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기만 6개월이래요.”
서울 성동구에 사는 최모(30대·여)씨는 복직을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생후 13개월 아들의 어린이집 하원 시간과 퇴근 시간이 맞지 않아서다. 오후 3시부터 7시까지 4시간 동안 아들을 돌봐줄 사람을 구하려고 서울시의 등하원 아이돌봄 서비스를 신청했지만, 대기가 6개월을 넘어갈 수도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육아휴직이 끝나가는 최씨는 이제 웃돈을 얹어서라도 하원 도우미를 구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등하원 아이돌봄 서비스는 ‘서울형 틈새 아이돌봄 3종 서비스(이하 서울형 틈새 돌봄)’ 중 하나로, 등하원이 필요한 양육 공백 가정의 만 12세 이하 아동을 대상으로 만들어졌다. 이는 서울시가 2년 전 정부 지원 아이돌봄 서비스(이하 아이돌봄 서비스)의 수급 불균형 해소를 목표로 시행한 특화사업이다.
앞서 아이돌봄 서비스는 시설 보육의 사각지대를 보완하기 위해 지난 2007년 여성가족부 주도로 도입됐다.
부모들의 호응은 높았다. 아이돌봄 서비스가 저렴한 가격은 물론 전문성과 신뢰도를 두루 갖췄기 때문이다. 아이돌보미로 활동하려면 총 120시간의 이론·실습 교육을 이수해야 하는 데다, 채용 시 청소년지도사와 보육교사 등 관련 직종 자격·면허 소지자를 우대한다. 그만큼 인기가 많아 아이돌보미 매칭까지 오래 걸린다는 불만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에 시는 양육자 수요에 맞춘 서비스(등하원·병원동행·영아전담) 매칭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인센티브를 마련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수요보다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 이어지면서 기대만큼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아이돌보미의 지급 수당을 얼마 늘리는 정도로는 근무를 유인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8개월 기다릴 바에야…대기마저 취소하는 엄마들
“이용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거예요.” 서울 성동구에서 2살 자녀를 키우고 있는 이모(30대·여)씨가 딱 잘라 말했다. 맞벌이 부부인 그는 일찍이 마음을 접고 민간 업체를 통해 등하원 도우미를 구했다. “문의해 보니 8개월은 넘게 기다려야 한다던데요.”
더불어민주당 백승아 의원실이 여성가족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3월 서울시 소속 아이돌보미는 3905명으로 올해 1분기(1~3월) 80명이 신규 채용됐다. 하지만 지난해 말(3872명)과 비교하면 고작 33명 늘어난 수준이다. 반면 지난 1분기 퇴직한 아이돌보미는 99명에 달했는데, 무기한 휴직 등으로 집계되지 않은 퇴직 인원까지 포함하면 실제 규모는 더 클 것으로 보인다.
올해 서울시 아이돌봄 서비스를 실제로 이용한 가구 수는 같은 기간 6503가구로 집계됐다. 자치구별 가족센터를 비롯한 서비스 제공기관의 수기 관리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1711가구가 평균 9.5개월 동안 대기 중이다. 가장 길게는 19개월 넘도록 기다리고 있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뒤에도 대기 가구의 규모는 1775가구로 나타났다.
와중에 대기를 취소하는 가정은 지난 3월 한 달간 465가구에 달했다. 높은 수요에 비해 공급 속도가 더디다 보니 신청 자체를 취소하는 대기자가 많다는 것이 가족센터의 설명이다.
성동구 가족센터 관계자는 “대기 중 취소하는 경우도 있지만, 긴 시간 끝에 매칭이 됐는데도 서비스를 안 받겠다고 하는 경우도 곧잘 있다”며 “민간 업체를 활용하거나 조부모의 도움을 받아 양육하고 있다더라”고 전했다.
인센티브 준다지만, 시간당 1000원 “어림없어”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홍모(30대·여)씨는 지난 3월 등하원 아이돌봄 서비스에 대기를 걸어놨다. 첫째 아이를 출산한 지 2년 만에 둘째 아이를 낳아 하원 도우미의 손길이 간절했다. 3개월이 지나도록 매칭은 되지 않았다. 그는 “언제 도우미가 연결될지 모르겠다”며 지역 기반 커뮤니티 플랫폼 ‘당근마켓’에 구인 글을 올렸다. 시급은 1만5000원. 수요가 몰리는 하원 시간대 평균치 급여다.
아이돌보미의 기본시급은 1만590원으로, 최저임금 대비 560원 높다. 추가 수당은 서비스의 종류에 따라 다르게 발생한다. 영아종일제·시간제 기본형을 제외하고 시간제 종합형 3650원(1만4240원)과 질병감염 아동지원 3180원(1만3770원)을 추가로 지급하는 중이다. 아이돌보미가 가사 활동을 함께 수행하거나 감염 위험을 감수해야만 추가 시급을 받을 수 있는 셈이다.
서울시는 서울형 틈새 돌봄을 제공한 아이돌보미에게 시간당 1000원을 별도로 지급하고 있다. 병원동행 서비스 시 월 최대 5만원까지, 영아전담·등하원 서비스 시 월 최대 10만원까지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또한, 돌봄 수요가 많은 등하원 서비스를 60시간 이상 제공한 아이돌보미는 5만원의 교통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조차 시급 1만5천원을 웃도는 민간 서비스 가격대보다 못한 보수로 직업적인 매력이 크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진용 서울시 가족담당관은 “돌봄 대기자 수요에 비해 아이돌보미 지원자 규모가 적다는 점은 인지하고 있다”며 “일자리의 매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 “부족한 공급 늘리려면 처우 개선 필요해”
서울시는 올해 들어 아이돌보미 1000명을 확충하겠다고 약속했다. 오후 4시부터 이용 가능했던 등하원 아이돌봄 서비스는 3시간 앞당겨 오후 1시에 제공받을 수 있게 됐다.
여성가족부도 지난 1월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아이돌보미 수를 늘리기 위한 대책을 마련했다. 36개월 이하 영아를 돌보는 아이돌보미에게는 시간당 추가수당 1000원을 지급한다. 또 지역과 상관없이 수요가 집중되는 등하원 서비스는 노인 일자리 사업과 연계해 시범 실시할 예정이다.
하지만 아이돌봄 서비스 공급 문제를 해결하려면 급한 불 끄듯 해서는 안 된다는 비판이 나온다.
안창숙 한국가사노동자협회 대표는 “어르신들에게도 돌봄노동은 똑같이 어렵다”며 “하원 서비스만 시급 1만3000원을 주는데도 인력 모집은 쉽지 않다”고 밝혔다.
한국가사노동자협회는 서울시 민간위탁 사업 ‘아이돌봄기동대’를 운영 중이다. 60세 이상 노인 127명이 등하원 등 시간제 보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지난 2018년 시작해 올해로 8년째다. 안 대표는 “당장의 인력 구멍을 메우기도 힘겹다”며 단순한 일자리 확대 이전에 일자리의 질부터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시에 소속된 아이돌보미 중에서도 60세 이상 고령층이 가장 많다. 지난 3월 기준 해당 연령층은 2553명으로 전체의 65.4%를 차지했다.
전문가들은 “아이돌봄 서비스에 대한 공급 인력 확보를 넘어 적절한 처우 기준부터 다시 세워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아이를 돌보는 데는 큰 책임이 따른다”면서 “조금만 실수해도 컴플레인이 걸리는 일자리에 몇 천원 더 준다고 과연 문제가 해결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체력적인 문제부터 컴플레인에 대한 부담까지 감당하기는 어렵지 않겠냐”며 노인 일자리를 활용한 아이돌봄 지원 사업의 현실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애당초 돌봄노동의 처우는 공로에 비해 열악한 편이었다”며 “돌봄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채 정신적·육체적 스트레스를 감당해야 하는 저임금 노동을 기피하는 건 당연하다”고 말했다.
이어 “돌봄 노동에 대한 여러 가지 여건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아이돌봄을 비롯한 공공 돌봄 서비스가 최소한의 처우 개선에 앞장서야 돌봄의 질도 향상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