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쿠키 영화] 오랜만에 순수 토종 애니메이션이 우리 곁에 소리 소문 없이 찾아왔다. 요란스런 광고도 없이, 멀티플렉스 스크린을 내세우지도 않고 단출하지만 전국에서 어린이와 가족들을 맞는 꿩 가족의 이야기 ‘엄마 까투리’가 바로 그것이다.
가정의 달 5월을 막 보내버렸지만 웃음과 사랑, 감동을 안겨주며 눈가에 이슬이 맺히게 하는 애니메이션, 특히 <강아지 똥>과 <몽실언니>로 유명한 권정생 선생의 원작 동화를 그대로 스크린에 옮겨놓은 것으로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을법한 작품이다.
꿩 엄마(까투리)와 꿩 병아리(꺼병이)들을 통해 가족을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한국 애니메이션의 힘을 다시금 실감케 해주는 <엄마 까투리>와 함께 여름나들이를 나서보자.
끝이 없는 어머니의 사랑
엄마 까투리는 벌레들을 잡아다 아홉 꺼병이들에게 먹이며 숲 속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다. 이들 9형제의 막내 막동이는 언니 오빠들과 숲속을 모험하는 일이 가장 즐거운 일이고, 엄마에게 숲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며 지낸다. 엄마를 따라 나서다가도 가끔 풀벌레에 한눈을 팔아 길을 잃기도 하지만 언제가 엄마가 지켜주기 때문에 걱정이 없다. 자장가를 곱게 불러주기도, 비가 오면 두 팔로 아홉 형제를 모두 가려주는 엄마 까투리. 그러던 어느 날 숲 속에 큰 불이 나고 겁에 질린 형제들에게 엄마는 ‘걱정마라’며 안심시켜준다. 하지만 산불은 무섭기만 하다. 과연 엄마는 형제들을 모두 무사히 지켜주실까?
사람이건 까투리건 엄마의 사랑은 크고 그 끝을 알 수가 없다. 엄마 까투리는 오소리의 위협으로부터 형제들을 지켜내고, 고운 목소리로 형제들에게 자장가를 불러주시며, 냇물에 떠내려가는 막동이를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자식을 지키려는 엄마 까투리의 모습을 통해 관객들은 크고 끝없는 어머니의 사랑을 느끼며 감동하고 눈물짓게 된다.
우리의 소중한 것들이 담겨있다.
‘엄마 까투리’에는 우리의 소중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먼저 아홉 형제들의 이름인 막동이(이매), 백이(백정), 부네(부네), 초리(초랭이), 각순이(각시), 하미(할매), 중돌이(중), 선돌이(선비), 양돌이(양반)가 모두 ‘안동 하회탈’에서 유래해 지었다. 또한 원작동화의 배경이 된 권정생선생님이 살던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 마을의 모습을 그대로 작품에 옮겨 놓았다. 선생이 평생 자연을 벗 삼아 지냈던 5평짜리 작은 오두막과 인근의 자연환경이 그대로 작품 속에 담겨있다.
또 엄마와 꺼병이 형제들이 개울을 건너는 장면에선 안동의 전통놀이인 ‘놋다리밟기’가 선보인다. 물이 무서운 막동이가 건너는 장면으로 음력 정월 보름날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람다리를 만들고 그 위로 어린 소녀를 건너게 해주는 세시풍속 놀이를 구현해 냈다. 우리나라의 전통 놀이며, 안동지방의 향토색이 그대로 묻어나는 소중한 장면들이 가득하다.
애니메이션을 통해 다시 만나는 권정생 선생님
엄마를 따라 나들이를 나선 꺼병이 형제들이 메뚜기를 쫓다 가게 된 오두막집엔 백구 뺑덕이가 살고 있다. 늠름한 자태, 커다란 몸집과 달리 순진하고 겁이 많은 백구는 실제로 권정생선생님과 함께 살던 개가 그 모델이다. 또 냇가로 떠내려가는 막동이를 구해주고 어려운 동물들을 지나치지 못하는 착한 심성의 할아버지는 권정생 선생님의 모습이다.
평생 5평짜리 오두막집을 지어 살던 생가의 모습이 그대로 작품 속에 그려져 있다. 지난 2007년 돌아가신 선생의 모습과 심성, 그리고 백구까지 관객들은 이 애니메이션을 통해 다시 만나게 된다. <강아지 똥>,<몽실언니> 등 자연을 배경으로 한 수많은 동화들을 창작해낸 오솔길, 시냇물 등 집 주위와 상냥한 모습을 작품에서 만나며 선생에 대한 반가움과 함께 아쉬운 마음이 동시에 밀려온다.
뛰어난 실력 스텝들의 손으로 자랑스레 빚어지다
‘엄마 까투리’의 자랑은 두말할 것 없이 원작동화를 쓴 권정생 선생이다. 그리고 다음으로 풍부한 감성으로 이야기를 풀어낸 정길훈 감독의 손결을 들 수 있다. 이미 <똑딱하우스>를 통해 세계 어린이 시장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엄마 까투리>를 국내에서는 최초의 3D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다. 또한 작품 곳곳에 삽입된 동요는 백창우 음악감독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가 이끄는 <굴렁쇠 어린이>들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동요들은 엄마와 자식 간의 따뜻한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해준다.
또한 안동시와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의 기획, 안동영상미디어센터와 퍼니플럭스의 실력이 이 작지만 소중한 작품을 일궈냈다. 마지막으로 안동시민과 경북지역민들의 뛰어난 안목이다. 지난 3월 안동시에서 단관 개봉해 80%이상의 좌석 점유율을 기록했고, 경북지역으로 상영관을 넓혀가다 마침내 전국에서 상영되기에 이른다.
몸통보다 머리가 큰 가분수에 호기심어린 커다란 눈망울을 지닌 아홉 꺼병이들의 세상 살아가기가 이 애니메이션의 줄거리다. 엄마 까투리 지극한 사랑과 선한 눈매로 언제나 동물들을 지켜봐주시는 종치기 할아버지가 계시지만 작품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성장한 꺼병이들의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관객들을 뜨겁게 감동시킨다.
이탈리아 카툰스 온 더 베이 국제애니메이션 영화제, 프랑스 앙시 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등에서 이미 인정받은 <엄마 까투리>는 이미 가정의 달이 이미 지났더라도, 28분의 짧은 런닝타임도 아무 상관없이 관객들에게 가족의 소중함과 엄마의 큰 사랑을 느껴보기에 충분하다. 자식들의 손을 잡고, 형제의 손을 잡고 작지만 소중한 감동을 만나러 가보기 바란다.
정지욱(鄭智旭, 영화평론가, nadesiko@unitel.co.kr )
현재 일본 Re:WORKS 서울사무소 편집장으로 일하며,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 심사위원,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부문본심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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