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불명 빠지고 마취없이 꿰매고…‘소아응급의료’ 빨간불

의식불명 빠지고 마취없이 꿰매고…‘소아응급의료’ 빨간불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 안으로 119구급대원이 들어가고 있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응급실을 찾지 못한 2살 어린이가 의식불명 상태에 빠지고, 탈장 증세를 보인 생후 4개월 영아가 병원을 전전하다 3시간 만에 치료를 받는 등 소아 응급의료 위기가 커지고 있다.

9일 의료계에 따르면 7개월째 이어진 의료공백 상황에서 응급 진료, 환자 수용이 불가능한 상황이 잇따르고 있다. 수용 가능한 응급실을 찾아 떠도는 소아응급 환자 사례도 이어진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지난달 4일 오후 8시40분경 경기 고양시 일산 동구에서 생후 28개월인 A양이 발열과 함께 경련 증상을 보였다. 가족의 119 신고 이후 10여분 만에 구급대원이 도착했다. 그러나 구급대원은 곧바로 병원으로 출발할 수 없었다. 경기 서북권역 병원 6곳에 전화했지만 모두 환자를 받아줄 수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급한 대로 집에서 가장 가까운 대학병원으로 향했지만 역시 진료를 거절당했다. 의료진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병원을 수소문하는 동안 아이의 상태는 악화됐다. A양은 총 11개 병원 응급실에서 이송이 거부됐고, 119에 신고가 접수된 후 약 1시간이 지나서야 12번째 병원인 인천 인하대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 2살에 불과한 A양은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를 겪고 치료시기를 놓쳐 심각한 뇌손상을 입었으며 한 달째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지난 8일 오전엔 청주시 상당구의 한 어린이병원에 입원해 있던 생후 4개월 된 B군이 탈장과 요로감염 증세를 보여 상급병원으로 이송이 필요하다는 신고가 119에 접수됐다. B군은 지난 7일부터 고열 증상이 나타나 어린이병원을 찾았고, 입원 이후 검사 과정에서 탈장 증세를 발견한 것으로 전해졌다. B군은 복강 내 장이 요도로 말려들어가 장을 원래 위치로 되돌리는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구급대는 도내 병원 2곳과 인접한 타·시도 8개 병원에 이송을 요청했으나, 소아 전문의 부재 등을 이유로 수용 불가 통보를 받았다. 119구급대는 수소문한 끝에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으로부터 수용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고, B군은 3시간여 만에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다.

30개월 아이가 응급실을 전전하다 마취 없이 머리를 세 바늘 꿰맨 사연도 뒤늦게 전해졌다. 지난 2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의료대란이 남의 일인 줄 알았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작성한 C씨는 집 소파에서 놀다가 떨어져 머리에 피가 나는 아이의 치료를 위해 병원에 연락을 돌린 사연을 알렸다. 겨우 찾은 의원급 병원에서 치료가 가능했지만 마취과 전문의가 없어 마취 없이 머리를 꿰매야 했다.

C씨는 “응급실 대부분이 통화 연결이 안 돼서 발품 팔며 직접 찾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근처 대학병원부터 일반병원까지 응급실이 있는 모든 곳에 전화를 돌렸다”면서 “말로만 듣던 의료대란이 내게 벌어질 줄 몰랐다. ‘정말 심각한 상황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119구급차가 도착해 있다. 사진=박효상 기자

육아카페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입원 가능한 소아병원 또는 응급실을 묻는 글이 쏟아진다. 응급실 진료 대란 우려가 커지면서 주변 아동병원 상황이나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 당직 등의 정보를 구하는 것이다. 소아응급센터는 소아 응급환자를 24시간 진료할 수 있는 의료진과 장비를 갖춘 응급실로 전국에 11곳이 지정돼 있다.

의료 현장은 악화일로를 걷는다. 추석 연휴를 기점으로 응급진료체계가 도미노처럼 무너질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 비상대책위원회가 지난 3∼7일 응급의학 전문의 회원을 대상으로 응급실 현황에 관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해 503명의 응답을 분석한 결과, 97%가 추석을 위기 혹은 심각한 위기 상황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응답자의 55%는 병원 응급실 병상을 축소해 운영하고 있다고 답했다.

비대위는 “전국 대부분의 수련병원들이 추석 연휴 응급의료 위기를 우려하고 있고, 의료 자원의 한계로 인해 갈 곳 없는 환자들은 적절한 처치를 받지 못하게 될 것”며 “공중보건의, 군의관 파견은 지난 6개월과 마찬가지로 실효성이 없을 것이다. 남아 있는 유일한 방법은 국민들에게 ‘제발 응급실에 오지 말아달라’고 무릎 꿇고 비는 방법뿐이다”라고 밝혔다.

의료진은 버티기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경기 소재 소아응급센터 응급의학과 D교수는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A양 사고에 대해 “안타깝고 슬프다”면서 “더 안타까운 것은 이 같은 일이 어쩌다 발생하는 게 아니라 빈번하게 벌어지는 일이라는 것”이라고 짚었다.

D교수는 “양평, 남양주, 여주, 안양, 이천 등 원거리 지역에서 아이가 경련을 일으켰는데 갈 데가 없다고 연락이 오고, 심지어 충청도나 강원도에서도 연락을 많이 받는다”며 “의료진이 최선을 다해 버티고 있지만 이런 사고가 연이어 터지면 버티던 사람들도 좌절감이 커져 그만두고 싶어진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전국적으로 소아응급센터가 부족하고 소아응급이 위기라고 누누이 말해왔다. 이젠 배후진료과든 비상체계든 다 나가떨어진 상태다”라며 “남아있는 사람들은 대안이 나올 거라고 기다리면서 버텼는데 이런 식이면 희망은커녕 상황만 악화될 분이다”라고 말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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