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험생 딸에게 엄마는 결국 김밥을 먹였습니다’

‘수험생 딸에게 엄마는 결국 김밥을 먹였습니다’


“병원 안 갈래요. 우리 딸에게 김밥 줘야 해요.”

수능 시험이 치러진 13일 오전 6시53분쯤 서울 은평구 응암시장 앞 횡단보도. 길을 건너던 40대 아주머니 정모씨가 미처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달려온 다마스 차량에 부딪혀 쓰러졌다. 정씨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병원에 데려가려 하자 “딸을 만나야 한다”며 한사코 구급차에 타기를 거부했다.

수험생 딸을 둔 정씨는 전날 긴장이 돼서 뜬 눈으로 밤을 새우다 쪽잠이 들었는데 눈을 뜨니 날이 밝아 있었다고 했다. 부랴부랴 딸과 함께 집을 나섰지만 도시락은 고사하고 아침밥도 못 챙겨준 게 못내 마음에 걸렸다. 시험장인 선일여고까지 가던 중 버스정류장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잠깐만 기다리라”고 한 뒤 정씨는 300m 떨어진 김밥 가게로 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다 사고가 났다.

현장에 출동한 서부경찰서 응암지구대 강변석(41) 조영래(52) 경위는 고민에 빠졌다. 빨리 사고 처리를 해야 하는데 정씨는 계속 “딸에게 가겠다”고만 했다. 다행히 부상이 그리 크지는 않았다. 이들은 일단 정씨를 경찰차에 태워 딸이 기다리는 정류장으로 달렸다.

조 경위는 “그래도 따님이 아침은 먹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정류장 근처 김밥 가게 앞에 차를 세웠다. 경찰차를 타고 온 어머니를 보고 당황한 딸에게 강 경위는 “어머니는 우리가 책임질 테니 마음 편하게 시험을 보라”며 다독였다. 12년간 준비한 시험을 갑작스러운 어머니 사고 소식으로 망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최대한 태연하게 행동했다고 한다. 정씨는 무사히 김밥을 전해준 뒤 시험장으로 들어가는 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그제야 병원으로 향했다.

정부경 기자 vicky@kmib.co.kr
정부경 기자 기자
vicky@kmib.co.kr
정부경 기자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추천해요
    0
  • 슬퍼요
    슬퍼요
    0
  • 화나요
    화나요
    0
쿠키뉴스 헤드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