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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된 욕망을 향한 건조한 경고 ‘하우스 오브 구찌’ [쿡리뷰]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 포스터

출발점부터 다르다. 제목부터 ‘구찌 가문’ 이야기인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감독 리들리 스콧)는 정작 우리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로 그려간다. 선악을 구분하지도, 몰입해야 할 주인공을 지정하지도 않는다. 관객들이 좋아하는 삶의 화려한 일면이나, 운명이 엇갈리는 극적인 순간을 강조하지도 않는다. 인물들의 앞날과 함께 이 영화가 어디로 향하는지 지켜보게 만든다.

‘하우스 오브 구찌’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운송회사에서 일하는 파트리치아(레이디 가가)가 어느 날 구찌 가문의 자손 마우리치오(아담 드라이버)를 파티에서 만나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렸다. 마우리치오는 정작 패션업엔 관심이 없고 변호사가 되고 싶어 한다. 마우리치오의 아버지 로돌포(제레미 아이언스)가 두 사람의 결혼을 반대하자, 마우리치오는 아버지와 인연을 끊고 파트리치아의 운송회사에서 일하며 결혼한다. 하지만 파트리치아는 마우리치오가 다시 아버지와 화해하고 패션 업계에서 일하길 원한다.

영화에서 파트리치아의 욕망은 정확히 무엇을 향하는지 알 수 없다. 처음엔 돈인가 싶었지만, 나중엔 권력 그 자체를 향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랑하는 사람과 만남에서 피어오른 욕망은 구찌 가문 전체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전까지 우아하고 여유롭게 새로운 사람을 맞이하던 구찌 가문이 얼마나 극적으로 순식간에 변하는지 섬세하게 그렸다. 그 과정들이 지나칠 정도로 자연스럽게 그려져, 나중엔 당연히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처럼 보일 정도다. 영화는 파트리치아가 일으킨 파장의 출발점과 퍼지며 변하는 색깔을 집요하게 담아낸다.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 스틸컷

인물들을 바라보는 시선과 거리감이 돋보이는 연출이 눈에 띈다. 예고편에서 암시하는 것처럼 구찌 가문의 일원이 되어 멋지고 위험한 삶을 대리 체험하는 소설보다, 어느 부부의 흥망성쇠를 어깨 너머로 엿보는 건조한 역사서에 가까운 영화다. 마우리치오와 파트리치아가 어떤 일을 겪고, 어떤 선택을 하던 영화는 아무 흔들림이 없다. 그저 묵묵히 그들 간에 일어난 일을 기록하고 다음 장면, 또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 어떤 일 때문에 인물들의 감정이 변했고, 어떤 감정으로 입장이 바뀌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어 불친절한 느낌도 든다.

‘하우스 오브 구찌’는 절대 일정한 선을 넘지 않고 인물들과 거리를 둔다. 이 같은 연출 방식은 마우리치오와 파트리치아 같은 인물들을 넘어 구찌 가문 전체를 조망하게 한다. 과거 패밀리 비즈니스로 운영하던 구찌 가문이 얼마나 외부의 욕망에 취약했는지, 한 명의 인간 내면에 심어진 욕망의 씨앗이 얼마나 큰 파국을 일으키는지, 옳은 선택이 없으면 더 나은 선택은 무엇인지 등을 고민하게 한다. 2001년 동명의 원작 소설을 접했을 때부터 영화화를 꿈꿨던 80대 리들리 스콧 감독은 후세 사람들에게 헛된 욕망을 경계하란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골든글로브 등 다수 영화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 후보로 선정된 배우 레이디 가가의 연기가 빛난다. 시간 변화에 따라 다채롭게 변하는 레이디 가가의 폭 넓은 연기에 영화의 정수가 담겼다. 전작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에 이어 리들리 스콧 감독과 다시 호흡을 맞춘 배우 아담 드라이버는 이번에도 특유의 존재감으로 시선을 뺏는다. 자레드 레토, 제레미 아이언스, 알 파치노 등 이미 할리우드에서 인정받은 배우들이 단단하게 이야기를 받친다.

12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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