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갈등·저출산·고령화·자살…시험대 오른 李 정권 복지부

의정갈등·저출산·고령화·자살…시험대 오른 李 정권 복지부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제공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이 이재명 정부의 첫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지명된 가운데 새 정부의 보건복지 비전과 실행력이 중대한 시험대에 올랐다. 새 복지부의 앞길에는 의정 갈등부터 저출산과 고령화 심화, 지역·필수의료 붕괴, 자살률 증가 등 난제들이 놓여 있다. 단기 성과보다는 구조적 변화가 요구되는 사안들인 만큼 정부 주도의 일방통행식 정책이 아닌, 현장의 목소리를 폭넓게 수렴하는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일 쿠키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대통령실의 복지부 장·차관 인선에 대해 전문성과 경험을 두루 갖춘 인사라는 평가가 나온다. 복지부 장관 후보자에 내정된 정 전 질병청장을 비롯해 1차관으로 임명된 이스란 사회복지정책실장, 2차관으로 지명된 이형훈 한국공공조직은행장 모두 복지부 요직을 두루 거친 인물이다.

의사 출신이자 문재인 정부에서 초대 질병청장을 역임해 코로나19 방역 정책을 진두지휘했던 정 후보자는 코로나19 대응으로 국민적 인지도가 높을 뿐 아니라, 지난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총괄선대위원장을 맡아 정치적 입지를 강화했다. 이스란 신임 1차관은 행정고시(40회)를 통해 공직에 들어선 뒤 복지부 건강정책국장, 연금정책국장 등을 역임했다. 이형훈 신임 2차관도 행정고시(38회)로 공직에 들어선 뒤 보건의료정책관, 보건산업정책국장 등을 거쳤다.

실무 경험 중심의 진용이 꾸려지며 기대감이 나오지만, 이들이 직면한 과제는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하고 민감하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의정 갈등 풀이다. 새 정부가 출범했지만 의대생 수업 거부, 전공의 집단 이탈 사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표류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기존 의대 재학생(24·25학번)과 내년 의대 신입생(26학번)까지 3개 학년이 1학년 수업을 함께 듣는 ‘트리플링’이 불가피하다. 일부 대학에선 1학년생의 90% 이상이 유급 판정을 받는 등 정상적인 학사 운영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전공의 공백 장기화는 인력 부족을 넘어 전문의 양성 시스템 자체를 흔든다. 이는 필수의료 기반 약화와 지역의료 격차 심화라는 연쇄적 위기로 번질 수 있다.

긍정적 면은 새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집행부로 ‘협상파’가 들어서며 의정 대화의 물꼬가 트일 수 있는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이다. 정 후보자에 대한 의료계의 평가도 고무적이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지난달 29일 입장문을 내고 “후보자가 지닌 전문성과 합리적 태도, 공공의료에 대한 깊은 이해는 현재의 의료 위기를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국민의 건강을 최우선에 두고 정부와의 신뢰 회복과 협력적 관계 형성을 위해 적극 나설 것”이라고 전했다.

빨라지는 건강보험·국민연금 재정 고갈 시계

의정 갈등 해소가 단기적 과제라면 저출산·고령화 심화 문제는 장기적 해결 과제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은 올해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전체 인구 중 20% 이상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지난 2000년 노인 인구 7%인 고령화사회에 들어선 지 25년 만이다. 노인 인구는 불어나는데 합계출산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51명)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지난 4월 합계출산율은 0.79명으로, 여전히 1명을 밑돌고 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박효상 기자

저출산·고령화는 단순히 신생아 수가 적고 노인이 많다는 문제에서 그치지 않는다. 의료비 증가에 의한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 악화, 노동력 감소에 따른 국민연금 고갈 등으로 복지 재정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 노인은 생애주기 중 가장 많은 의료비를 지출하는 계층으로 꼽힌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동안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지출한 진료비는 48조9011억원으로 전체 진료비 110조8029억원의 약 44.1%를 차지했다. 노인 1인당 연평균 진료비는 544만3000원으로, 전체 건강보험 적용 인구 1인당 연평균 진료비 215만5000원보다 2.5배 높은 수준이다.

건강보험은 4년 연속 흑자를 달성하며 30조원에 이르는 안정적 재정 운영을 이어가고 있지만, 이대로라면 건보 재정 축소는 불가피하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4월 발표한 ‘제2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에 따르면, 건강보험 당기수지는 2026년에 3000억원 적자를 기록하고, 2028년에는 적자폭이 1조8000억원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고령이나 노인성 질병 등으로 혼자 일상생활을 수행하기 어려운 이들에게 제공되는 노인장기요양보험 급여비는 지난해 16조원을 넘어섰다.

국민연금 개혁 논의는 지난 4월30일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를 마지막으로 두 달 동안 진전이 없다. 앞서 지난 3월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43% 인상을 골자로 한 국민연금 모수개혁이 이뤄졌지만, 국민연금 고갈 시점이 기존 2056년에서 2064년으로 늦춰졌을 뿐 궁극적 개혁엔 도달하지 못했다. 추가 개혁이 지연되는 동안 국민연금 지출은 빠르게 늘어 기금 소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2월 기준 한 달간 수급자들에게 지급된 연금 총액은 4조238억원으로, 처음으로 월 급여 지출이 4조원을 넘었다.

이은혜 순천향대부천병원 영상의학과 교수는 복지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려면 지출 효율성을 높이고 투자 전략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 교수는 “의료 남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건강보험체계를 개편한다면 국민들의 건보료율을 올리지 않더라도 돈이 없어 치료를 포기하는 메디컬 푸어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민망할 정도로 높은 자살률”

자살률 증가 역시 시급히 풀어야 할 사회적 과제다. 이재명 대통령이 자살 대책 강화를 주문하면서 복지부 인선이 마무리되면 자살 예방 정책 재정비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5일 안전치안점검회의에서 “우리나라 자살률이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높다”고 언급했다. 실제로 국내 자살 문제는 심각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자살 사망자(잠정치)는 1만4439명이다.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은 28.3명으로 OECD 평균(10.7명)의 2.6배에 달한다. 한국의 자살률은 2003년 이후 줄곧 OECD 국가 중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쿠키뉴스 자료사진

정부는 지난 2023년부터 5년간 자살률을 18.2명까지 낮추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달성 가능성은 높지 않다. 특히 청소년들의 마음 상태가 위태롭다. 교육부에 따르면, 10대 자살률은 2011년 10만명당 5.5명에서 2023년 7.9명으로 올랐다. 학생 10만명당 자살자 수도 2015년 1.53명에서 2023년 4.11명으로 늘었다. 정신건강 지표 역시 악화되고 있다. 질병관리청의 청소년건강실태조사에선 청소년의 스트레스 인지율이 37.3%, 우울감 경험 26%, 고립감 경험 18.1%, 자살 충동 경험 13.5%, 자살 시도 5.25% 등으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에서 이형훈 신임 2차관 임명이 우연이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 2차관은 복지부 퇴임 직전 정신건강정책관을 맡았다. 수도권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A교수는 “이 2차관 임명은 단순한 보직 배치가 아니라, 정부가 정신건강과 자살 예방을 국정의 핵심 아젠다로 삼겠다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면서 “정신건강정책관을 역임한 경험을 바탕으로 교육부, 여성가족부 등 유관 부처와 협력해 청소년 자살 예방을 위한 학교 기반 조기 개입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전문가들은 복지부가 맡고 있는 영역이 광범위하고 국민 삶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부분이 많은 만큼 무엇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며 여러 부처와 협력하면서 포괄적 정책 추진이 이뤄져야 한다고 짚었다. 정부 소식에 능통한 B대학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복지 정책은 국민이 일상에서 체감하는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면서 “지금처럼 다양한 위기가 중첩된 상황에선 정책 간의 연결성과 실행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정부에서 소통의 부재와 일방적 정책 추진으로 일을 그르치고 갈등이 극심해진 것을 새 정부 복지부는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라며 “여러 이해관계자와 소통하며 국민 삶의 변화를 이끌어내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추천해요
    0
  • 슬퍼요
    슬퍼요
    0
  • 화나요
    화나요
    0
쿠키뉴스 헤드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