복과 공기통, 오리발, 납 벨트 등을 구해왔다. 잠수복은 몸에 맞지 않아 입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홍군은 공기통과 오리발, 12㎏ 납 벨트를 착용하고 다시 잠수했다. 이 과정에서 착용한 장비가 요트 선체에 걸렸다. 줄을 붙잡고 공기통과 오리발을 사장에게 넘겼다. 이후 납 벨트를 벗지 못하고 7m 수심 아래로 빠져 올라오지 못했다.

고 홍정운군이 착용했던 12㎏ 납 벨트. 유가족 제공 

유가족과 시민사회대책위는 8일 기자회견을 열고 홍군의 죽음이 단순 사고가 아닌 ‘인재’라고 지적했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만 18세 미만의 미성년자에게는 잠수, 고압, 소각 등의 업무가 금지된다. 위험하기 때문이다. 홍군은 스킨스쿠버 자격증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안전장비·감독도 미비했다. 수중 작업 시 필수조건인 2인 1조 작업 수칙이 지켜지지 않았다. 수면안전관리관도 없었다. 

즉각적인 구조도 이뤄지지 않았다. 업체 사장은 홍군이 수면 아래로 사라지자 주변에 소리쳐 도움을 요청했다. 본인은 몸이 좋지 않아 물에 들어갈 수 없다는 이유로 전해졌다. 인근 요트에 있던 이들이 구조를 시도했으나 수심 7m 아래로 내려가기는 역부족이었다. 사건 발생 후, 10여분이 지난 뒤인 오전 10시42분 해경에 사건이 접수됐다. 오전 10시48분 해경으로부터 구조 요청을 받은 해양구조협회 소속 인근 레저클럽 운영진들이 출동, 납벨트를 찬 채 바닥에 엎드려 있던 홍군을 끌어 올렸다. 홍군은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옮겨졌고 결국 숨졌다. 

스킨스쿠버 자격증을 보유한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현장실습생에게 맡겨서는 안 되는 업무라고 입을 모았다. 요트 선착장 인근에서 만난 한 남성은 “잠수해 따개비를 따는 작업은 선착장 물살로 인해 전문가도 하기 까다롭다”며 “자격증이 있는 저도 수심에서 따개비 따는 작업을 하려다가 위험해 포기했다”고 설명했다. 구조를 진행했던 레저클럽 운영진들도 “현장실습생의 실수로 발생한 사고가 아니다”라면서 “현장실습생에게 잠수 업무를 시켜서도 안 되지만 상식이 있는 관리자였다면 납 벨트부터 먼저 벗게 했어야 한다. 하다못해 예인줄이라도 몸에 묶었어야 하는데 안타깝다”고 이야기했다. 

평소 업무 또한 협약과 달랐다는 주장이 나온다. 협약서에는 하루 7시간씩 일주일 35시간 일한다는 내용이 적혔다. 유가족에 따르면 실제 업무시간은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10시까지였다. 하루 13시간 이상 업무를 했다는 것이다. 또한 협약서 적힌 홍군의 업무는 서비스 응대 및 보조 등으로 한정됐다. 잠수 업무 등은 어디에도 적혀있지 않았다.

홍군은 현장실습을 하기 전인 지난 5월부터 해당 업체에서 주말 아르바이트를 했다. 홍군과 함께 아르바이트를 했던 김모군은 “당시에도 배 옆에 매달려 칠을 벗기라는 등 (사장이) 무리한 요구를 했다”고 이야기했다. 또 다른 친구들도 “물에 들어가는 일이라면 정운이가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함께 물놀이를 할 때도 깊은 곳에는 절대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고 홍정운군이 숨진 장소에 홍군의 친구들과 시민사회단체가 국화꽃을 바쳤다. 이소연 기자 

유가족은 철저한 조사와 엄중한 처벌을 촉구했다. 홍군의 유가족은 “물을 무서워해서 잠수 관련 자격증을 따려다가 포기했던 아이다. 업체 측에서는 ‘(홍군에게) 안 해도 되는 일이라고 했는데도 홍군이 자발적으로 물에 들어갔다’고 하지만 말이 되지 않는다”며 “평상시 폭언을 들으면서도 요트 선장이라는 꿈을 위해 버텼다고 한다. 너무 억울하게 죽었다”고 토로했다. 이어 “업체도 잘못했지만 학교와 교육부도 책임을 져야 한다”며 “현장을 나가 확인한 것이 맞는지 묻고 싶다”고 강조했다. 

홍군의 사망과 관련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꾸려진 진상규명대책위원회는 “안전하고 체계적인 교육훈련이 가능한 현장실습 참여기업을 책임감 있게 선정하지 않는 이상 현장실습생의 산업재해는 되풀이될 것”이라며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제대로 된 학습중심 현장실습이 이뤄질 리 없다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이치”라고 비판했다.  

송정미 전남청소년노동인권센터 대표도 “지난 1963년부터 시행된 현장실습제도는 규정이 있지만 예외 단서가 붙으면서 기형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업의 범위를 넓혀왔다”며 “해당 업체와 같은 1인 기업도 학교운영위원회 등에서 허락하면 현장실습이 가능하다”고 질타했다. 

업체측과 학교에 홍군의 죽음과 관련 질의를 했으나 답변받지 못했다. 교육부에 현장실습 규정을 문의했으나 교육부 관계자는 “수사 중인 사안과 얽혀 있어 답변이 어렵다”고 이야기했다. 

soyeo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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