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정부 출범 두 달여 만에 금융정책과 감독을 맡을 투톱 체제가 완성됐다. 금융위원장에는 30년 경력의 기획재정부 출신 정통 관료 이억원 전 1차관이, 금융감독원장에는 이 대통령의 사법연수원 동기인 이찬진 변호사가 지명됐다. 정책 경험과 조직 장악력을 겸비한 조합이라는 기대와 함께, 감독 전문성과 기관 간 호흡에 대한 우려가 동시에 제기된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은 금융위원장 후보로 이억원 전 기획재정부 1차관을 지명했다. 정통 경제 관료 출신인 이억원 후보자는 시장과 관가에서 ‘경제정책통’으로 꼽힌다. 1991년 행정고시 35회로 공직에 입문한 후 재정경제부(현 기재부)에서 경제정책국장, 경제구조개혁국장 등 핵심 보직을 역임했다. 금융 정책은 물론 경제 전반에 대한 식견이 풍부하고 합리적인 성품과 꼼꼼한 업무처리로 정부 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복현 전 금감원장의 후임으로는 이찬진 변호사가 지명됐다. 금융감독 분야 경력이 없어 후보군 하마평에 오르지 않았던 인사로, ‘깜짝 발탁’이라는 평가다. 이재명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18기 동기인 이찬진 금감원장은 대북 송금 의혹 사건,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등 각종 사법리스크 대응 과정에서 변호를 맡았다. 이재명 정부 출범 후에는 대통령 직속 국정기획위원회 사회1분과장을 지냈다.
금융권에서는 ‘정통 관료–정권 실세’ 조합에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이억원 후보자는 거시경제·재정 분야의 풍부한 경험이 풍부하다는 호평을 받지만, 이찬진 내정자는 시민단체·법조 경력이 두드러져 감독 전문성에 대한 회의론도 존재한다.
특히 이찬진 금감원장과 마찬가지로 법조인이자 ‘대통령 사단’이었던 이복현 전 원장 사례가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과감한 업무 스타일로 주목받았던 이복현 전 원장 재임 당시 감독 강도가 높아지면서 금융권의 불만이 고조되는 등 ‘역풍’이 적지 않았다. 여기에 공매도·상법 개정 등을 두고 금융위와 불협화음을 빚은 전례도 있어, 양 기관의 ‘원팀’ 협력이 관건이라는 게 금융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두 사람 모두 이 대통령의 신뢰를 받는 인사지만, 현안의 무게가 만만치 않은 만큼 정책 추진력과 협업 능력을 동시에 입증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 후보자 역시 이 같은 우려를 의식한 듯 이날 기자들과 만나 “금융위와 금감원은 금융시장, 금융산업 발전과 국정과제 수행에서 긴밀히 협조하고 원팀 정신으로 협업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며 “전날 금감원장과 통화해 이런 취지로 말씀드렸고 금감원장도 공감을 표했다”고 했다.
이찬진 금감원장도 자신이 이복현 전 원장과는 다른 스타일임을 분명히 했다. 이 원장은 이날 취임식 후 기자들을 만나 “살아오면서 독자적으로 결정한 적이 없고 서로 토론을 거쳐 합의가 되면 표현하는데 익숙했던 사람”이라며 “개인적인 의견을 지금 말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현안 산더미 속 출발…정책·감독·개편 과제
금융당국은 당분간 현 체제에서 정책 집행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이억원 후보자가 당면한 과제는 무겁다. 이재명 정부 초대 금융수장으로서 산적한 현안 해결과 중장기 정책 청사진 실행이라는 이중 과제를 안게 됐다. 당장 대통령 직속 국정기획위원회는 123개 국정과제를 담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안’을 발표하면서 금융 분야 주요 과제로 △생산적 금융(국민성장펀드 100조원 조성) △자본시장 혁신 △디지털자산 생태계 구축 △가계부채 관리 △포용금융 강화 △금융투자자·소비자 권익보호 강화 △생애주기별 금융 자산·소득 형성 등을 제시했다. 특히 연내 착수 예정인 장기연체채권 채무조정(배드뱅크)과 새출발기금 확대·추진은 이 후보자가 취임과 동시에 풀어야 할 현안이다. 부동산 PF 부실과 석유화학 업종 구조조정 등도 시급한 과제다.
이찬진 금감원장은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단속, 금융소비자 보호 등에서 리더십이 시험대에 오른다. 불공정거래 근절과 상법 개정의 시장 안착을 뒷받침해 ‘코스피 5000 시대’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또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시장 관리 기조에 맞춰 은행권 가계대출을 밀착 관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은행 횡령·불법대출 등 금융사고에도 강력한 제재가 예고된다. 최고경영자(CEO) 등 금융사 지배구조 개편 가능성도 열려 있다. 홍콩 ELS와 사모펀드 사태가 있었던 만큼, 편면적 구속력을 도입해 소비자 권익 강화책도 낼 것으로 관측된다. ‘실세 금감원장’의 등판에 금융권도 긴장하는 분위기다.
이번 인선은 금융위 해체론까지 나왔던 조직개편 국면에서 이뤄져 주목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이번에 금융위 수장을 세우면서 향후 감독체계 개편 방향에도 변화가 생길지 관심이 쏠린다. 다만 불확실성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국정위는 전날 대국민 보고대회에서 정부 조직개편을 따로 발표하지 않았다. 금융감독체계를 포함한 조직 개편 논의는 내년도 예산안 편성 등 현안이 마무리된 이후인 연말쯤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은 이날 금융위를 기존 체제로 유지하느냐는 질문에 “가능성은 모두 다 열려 있다”면서 “정부 조직 개편안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고 현재 금융위가 활동하고 있으므로 금융위원장 지명은 당연한 수순이라 생각해달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