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 “껌 하나 주세요.”

지난 3월 초 말쑥한 정장 차림의 김모(48)씨는 부산의 한 허름한 슈퍼마켓에 들어가 구겨진 5000원짜리 지폐를 꺼내 500원짜리 껌 한통을 샀다. 김씨는 이어 건너편 철물점으로 이동해 전기테이프 하나를 사면서 5000원짜리를 주고 거스름돈을 받았다. 슈퍼마켓과 철물점 주인들은 며칠이 지난 후 은행 입금 과정에서 이 돈이 위조지폐라는 사실을 알았다. 주인들은 모두 노인이었고 상점 인근에는 CCTV도 없었다.

김씨는 앞서 지난 1월에도 서울 자양동에서도 비슷한 수법으로 잔돈을 바꿨다. 가게 주인 황모(62·여)씨는 그 돈이 위폐라는 은행측 얘기를 듣고 지폐번호를 적어뒀다. 그런 사실을 모른 김씨는 지난 5일 이 가게에 다시 들러 돈을 바꾸려다 황씨의 신고로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서울 광진경찰서는 2005년 3월부터 8년간 5000원권 구권 화폐 5만여매(2억5000여만원)를 위조해 사용한 혐의(통화위조 및 사기)로 김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7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경기도 성남시의 한 단독주택 지하에 작업실을 차려놓고 포토샵 등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5000원권 구권 화폐를 만들었다. 그가 유통한 위조지폐는 8년간 4만4000여매(2억2000만원)에 달했다.

김씨는 2004년쯤 유통사업에 실패해 신용불량자로 전락한 뒤 천식에 걸린 아이 치료비를 위해 화폐 위조에 손을 댔다. 대학에서 컴퓨터 관련 학과를 나온 그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활용해 5000원권 율곡 이이 선생의 그림자 효과까지 정교하게 위조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유통된 5000원권 위조지폐 4438매 중 4239매가 김씨가 만든 것이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