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검증구역’ 윤비 “선입견이 깨졌다” [쿠키인터뷰]

‘사상검증구역’ 윤비 “선입견이 깨졌다” [쿠키인터뷰]

래퍼 윤비. 웨이브

정말이지 래퍼 윤비에게서 이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다. “겸손해졌어요. 선입견이 이렇게 무서운 거구나.” 해당 발언이 나온 건 지난달 9일 공개된 웨이브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이하 사상검증구역) 6화. 출연자들은 ‘대중매체 속 조선족 범죄자 묘사는 사라져야 한다’는 주제로 익명 토론을 벌인 참이다. 소수자 재현 윤리보다 창작의 자유를 더 중요하게 여겼던 윤비는 토론에 참여하며 생각이 달라졌다고 고백한다.

정치·젠더·계급·개방성 4개 분야에서 점수를 매겨 출연자에게 사상 코드를 부여하는 이 프로그램에서 윤비는 럭비공처럼 튀는 인물이었다. 우파·부유·이퀄(안티 페미니즘)·전통 사상으로 분류된 그는 자신과 코드가 가장 비슷한 슈퍼맨(정치인 김재섭)과 자주 부딪쳤다. 정반대 사상(좌파·서민·페미니즘·개방)을 가진 백곰(정치인 박성민)이나 하마(작가 하미나)와는 가까워졌다. 흑인 인어공주를 싫어했다”고 말하면서도, 뒤늦게 합류한 외국인 출연자에게 공감과 포용을 발휘했다.

지난 20일 서울 여의도동 한 회의실에서 만난 윤비는 스스로도 놀라워하는 눈치였다. “제가 백곰이나 하마 누나랑 친해질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심지어 백곰은 첫날 자신과 제일 안 맞을 것 같은 사람으로 저를 뽑았대요. 지금은 제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줄 만큼 친해졌어요.” 그는 “‘사상검증구역’ 덕분에 사람을 얻었다”고 했다. “현실에선 저와 다른 사상을 가진 사람과 만날 기회가 많지 않잖아요. 선입견 때문에요. 그런데 프로그램 안에서 교류하면서 저와 사상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많이 깨졌습니다.”

‘사상검증구역’ 속 윤비. 웨이브

카카오TV ‘생존남녀: 갈라진 세상’에서 우승하고 웨이브 ‘피의 게임2’에서 최후 6인까지 오른 윤비는 자칭 “서바이벌 중독자”다. 지금껏 출연한 생존 예능만 4개. ‘사상검증구역’은 그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프로그램이었다고 한다. “여긴 토론과 화합을 중요시해요. 저는 세력을 만들어 칼춤을 추고 싶었는데, 제가 칼 꺼내는 기색만 보여도 주변에서 저를 말리는 느낌이었죠.” 윤비는 방송 초반 자신에게 거짓말한 출연자가 있다며 불안함을 호소한다. 공동체에 불신을 조장하는 불순분자를 찾자고 강력히 주장하다가 역으로 의심받기도 한다. 시청자 사이에선 놀림거리가 됐어도 그는 개의치 않았다. “시작부터 긴장하려고 노력했어요. 일부러라도 프로그램에 과몰입해야 서바이벌의 재미가 살아나니까요.”

방송이 서서히 입소문을 타면서 후속 콘텐츠를 요청하는 목소리도 높아진다. 웨이브는 방송 공개 후 재회한 출연자들 모습을 유튜브에 공개할 예정이다. 윤비는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에 리뷰 영상을 올리고 있다. 그는 “‘사상검증구역’은 명작 중의 명작”이라며 “앞으로 나올 서바이벌 예능의 형식을 많이 바꿀 것”이라고 내다봤다. 프로그램에 피바람을 불게 할 조언도 했다. “상금을 현금으로 준비해 촬영장에 두면 출연자들 행동도 달라질 것 같아요. 상금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다들 돈에 욕심내지 않더라고요. 방에 돈다발이 쌓여있다면? 다르게 행동했을 거예요.”

윤비는 자신을 “미워할 수 없는 빌런(악당)”이라고 했다. “‘찐 빌런’은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모습과 실제 자기 모습 사이에 괴리가 있어요. 카메라를 너무 의식하느라 빌런 짓을 하는데, 스스로는 빌런인 줄도 모르죠. 저는 숨기는 게 없어요. 방송에서 근사하게 보이고 싶은 바람이나 상금에 대한 욕심도 크지 않아요. 저는 그저 ‘빡세게’ 게임하는 ‘빡겜러’예요. 그래서 방송 초중반엔 저를 욕해도 마지막으로 갈수록 ‘정감 간다’는 반응이 많아지나 봐요.” 음악보다 예능으로 더 알려진 데 따른 초조함은 없다고 했다. 윤비는 “조바심이 드는 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쫓기는 기분보단 내 페이스대로 살아가려 한다”고 말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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