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국 후손 130명, 광화문에서 과거와 마주하다 [르포]

참전국 후손 130명, 광화문에서 과거와 마주하다 [르포]

오세훈 서울시장이 광화문광장을 방문한 유엔참전국 후손들과 함께 분수 사이를 걸으며 환담하고 있다. 이날 행사는 6·25전쟁 75주년을 맞아 참전국 후손들과 감사의 의미를 나누는 취지로 진행됐다. 서울시 제공  

6월8일 오전, 서울시는 국가보훈부와 함께 ‘유엔참전국 후손 교류캠프’ 참가자들을 ‘감사의 정원’ 조성 예정지에 초대했다. 미국, 필리핀, 에티오피아, 네덜란드 등 유엔참전국 22개국 후손 130여 명이 행사에 참여했다. 광화문 인근 포시즌스호텔에서 도보로 이동한 이들은 아침 8시40분쯤 삼삼오오 광장에 도착했다. 세계 각국 청년들이 한데 모이자 광장은 활기와 웃음으로 가득 찼다.

“서울은 여러분 조상의 헌신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광화문은 그 기억을 담는 공간이 될 것입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오전 9시 정각 행사장에 도착해 참가자들에게 환영 인사를 건넸다. 이어 “내년 이맘때 완공될 ‘감사의 정원’은 22개국을 상징하는 석조 기둥과 빛기둥, 지하 교류공간으로 조성된다”며 “이곳을 통해 자유와 평화를 위한 헌신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 시장이 “내년 이맘때쯤 오시면 완공된 정원을 보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자, 참가자들 사이에서 박수가 터졌다.

현장에서는 즉석 문답도 이어졌다. 예비 초등교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대학생 참가자는 “‘감사의 정원’이 교육 공간으로도 활용될 수 있느냐”고 질문했고, 오 시장은 “바로 그것이 조성 취지”라며 “교과서가 전하지 못하는 감동을 이곳에서 실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8일 광화문광장에서 ‘감사의 정원’ 모형을 설명하며 유엔참전국 후손들과 조성 취지 및 공간 계획을 공유하고 있다. 서울시 제공  

“광화문, 위인의 광장에서 기억의 광장으로”

이날 캠프에 참여한 문인희씨(한국인 대학생)는 “광화문은 서울 시민인 저에게도 익숙한 공간”이라며 “그동안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 등 위인 중심의 공간으로 여겼는데, 현대사까지 담겠다는 계획을 들으니 또 다른 의미가 생겼다”고 말했다.

그의 가족 역시 6·25전쟁에 참전했다. “작은 외할아버지가 참전용사였지만 자손 없이 돌아가셨고, 외할아버지와 큰할아버지도 참전해 생환하셨습니다. 하지만 거의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어요” 문 씨는 가족들이 말하지 않은 기억을 대신해 오늘의 행사를 마주하고 있었다.

한국인 대학생 문인희씨가 ‘유엔참전국 후손 교류캠프’ 행사에 참가해 광화문광장에서 기념 촬영하고 있다. 그는 참전용사였던 작은 외할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캠프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서울시 제공  

“증조할아버지는 마을 애국단장이었어요”…미국인 3세대의 자부심

미국 메사추세츠주에서 온 엘리자베스 엄(Elizabeth Ju-Eh Um)씨는 한국계 미국인 3세대다. 그녀는 의미 있는 행사에 참여해 뿌듯함을 표정에 담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제 증조할아버지는 마을 애국단장이자 시민경찰의 리더였고, 전쟁 중 전사하셨어요. 이후 증조할머니와 외할아버지 형제들은 난민으로 부산에 정착했고, 외할아버지는 연세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하신 뒤 국회의사당 건립에 일조하셨어요”

그녀의 가족은 이후 미국으로 이주해 로스앤젤레스 코리아타운의 정착사에도 기여했다. “나는 누구이며, 어디서 왔는지를 어릴 때부터 가족을 통해 배웠습니다”

엘리자베스씨는 ‘감사의 정원’에 대해 “자유와 민주주의는 공짜로 주어지는 게 아니에요. 이 공간이 후손들에게 그 가치를 기억하게 해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자랑스럽습니다”라고 강조했다.

미국 메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온 한인 3세 엘리자베스 엄(Elizabeth Ju-Eh Um) 씨가 ‘유엔참전국 후손 교류캠프’ 행사에 참가해 광화문광장에서 기념 촬영하고 있다. 그는 참전 중 희생된 증조부의 이야기를 전하며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서울시 제공  

기억을 품은 공간, 세계를 잇는 플랫폼으로

서울시는 현재 서울의 심장부이자 연간 2500만 명이 찾는 광화문광장에 6·25전쟁 22개 참전국에 대한 감사와 존경을 담은 상징 공간 ‘감사의 정원’을 조성 중이다. 완공 목표는 2027년 봄이다.

지상에는 22개국을 상징하는 석조 기둥 ‘감사의 빛 22’가 배치된다. 높이 7미터의 짙은 회색 단일 석종 돌보 기둥 내부에 조명이 설치돼, 밤에는 기둥 내부 조명이 하늘을 향해 뻗어 올라가는 연출이 이뤄진다. 각 기둥에는 참전국이 기증한 석재가 최대 4개의 모듈 형태로 탑재되며, 향후에도 교체가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당초 22개국에 더해 대한민국까지 포함해 총 23개의 기둥이 세워질 예정이다.

현재 그리스(드라마 지역 볼라카스 대리석), 인도(라자스탄 붉은 사암), 스웨덴(로슬라겐 조경석) 등 8개국이 석재 기증을 추진 중이며, 나머지 국가와도 협의가 진행 중이다.

지하에는 ‘감사의 공간’이 들어선다. 이곳은 참전용사의 헌신을 기리는 역사 체험 공간이자, 국제 교류를 위한 다국어 미디어월, 실시간 소통 시스템 등으로 구성된다. 광화문역, KT빌딩, 세종문화회관 등과도 연결돼 시민 누구나 접근할 수 있도록 설계된다.

서울 광화문광장에 조성 중인 ‘감사의 정원’ 조감도. 서울시 제공  
황인성 기자
his1104@kukinews.com
황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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