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앞둔 고향마을 돌아보니] 아기울음소리 대신 백구 짖는 소리만…

[한가위 앞둔 고향마을 돌아보니]  아기울음소리 대신 백구 짖는 소리만…

- 고향 마을 명절 전 들뜬 분위기 없어
- 방앗간에는 할머니들 옹기종기
- 벌초 대행 서비스 크게 늘어, 새로운 추석 풍속도
- 고향마을 젊은이들 대부분 외국인 근로자
- 그래도 고향 지키는 상주 최환수 이장

[쿠키뉴스] 경북 청도·군위·상주= 글/사진 곽경근 대기자 
“멍, 멍, 멍, 멍”
상주시 낙동면 용포리 마을 어귀 낮은 언덕 위, 두 마리의 백구가 낮선 이방인과 택배 차량이 지나가자 목줄이 끊어질 듯 이리저리 뛰며 사납게 짖어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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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상주 시 낙동면 용포리 마을 입구의 한 농가에서 백구 2마리가 낮선 사람들이 지나가자 큰 소리로 짖고 있다.

“언젠가는 고향마을이 통째로 사라질까 두려워!”
“우리야 이대로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지만 젊은 사람들이 한 명도 없으니 앞으로 농사는 누가 짓고 마을은 누가 지키나” 용포리 길가에서 만난 백발의 할머니는 보행기에 몸을 의지하며 기자의 질문에 낙담하듯 대답한다.
한가위 명절을 일주일 앞둔 지난 주말, 경북 상주, 군위, 청도 등 고향 마을 몇 곳을 찾았다. 예상은 했지만 기자가 찾은 어느 마을에서도 한가위 명절을 앞둔 고향 분위기는 찾을 수 없었다. 산등성이에는 벌초를 위해 선산을 찾은 출향 객들이 간간히 보일 뿐 조용하다 못해 빈집들이 많아 허전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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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위군 대율리 한 농가의 넓은 마당에서 할머니가 명절에 만날 자식들을 기다리며 집안밖 정리를 하고 있다. 

청도군 매전면 호화리 마을 어귀 마을회관에 한 할머니가 문을 열고 들어서지만 안에는 아무도 없다. 대부분 어르신들은 백신 접종을 마쳤지만 그래도 선뜻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 찾기는 두렵다. 자녀들의 당부도 있고 TV에서 나오는 ‘여전히 코로나19 확산세와 변이바이러스가 위험하니 집밖 출입을 삼가라’는 방역당국의 지침도 어르신들은 잘 지키고 있다.
기대와 달리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비대면 한가위’가 되면서 고향의 부모나 멀리 떨어져 사는 자식들 모두 행복하지 않은 명절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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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유천마을의 한 방앗간에 할머니들이 고추가루와 참기름을 만들기위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고향마을 뿐 아니라 예전 같으면 한참 북적일 읍내 시장도 썰렁하기는 매한가지다. 그나마 고향을 방문하거나 내려오지 못하는 자식들에게 나눠 줄 참기름을 짜고 고춧가루를 빻기 위해 방앗간에는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 너나 없이 자식자랑이 한창이다.

청도 유천마을에서 만난 이지춘(75) 씨는 “추석이고 뭐고 청도는 도회지로 나간 젊은이들은 돌아올 생각이 없고, 한 20년 지나 노인들이 다 죽고 나면 군이 아예 없어질 수도 있어”라며 “그래서 내가 만약 대통령이 된다면 시범적으로 결혼 안한 사람들은 아예 공무원 못하게 하고 자식 많이 낳는 공무원들은 진급 잘 시켜주고 그렇게 할꺼야”라며 답답한 마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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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군위군 부계면 한밤마을의 한 농가에서 할머니가 가을하늘 아래 여유롭게 고추를 다듬고 있다.

군위 한밤마을에서 고추를 말리고 있던 한 어르신은 “여기 고추말리고 있는 넓은 터가 자식들을 위해 만든 주차장이야, 전에 명절 같으면 손주들이 시끌벅적 뛰어다니고, 전부치는 기름 냄새며 송편 빚으며 오랜 만에 못 다한 이야기 나누는 자식들, 며느리들 모습 옆에서 지켜보는 것 만해도 마냥 흐믓했지”라며 “지금은 그런 풍경 기대할 수 없고 기대도 안 해, 어째든 코로나가 빨리 끝나기만을 기도”한다고 말했다.


- 성업 중인 벌초 대행 서비스와 선물 택배
계절의 변화는 속일 수 없는 법, 고향 들녘의 벼들은 어느 새 누렇게 익어 고개를 숙이고 산등성이에 자리한 산소들은 대부분 말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일찌감치 고향을 찾아 조상의 묘를 깔끔하게 이발해 드린 경우도 많지만 그 못지않게 벌초 대행이 고향마을의 새로운 풍속도로 자리 잡았다. 명절에 제때 고향을 찾기 어려운 사람들의 가장 큰 고민은 역시 조상 묘 벌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형제와 친척이 모이는 것이 쉽지 않아지면서 벌초대행이 일반화되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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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군위군 군위읍 용대리의 한 묘소를 농협에서 벌초 대행을 하고 있다.

2019년 1만 7만 건이었던 벌초대행이 지난해에는 2만4천 건으로 급증했다. 전국의 산림조합과 농협에서는 고향방문이 어려운 출향객들을 위해 벌초대행을 하고 있다. 산림조합의 한 관계자는 “이미 큰 묘지들은 대부분은 벌초 서비스를 마쳤고 한 두기씩 있는 소형 묘지들의 마무리 벌초작업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농협도 코로나19를 계기로 벌초 대행 서비스 규모를 늘리면서 이용자들의 부담을 덜고, 농가의 소득에도 보탬을 주고 있다. 고향에 방문하지 못하는 자식들은 부모에게 홍삼 등 건강식품과 한과세트, 영양제 등 추석선물로 죄송한 마음을 대신하고 고향의 부모 역시 역귀성조차 어려워지자 수확한 농산물을 자식들에게 보내느라 우체국을 비롯한 택배업체들은 대목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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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오후 최환수 이장과 장모, 아내 김순희 씨가 집 앞마당에서 햇 땅콩을 들어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 그래도 고향마을 지키는 상주 최환수 이장
7년 전 아내가 자신의 고향인 상주에 가서 살자는 말에 최환수(63) 이장은 서슴없이 짐을 챙겼다. 부산에서 건축업에 종사했던 최 이장은 사업이 생각만큼 쉽지 않았고 자신의 부모는 모두 돌아가신 상태여서 사랑하는 아내의 제의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자신이 먼저 내려와 장인과 장모를 돌보면서 상주시 낙동면의 대표 농산물인 오이 농사를 차근차근 배웠다. 귀농 당시도 마을에 젊은이들이 별로 없어서 농사나 힘든 일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주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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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이장이 농사 지은 상주 특산 오이가 출하를 기다리고 있다.

최 이장도 이듬해 부산의 살림을 정리하고 내려온 아내 김순희 (62) 씨와 본격적으로 오이 농사를 시작했다. 상주의 겨울오이는 특히 전국적으로 유명해 외국인 근로자들과 함께 열심히 농사를 지어 어느 정도 자리도 잡았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는 코로나19로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이 어려워지자 남아있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몸값이 급상승하고 있다. 월급도 한국 사람들과 별 차이 없지만 조금만 주인과 뜻이 안 맞거나 타 지역에서 단 얼마라도 돈을 더 준다고 하면 미련없이 떠나 정말 농사짓기가 쉽지 않단다. 대형 농장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상전처럼 외국인 근로자를 받들어도 사람을 구하지 못해 폐업하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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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마을에는 해가 갈수록 빈집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지방의 시군에서는 고향의 빈집을 귀농인들에게 임대를 해주려해도 부모가 살았던 집을 남에게 빌려주기 싫다며 자식들이 대부분 반대한다고 최이장은 귀뜸한다.

최 이장은 몇 해 전 장인이 돌아가셔서 홀로 사시는 장모님을 바로 옆집에서 보살피며 지낸다. 최 이장과 아내, 장모윤옥이(84) 씨가 오순도순 살고 있는 상주시 낙동면 화산 2리는 총 37가구에 40명이 모여 산다. 마을에 경로당이 2개나 있을 정도로 한때는 큰 마을이었다. 젊은이들은 떠나고 그 사이 마을 어르신들도 한 분 두 분 돌아가시면서 빈집만 늘어났다. 농사일도 쉴 틈 없이 바쁘지만 마을에 젊은 사람이 없어 이장 일도 맡게 되었다. 천성이 부지런하고 붙임성 좋은 최 이장은 화산리 맥가이버로 통한다. 홀로 사시는 어르신들이 대부분이어서 동네 대소사는 물론 마을 어르신들이 찾으면 최 이장은 오이농사를 짓다가도 바로 달려간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늦은 시간 마을에 들어서면 불이 켜지지 않는 집들이 해마다 늘어 마음이 아프다. 그래도 최 이장은 남아계신 마을 어르신들을 잘 보살펴 오래도록 건강하길 바랄 뿐이다.
[한가위 앞둔 고향마을 돌아보니]  아기울음소리 대신 백구 짖는 소리만…
요즘은 고향마을의 마트에 가면 외국인 근로자나 다문화 가정을 위해 현지 식자재가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다.

마을에 아기울음 소리는 최 이장이 이 마을에 처음 왔을 때도 듣지 못했지만 입학생이 전혀 없는 인근의 초등학교는 폐교 위기에 몰려있다. 명절을 앞두고 있어서 벌초하러 온 차량들과 선물을 들고 차에서 내리는 출향객의 모습이 간간히 보이긴 하지만 굳이 코로나19 핑계를 대지 않아도 앞으로 북적이는 명절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최 이장은 “지금 부모님 세대가 끝나면 고향 집을 찾고 선산을 찾아 직접 벌초하는 일들은 점차 사라지지 않겠냐"며 기자에게 되묻는다. “지금도 이 지역의 젊은 사람들은 태국 등 동남아인들이 대부분이지만 코로나 사태가 풀리면 더 많은 외국인들이 몰려들 것”이라면서 “앞으로 고향을 떠난 자식들이 부모와 일가친척 없는 고향에 내려오면 낮선 이방인이 대부분 마을을 차지하고 있어 고향은 더 이상 자신들의 어릴 적 기억의 고향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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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열차가 달리는 경북 군위군 산성면 화본리 마을 전경. 화본역을 중심으로 아직 옛 풍경이 남아있는 고향마을이다.(드론 촬영)

오랜만에 부모와 친지를 만나 두터운 정을 나누는 소중한 명절, 민족의 대이동으로 표현되는 한가위 풍경을 올해도 변함없이 볼 수 있을지, 아니면 고향마을 담장 아래로 활기차게 뛰어다니는 아이들과 길게 줄지어선 차량들이 그리운 옛 추억이 되고 말지…  명절 연휴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kkkwak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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