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유리 “대표작 없는 지금이 내겐 황금기” [쿠키인터뷰]

권유리 “대표작 없는 지금이 내겐 황금기” [쿠키인터뷰]

배우 권유리. SM엔터테인먼트

인터뷰는 흡사 GV(관객과의 대화) 같았다. 영화를 두고 여러 해석이 오갔다. 오는 13일 영화 ‘돌핀’(감독 배두리)을 내놓는 배우 권유리와 만난 자리가 그랬다. 그는 취재진 질문에 “지금 생각해보니…”라며 작품에 새롭게 의미를 부여하거나 “그런 해석은 신선하다”고 감탄하기도 했다. 그룹 소녀시대 멤버로 활동하며 가요계 전설로 불렸던 그는 인터뷰 때도 소문대로 성실했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순간이 ‘돌핀’(영화에서 뜻밖의 행운을 나타내는 상징)일 수 있다”는 말에 진정성이 느껴졌다.

영화 제목 ‘돌핀’은 비공식 볼링 용어다. 도랑에 빠진 볼링공이 돌고래처럼 툭 튀어 올라 남은 핀을 쓰러뜨리는 상황을 가리킨다. 점수로 올라가진 않지만 선수에게 용기를 주는 귀한 행운이다. 권유리가 연기한 나영은 그런 위로가 절실하다. 인생의 유일한 이유였던 가족이 곁을 떠나려고 해서다. 재혼을 앞둔 엄마는 오래된 주택을 처분하고 아파트로 이사하라고 강권한다. 동생은 서울에 가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볼링공을 굴리며 속을 달래던 나영은 의외의 인물에게 위로받으며 자기 삶의 가능성을 넓혀간다.

권유리는 나영이 자신과 닮았다고 했다. 쇼 비즈니스 세계 최정점에 섰던 그가 이웃집 숟가락 개수까지 알 만한 시골 마을 처녀와 닮았다니. 권유리는 말했다. “저는 어린 나이에 큰 사랑을 받았고 많은 것을 해냈어요. 새로운 도전에 쉽게 적응하는 듯이 보였을 거예요. 그런데 실은 저는 느린 사람이에요. 빠른 변화가 익숙하긴 해도, 제가 그걸 계획하거나 원하진 않았죠. 나영이가 가진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제게도 있어요.” 나영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본 권유리는 스크린에서 한결 편안한 모습이다. 그는 화려한 옷이나 화장 대신 수수한 차림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 “생활감을 주고 싶어” 영화에서 입고 나온 의상을 평소에도 착용하고 화장도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한다.

‘돌핀’ 속 권유리. 마노엔터테인먼트

영화는 관객에게 ‘소소하지만 확실한 위로’를 준다. 지금 가진 것을 놓치고 싶지 않아 안달하는 나영이 천천히 마음을 열고 변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서다. 때론 변화가 버겁고 부대껴도 “다 쓰러트리든 말든 (볼링)핀은 계속 내려온다”는 삶의 진리를 나영은 이제 안다. 권유리는 이런 ‘돌핀’의 메시지를 “순환”이라고 받아들였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 게 그의 믿음이다. 어쩌면 권유리는 채우기 위해 비우는 시간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소녀시대와 보낸 치열하고 영광스러운 시간을 비우고 다양한 배역으로 자신을 채우는 시간이다. 그래서 그는 ‘대표작이 없다’는 말에도 “그 덕에 장르와 캐릭터를 가리지 않고 도전할 수 있어 황금기를 보내고 있다”고 답한다.

“시나리오가 다양하게 들어와요. 지금은 광역수사대 경찰(tvN ‘가석방심사관 이한신’)을 하고 있는데요. 그 전엔 스릴러 영화(‘미스트’)를 찍었고, 사극(MBN ‘보쌈-운명을 훔치다’)도 거쳐왔죠. 고정된 이미지나 대표작이 없는 상태는 가능성이 무한하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이렇게 말하는 권유리에게선 15년 넘게 ‘톱 가수’ 자리를 지켜온 공력이 느껴졌다. 그는 “여러분이 주시는 사랑이 줄거나 없어지면 어떡할까 두려울 때가 있었다. 동시에 인기보다 특별한 건 뭘까 고민도 했다. 지금은 내가 나로서 존재하는 것이 소중하게 느껴진다”며 “내게 딱 들어맞는 옷을 찾기 위해 부단히 나아가는 중이다. 포기하지 않을 지구력만 갖춘다면 생각보다 내가 더 대성할 수도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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