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에 남은 4600개 ‘분홍 맨홀’…장마철 안전 괜찮나

서울 도심에 남은 4600개 ‘분홍 맨홀’…장마철 안전 괜찮나

파손된 콘크리트 맨홀 뚜껑. 수원시 제공

“겉은 멀쩡해 보여도 안은 어떨지 모르잖아요. 지나가다 꺼질까 봐 일부러 피해 다녀요”


서울 마포구에 거주하는 김모(33)씨는 요즘 보행로에 박힌 분홍색 맨홀 뚜껑을 밟지 않는다. 보도블록과 어우러지는 색감에 한때 ‘도심 미관’의 일부로 여겨졌지만, 최근엔 불안 요소로 인식이 바뀌었다. 전국 곳곳에서 맨홀이 붕괴하며 시민이 다치는 사고가 잇따랐기 때문이다.

지난 2022년 경기 연천에서는 해당 맨홀을 밟은 행인이 다치는 사고가 있었고, 2023년 부산에서는 맨홀이 무너져 내리며 시민의 다리가 빠지는 일도 있었다. 겉보기에 별다른 이상이 없었지만, 내부 부식으로 구조가 약해져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문제의 맨홀은 일명 ‘조화 맨홀’로 불리는 콘크리트 재질 뚜껑이다. 철제 주물 방식이 아닌 인조석 혼합 콘크리트로 제작돼 가격은 저렴했지만, 내구성이 떨어지고 습기·가스에 약하다는 구조적 취약점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서울을 포함한 전국 도시 보도 위에는 2000년대 초중반 이래 이 맨홀이 대거 설치돼 있다.

서울시는 해당 맨홀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지난해 1월부터 전수조사 및 전면 교체에 착수했다. 당시 파악된 조화 맨홀은 총 1만5000개다. 이 중 지난해 8000개를 철제 뚜껑으로 바꿨고, 올해 나머지 7000개를 교체할 계획이다.

하지만 6월 말 장마가 시작된 지금, 실제 현장 상황을 감안하면 장마철 전까지 전량 교체가 마무리되긴 어려워 보인다. 서울시 관계자는 “2020년 설치 지침을 개정해 맨홀 뚜껑은 주철로만 설치하도록 했고, 이에 따라 지난해 8000개를 교체했다”며 “올해는 남은 7000개에 대한 예산을 모두 배정했고, 하반기까지 전량 교체를 완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시에 따르면 올해 교체 대상 7000개 중 지난달 말 기준 약 2400개는 이미 교체를 마쳤다. 즉, 현재까지 총 1만400개(지난해 8000개 + 올해 2400개)가 철제 맨홀로 교체된 상태다. 아직 교체되지 않은 미교체 맨홀은 4600개로, 하반기 중 순차적으로 교체가 진행될 예정이다.

현재도 시내 곳곳에는 여전히 수백 개의 콘크리트 맨홀이 남아 있는 상황이다. 장마철이 본격화된 지금 시점에서, 아직 교체되지 않은 뚜껑들이 집중호우와 높은 습도 등에 노출돼 부식 속도가 가속화될 가능성도 있다. 서울이 교체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지만, ‘미교체 맨홀 4600개가 장마철을 맞이한 채 방치된 상태’라는 우려는 피하기 어렵다.

서울시는 미교체 맨홀 주변에 경고 표지판을 설치하고, 일부 위험 구간에는 임시 추락방지장치를 설치하는 등 선제적 안전 조치도 병행하고 있다. 시민들에게는 분홍 콘크리트 맨홀 위험성을 알리고, 우회할 수 있도록 안내 표지와 홍보물을 배포하는 등 안전 인식 제고에도 힘쓰고 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비가 많이 오면 콘크리트의 강도와 결집력이 떨어지면서 시멘트 입자가 쉽게 떨어져 나가고, 햇빛을 오래 받을 경우 자외선에 의해 접착력이 약해져 구조물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량 교체까지 시간이 걸리는 만큼, 위험성이 높은 구간엔 추락방지장치 설치, 경고 표지판 등 선제 조치가 필요하다”며 “특히 시민들이 분홍 콘크리트 맨홀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가급적 밟지 않고 우회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표시나 안내도 병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예솔 기자
ysolzz6@kukinews.com
이예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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