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LG배 사태’ 의견 낸 신진서 “3국은 커제 잘못도 크다” [쿠키인터뷰]

[단독] ‘LG배 사태’ 의견 낸 신진서 “3국은 커제 잘못도 크다” [쿠키인터뷰]

커제가 억울한 건 결승 2국…3국 항의는 과했다
한국기원 실수도 있어…서로 타협하고 대화해야
변상일 9단이 가장 피해자…원만하게 해결되길

지난해 제25회 농심배에서 끝내기 6연승으로 한국의 우승을 이끈 신진서가 서울 성동구 한국기원에서 쿠키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효상 기자

LG배 ‘파행’ 사태를 부른 커제 9단의 심판 판정 불복과 중국바둑협회 강경 대응에 대해 바둑계 일인자가 입을 열었다.

5일 쿠키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세계 바둑 랭킹 1위 신진서 9단은 이번 사태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내면서 먼저 바둑 팬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신 9단은 쿠키뉴스와 통화에서 “세계대회 결승전에서 팬들이 원하는 바둑이 없었다는 점이 안타깝다”면서 “저도 세계대회 결승전을 12번 했는데, 어떤 승부인지 잘 알고 있다. 그런 점에서 결승 2국(변상일 9단의 반칙승)이 끝났을 때는 커제 9단의 입장이 충분히 이해가 됐다”고 운을 뗐다.

이어 신 9단은 “커제가 가장 억울한 건 2국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결론적으로 중국은 3국 판정 결과에 대해 성명을 내고 항의했는데, 이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지난 1월22일 열린 LG배 결승 2국에서 커제 9단은 ‘사석(따낸 돌)’ 관리 규정을 두 차례 위반해 경고 누적으로 반칙패를 당한 바 있다. 1월23일 결승 3국에선 같은 실수로 경고를 받는 상황에서 심판 개입 시점에 대해 거세게 항의, 대국을 마치지 않고 경기장을 이탈해 ‘기권패’ 처분을 받았다.

신 9단은 “커제 9단이 일단 3국 대국을 모두 마치고 억울한 점을 얘기했다면 이렇게까지 상황이 크게 번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심판의 개입 시기는 더 빨랐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한국의 실수”라고 정의했다. 아울러 신 9단은 “이 규정은 바로 시행할 게 아니라 계도 기간을 두었어야 했고, 그렇지 않다면 벌점 2집과 반칙패가 아니라 먼저 주의를 주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한국룰에서 ’주의’ 처분은 대국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신진서 9단은 커제 9단이 개인 방송에서 언급했던 2024 삼성화재배 16강전에 대해서도 의견을 냈다. 커제 9단은 당시 손근기 심판(LG배 3국 심판과 동일인)이 대국 도중 신진서 9단이 둘 차례에 개입한 점을 거론하면서, 그때와 이번 LG배 모두 본인이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11월15일 2024 삼성화재배 본선 16강전 신진서-커제 대국. 210수가 놓인 시점에 손근기 심판이 개입해 커제 9단에게 ‘주의’를 줬다. 바둑TV 화면 캡처

이에 대해 신 9단은 “삼성화재배 당시에도 한국기원 측의 실수가 있었다”면서 “커제 9단의 돌통(백돌)에 제 돌(흑돌)이 들어가 있던 점은 한국이 잘못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당시 상황을 면밀하게 살펴보면, 심판이 개입한 시점과 관련해선 커제 9단이 주장한 것과 달리 오히려 신진서 9단이 피해자에 가까운 상황이다.

먼저, 심판 개입 시점은 당시 60초 초읽기로 진행되고 있던 대국에서 신 9단의 시간이 약 40초가량 흐른 시점이었다. 이 시점에 심판이 계시기를 ‘일시정지’ 하고 판정을 한 이후 다시 대국을 재개했는데, 그러자 초읽기는 41초 시점으로 움직였다. 흐름이 완전히 끊긴 상황에서 기존 60초 초읽기가 아니라 약 20초 안에 바로 착수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된 셈이다.

신 9단은 “한국기원의 실수가 먼저 있었고, 그 이후에 커제 9단이 실수를 하면서 심판으로부터 ‘주의’를 받게 됐는데 이 과정에서 제가 실수한 부분은 없었다”면서 “그럼에도 중요한 장면에서 대국이 갑자기 중단되면서 집중력이 흐트러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신 9단은 “원래 두려고 생각하던 자리가 ‘블루스팟’(인공지능 추천수)이었는데, 대국이 재개된 이후 제가 착수한 곳은 좋은 수가 아니었다”고 복기했다.

사진 좌측 상단 커제 9단의 백돌 돌통 안에 흑돌이 들어가 있다. 바둑TV 화면 캡처
사진 좌측 상단 커제 9단이 돌통에 있던 흑돌이 ‘사석(따낸 돌)’이 아님에도 사석통에 넣었다(200수 진행 시점). 이후 10수가 더 놓인 상황에서 심판이 개입해 해당 행위에 대해 ‘주의’ 처분을 내렸다. 바둑TV 화면 캡처

신 9단은 “결과적으로 이 대국을 이겼기 때문에 당시에는 얘기하지 않았었는데, 제 실수로 인해 심판이 들어온 게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제가 문제를 제기했어야 하는 상황이었다”면서 “대국 당시 ‘반집 승부’라고 보고 있었기 때문에 대국에 영향이 갈 것 같아 항의하지 않고 바둑을 이어서 뒀다”고 말했다.

이는 커제 9단의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커제 9단은 줄곧 결승 3국에서 심판 개입 시점을 문제 삼으면서, “변상일 9단이 둘 차례에 심판이 개입한 것은 의도적으로 변 9단에게 시간을 벌어주기 위함”이라고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 9단의 설명대로, 대국에 집중하고 있는 상황에서 바둑이 중단되면 착수할 차례인 쪽의 피해도 만만치 않다.

210수(백돌 세모 표시)가 놓인 장면에서 심판이 개입하면서 대국이 중단됐다. 신진서 9단은 대국 재개 후 검은색 동그라미 자리에 붙여갔는데 이 수가 실수였다. 대국이 중단되기 전 두려고 했던 빨간색 동그라미로 입구자 행마하는 자리가 ‘블루스팟’(인공지능 추천수)이었다. 

신진서 9단은 “커제가 가장 억울할 부분은 역시 2국 당시 바둑과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 부분에서 벌점 2집을 받고, 경고가 누적되면서 반칙패로 이어진 점”이라며 “논란이 될 수 있는 내용이고, 이 부분은 룰이 엄격하다는 점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다만 3국에서 갑자기 너무 크게 화를 낸 점은 아쉽다”고 짚었다.

이어 신 9단은 “이번 룰이 갑자기 만들어지고 갑자기 시행된 상황에서 반칙패가 나왔다면 재대국이 맞다고 생각하지만, 사석 관련 부분은 한국이 지난 20년 동안 중국에 부탁을 해왔는데 개선이 안 됐던 점”이라고 강조했다. 신 9단은 “중국이 한국룰을 존중하지 않았기 때문에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는 논의가 나왔고, 룰을 엄격하게 하면 이런 일이 안 생기겠다고 보고 개정을 했는데 거기서 미스가 있었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일화도 하나 소개했다. 중국에서 대국이 잦은 신 9단은 “지난해 중국리그에서 처음으로 화장실을 가려면 착수를 하고 나서 가야 한다는 규정이 생겼다”면서 “착수를 하지 않고 그냥 일어나면 ‘주의’인지 ‘경고’인지 ‘벌점’인지 그런 부분을 정확히 못 들었는데, 해당 규정에 대해 중국 왕타오 감독이 알려주면서 지키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저는 해당 룰을 알고 신경을 쓰면서 대국하고 있었는데, 저와 대국하던 중국 선수가 본인 둘 차례에 착수를 하지 않고 일어나서 화장실에 갔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착수를 하지 않고 화장실에 간다고 해서 그게 바둑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건 전혀 아니”라고 언급한 신 9단은 “그럼에도 규정을 알고 있으면 신경이 쓰인다”고 말했다. 신 9단은 “당시에도 ‘이건 바둑과 관계가 없으니 상관없어’가 아니라, ‘일단 그래도 규정이 있는데, 상대가 왜 규정을 안 지키지’ 하는 생각이 잠깐은 들었다”고 부연했다. 다만 중국은 심판과 관련된 문화가 한국과는 달라 관계자가 대국 중에 개입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규정을 위반한 중국 선수는 어떤 불이익도 받지 않았다.

변상일 9단. 쿠키뉴스 자료사진

변상일 9단이 2국에서 심판을 불러 커제 9단이 사석을 돌통에 넣지 않은 점에 대해 의사표시 한 점도 신 9단은 같은 맥락에서 추측했다. 규정이 있고, 해당 규정을 상대가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그 점이 신경 쓰였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신 9단은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라고 전제한 뒤 “3국 상황만 놓고 보면 변상일 9단이 억울할 수도 있다고 본다”면서 “변상일 9단도 피해자인데 지금 너무 심하게 공격당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신 9단은 “원만한 해결을 위해서는 한국과 중국이 서로 대화를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분위기도 안 나오고 있는 것 같다”면서 “한국만 잘못했다 하더라도 대화는 할 수 있는 건데, 지금 이 문제는 한국에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닌데도 대화 자체가 안 되게 나오는 중국 대응이 개인적으로는 많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끝으로 신 9단은 “변상일 9단에게 이미 너무 많은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고, 그를 조금이라도 옹호하는 것은 물론 이 사태를 헤쳐나가기 위한 메시지를 던지는 사람들에게도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면서 “상대의 아픔으로 자신의 아픔이 치유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 9단은 “부디 이번 사태가 단순히 한·중 감정 싸움으로 흘러가지 않고, 조금이라도 서로를 이해하고 바둑계를 옳은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기 위한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아울러 “지금이라도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모두 수긍할 수 있는 국제룰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 신 9단은 “공통된 룰을 만들기 어렵다면, 최소한 서로 수긍할 수 있는 규정이라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한편 한국기원은 지난 3일 긴급 운영위원회를 열고 논란이 된 룰에 대해 “반외 규정에 의한 경고에 대해서는 누적 반칙패 규정을 없애기로 했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영재 기자
youngjae@kukinews.com
이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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