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 탄식 불러온 ‘유상증자’…‘투자자 소통’ 부재 지적

주주 탄식 불러온 ‘유상증자’…‘투자자 소통’ 부재 지적

삼성SDI·한화에어로, ‘상법 개정안’ 통과 후 대규모 ‘유상증자’ 결정
주주가치 희석 우려에 주가 급락…경영진 자사주 매입으로 방어
전문가 “주주와 소통·주주권 보호 강화 필요해”

쿠키뉴스 자료사진

국내 주요 대기업들이 최근 유상증자를 결정하면서 극심한 주가 변동성을 보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유상증자 결정이 상법 개정안 통과를 우려한 선제적 조치라고 해석한다. 전문가들은 당초 투자자와 소통이 미흡했던 점을 꼬집으면서 개선 필요성을 강조한다.

2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이달 들어 삼성SDI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 국내 주요 대기업들이 대규모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우선 삼성SDI는 지난 14일 약 2조원의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의 유상증자를 공시했다. 삼성SDI는 증자를 통해 확보하는 자금으로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의 합작법인 투자, 헝가리 공장의 생산능력 확대, 전고체 배터리 라인의 시설 투자 등에 사용한다고 밝혔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도 지난 20일 3조6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추진 계획을 내놨다. 삼성SDI와 같은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을 채택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유상증자는 지난 1999년 이후 처음 진행하는 대규모 증자인 점에서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이를 통해 해외 지상 방산, 조선해양, 해양 방산 거점을 확보해 글로벌 방산, 조선해양, 우주항공 분야에 투자하겠다는 계획이다.

일각에서는 상법 개정안이 통과된 이후 유상증자가 발생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법령 변화 가능성을 앞두고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결정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앞서 국회는 지난 13일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에서 상법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정부가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공포될 경우, 1년이 지난날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상법 개정안은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 의무를 기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장하는 게 골자다. 상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주주 목소리가 높아지는 만큼, 유상증자 결의는 난관에 봉착할 가능성이 높다. 유상증자가 기존 주주 지분가치를 희석한다는 점에서 기업과 주주의 이해관계 일치를 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 유상증자 결론을 내리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돼 적절한 시점을 지나칠 수도 있다. 

김대종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삼성SDI,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 일부 대기업의 유상증자 발표 시점이 상법 개정안 통과 직후인 점은 분명 시사하는 바가 있다”라며 “단순한 자금 조달 목적을 넘어서 지배구조 변화, 주주권 강화 등 규제 변화를 선제적으로 고려한 행보일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특히 대기업집단일 경우, 지배력 희석을 최소화하면서 외부 자금을 유치할 수 있는 마지막 타이밍이라는 판단도 작용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증권가, 한화에어로 ‘부정적 평가’에…경영진 ‘자사주 매입’ 단행

증권가에서는 삼성SDI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유상증자를 주목했다. 기업 성장력을 위한 결단이 필요한 시점은 분명하나, 현금흐름과 신용등급이 양호한데도 별개의 선택지를 외면했다는 지적에 기인한다.

주가도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더욱 큰 낙폭을 보였다. 삼성SDI 주가는 유상증자 결정일인 14일 6.18% 하락 마감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20일 13% 급락세로 장을 종료했다.

변용진 iM증권 연구원은 “목적이 아무리 정당하고 납득 가능하더라도 대규모의 유상증자는 기존 주주 입장에서는 달갑지만은 않은 소식”이라며 “투자계획이 오는 2030년까지 5년이라는 기간을 감안했을 때 향후 유입될 현금에 더해 회사채 발행도 적정 규모로 병행했다면 유증 규모를 줄일 수 있지 않았겠느냐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짚었다.

이지호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중장기 사업의 지속성 측면에서 필수적인 선제 투자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면서도 “다만 이번에 조달된 자금을 통한 연간 투자 목표액은 한 해에 2조원을 초과하지 않는다. 연간 영업이익이 2조원을 웃도는 만큼, 이익체력만으로 감당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이러한 지적을 인식한 듯 경영진의 자사주 매입을 단행했다. 유상증자에 대한 주주의 반발과 투자심리 악화를 최소화하기 위한 결정으로 해석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23일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회사 주식을 약 30억원을 매수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손재일 사업부문 대표이사와 안병철 전략부문 사장도 각각 9억원, 8억원 규모로 매입하기로 했다. 이는 이들 경영진이 지난해 수령한 연봉과 엇비슷한 규모다. 다른 임원들도 자율적으로 지분 매수에 나설 예정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는 “주식 매입을 통해 책임경영을 실천하고 회사와 주주의 미래 가치를 제고하기 위한 방안”이라고 말했다.

경영진의 주주가치 제고 행보는 일부 주가 부양 효과를 발휘했다. 전날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주가는 직전 거래일 대비 7.48% 급등한 67만500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유상증자 소식에 급락했던 하락분을 절반 이상 만회한 셈이다.

다만 향후 유상증자 결정에 대한 정당성 확보는 여전한 과제로 남아있다. 최정환 LS증권 연구원은 “현지거점을 활용해 단순히 기존 수출 국가였던 폴란드, 사우디향 수주 계약에 그치면 안 된다”면서 “동유럽, 북유럽, 중동 내 신규 국가 및 수주계약 체결을 통해 3조6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주주와 소통 부재한 유상증자, 방식·제도 개선 필요해”

전문가들은 기존 주주 입장에서 지분 희석과 주가 하락이라는 부정적 영향을 동반하는 유상증자에 대해 기업의 자체적인 방식 변화와 법적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김대종 교수는 “(기업은) 전환사채나 교환사채 등 다양한 하이브리드 증권을 활용해 주식 전환 시기를 조정하거나, 시장 부담을 분산시킬 수 있도록 고려해야 한다”며 “특히 투자자 대상 로드쇼(IR)와 유상증자 목적 및 사용 계획의 명확한 설명을 병행해야 주가 충격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주주 중심 경영 흐름이라는 측면에서 유상증자가 밸류업 기조에 반한다는 지적은 타당하다고 평가했다. 주주와의 소통 부재나 불투명한 자금 사용 계획이 시장 신뢰를 저하할 수 있어서다. 그는 “자본시장법상 '주주권 보호 조항' 강화와 같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면서 “일정 규모 이상의 증자 시 사전 설명 책임 또는 주주 동의 요건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증자 목적, 사용처, 기대 효과 등을 보다 구체적으로 명시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식도 시장 투명성 제고에 도움이 된다”며 “또 배당 확대, 자사주 매입 등 장기적 주주환원 정책이 병행돼야 긍정적인 시장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부연했다.


이창희 기자
window@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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