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정의 1도 올린 세상] 감자꽃 따는 명절

[이연정의 1도 올린 세상] 감자꽃 따는 명절

이연정 충무교육원 교육연구사

유난히 무덥고 긴 여름이 추석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입추, 말복이 지났고 모기 입도 삐뚤어진다는 처서와 백로도 지났다. 하지만 한반도는 여전히 뜨겁고 추석 연휴 조차 폭염주의보가 발령되었다. 여름이 너무나 뜨겁고 느리게 지나고 있다. 

추석 명절은 불안했고 걱정이 많았다. 가족들 모여 제일 처음 한 말은 ‘아프지 말자’, ‘아이 잘 챙겨라’였다. 엄마는 물가가 비싸 장보기가 너무 어려웠다고 하소연했다. 밥상을 보니 지난해보다 반찬 가짓수가 가벼워진 게 사실이다. 흔했던 꼬치전, 산적도 없었고 아삭아삭 배추 겉절이도 없었다.

어린 조카가 열이 나 가족 모두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코로나에 걸렸으면 어쩌나'라는 걱정보다 열이 더 올라 아프면 어디에 있는 응급실을 가야 하나 입을 모았다. 의료대란은 뉴스 속 세상 먼일이 아니라 가족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당면한 현실임을 확인했다.  

무더운 여름을 견디는 만큼 불안한 시기가 지속하고 있다. 평소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들이 생긴다. 시시각각 쏟아지는 뉴스들과 주변 이웃들을 통해 들려오는 사건 사고가 영향을 미친다. 관계의 경계가 사라지는 일들이 일어난다. 얼핏 보면 세상은 강요하지 않는 듯 하나 무언의 메시지를 강요한다. 답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불안이 생긴다. 가족의 명절 밥상이 불안을 반찬으로 삼게 된 것처럼. 

불안은 왜 생길까?

알랭 드 보통은 『불안(STATUS ANXIETY)』은 불안이 사회적 지위에 의해 생긴다고 보았다. 즉 세상이 나를 보는 시각에 의해 불안이 촉발한다고 보았다.

김석의 『불안』은 불안을 나다움의 상실을 경고하는 존재의 목소리라 말한다. 불안이 경쟁 지상주의나 물질 만능주의 등의 사회 풍조나 전염병, 경기침체 같은 사회 문제 등으로 발생한다고 전제하며 사회 문제 개선이 치유의 근원이라 말한다. 어찌 되었든 불안은 삶과 떨어질 수 없는 연속선상에 있으며 개인이 원인이든 사회 문제가 원인이든 늘 존재한다.  

추석 명절 불안함을 무릅쓰고 고향으로 향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험난한 사회에서 피폐해진 정서는 가족의 만남, 대화와 위로, 지지와 격려를 통해 위로받고 치유된다.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성장하면서 겪었던 다양한 에피소드는 결속과 유대감으로 남아 개인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 이웃에 대한 배려와 관심은 소외된 이웃이 의지할 수 있는 희망과 디딤돌이 된다. 이번 명절은 무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품을 키우는 보름달처럼 넉넉한 명절이 되었으면 좋겠다. 

『좋으니까 그런다』(천년의 시작, 조재도)의 ‘감자꽃’ 시를 보면 ‘감자꽃 예쁘지만 / 감자꽃 따줘야 감자 밑 실하게 든다 // 척박한 땅 / 오래 버티고 싶으면 / 감자꽃과 친해져라 / 고구마꽃 벼꽃 옥수수꽃과 / 친해져라 // 도끼로 허공을 휘두르지 말고 / 앞에 놓인 나무를 정확히 찍어라//고 하였다.

감자 농사를 지을 때 큰 감자알을 얻으려면 순치기를 해야 한다. 영양분이 좋은 감자알을 얻으려면 감자꽃을 따야 한다. 여리고 순한 이파리와 예쁜 감자꽃을 따는 일은 불안과 행복이 공존하는 삶의 이치와 닮아있다.

우리는 삶을 떠나서 살 수 없다. 삶은 불안의 연속이고 불안은 의지와 상관없이 들락날락한다. 사회가 척박하고 어려울지라도 나와 가족, 이웃 등 공동체를 소중히 여겼으면 좋겠다. 지쳤을 가족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소외된 이웃의 담장을 들여다보라. 감자꽃, 벼꽃, 옥수수꽃과 친해져 그것들이 삶을 지탱할 열매를 맺을 수 있게 살펴봐야 한다.  

추석 밥상머리에서 가족들 한탄을 듣는다. 모두 살기 팍팍하고 어렵다는 이야기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이웃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우리가 함께 겪었던 웃기지만 슬픈 사건들을 말하며 박장대소한다. 걱정과 염려, 칭찬과 축하 안부가 송편 빚듯 매끈하게 빚어 나온다.

우리는 이렇게 감자꽃을 따는 명절을 보내는 중이다.  

◇이연정
이연정 충무교육원 교육연구사는 공주사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2002년 교직에 입문했다. 이후 아산교육청, 충남교육청 장학사를 거쳤다. 충남교사문학회 활동을 시작으로 현재 (사)한국작가회의충남지회 사무처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세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사회 온도를 1% 올리기 위해 교육 현장에서 치열하게 공감과 소통에 나서고 있다. 매달 한 차례 칼럼으로 만난다. [편집자 주]

홍석원 기자
001hong@kukinews.com
홍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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