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우원식 국회의장의 대선과 개헌 동시투표 제안에 대해 ‘역제안’ 형식으로 응답하며 구체적인 개헌 로드맵을 제시했다. 우 의장이 제안한 ‘대선과 개헌 동시투표’에는 원칙적으로 동의하면서도, 권력구조 개편 등 쟁점이 큰 사안은 대선 이후로 미루고,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과 계엄 요건 강화 등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사안부터 우선 추진하자는 입장을 밝혔다. 또 다른 야권 대선주자인 김경수 전 경남지사도 이 대표의 구상에 힘을 실었다.
이 대표는 7일 곧바로 최고위원회의에서 “개헌은 필요하다”고 응답했지만, 우 의장의 제안을 그대로 수용하기보다는 자신이 구상한 단계적 접근 방식을 내놨다. 그는 먼저 5·18 광주민주화운동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과 계엄 요건 강화를 개헌 논의의 선도 과제로 제시하며 “국민적 합의가 형성된 만큼 대선과 동시에 우선 추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광주정신은 친위 쿠데타에 맞서 국민이 민주주의를 지켜낸 상징적 사건”이라며 “국민의힘도 반대할 명분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대통령 4년 중임제나 국무총리 추천제 등 권력구조 개편 문제는 대선 이후 각 정당 대선 후보의 공약으로 제시하고, 국민 선택을 거친 뒤 2단계 개헌으로 처리하자는 입장을 밝혔다. 이 대표는 “이들 사안은 논쟁의 여지가 크고 자칫 국론 분열로 이어질 수 있다”며 “대선 이후 신속히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권력구조 개편을 핵심으로 하는 우 의장의 1단계 개헌안을 2단계로 유예하고, ‘내란 방지형’ 개헌을 우선적으로 추진하자는 구상이다. 이 대표는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당장은 민주주의의 파괴를 막는 것이 훨씬 더 시급하고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대표가 권력구조 개편을 즉각 수용하지 않은 배경에는 ‘정략적 프레임’에 대한 우려가 깔려 있다. 국민의힘이 권력분산형 개헌을 여권 위기의 출구전략으로 활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수용할 경우 ‘이 대표가 집권 연장을 위해 개헌을 추진한다’는 공격 프레임이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대표가 “개헌으로 적당히 넘어갈 생각은 국민의힘이 하지 말기를 바란다”고 반복해서 강조한 것도 이 같은 정무적 판단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은 이날 대선일에 맞춰 개헌 국민투표를 실시하자는 방침을 공식화했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탄핵 사태를 겪으며 정치 개혁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높아지고 있다”며 “대선일에 맞춘 국민투표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당내 헌법개정특위에서 대통령 4년 중임제와 함께 입법부 견제를 위한 의회해산권 도입 등 권력구조 개편안을 준비해 왔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이재명 대표가 권력구조 개편에 선을 그은 데 대해 “의회독재에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까지 다 휘둘러보려는 속셈”이라며 “‘개헌보다 내란종식이 우선’이라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지 말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유력 대권주자가 직접 권력분산 개헌을 언급하면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이날 쿠키뉴스와 통화에서 “이 대표가 중임제·연임제를 꺼내면 국민의힘은 ‘권력 연장을 위한 개헌’이라고 공격할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권력구조 개편은 차기 주자가 언급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김경수 전 경남지사는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표의 제안에 대해 “개헌 추진 가능성을 열어둔 의미 있는 발언”이라며 “권력구조 개편 등은 정권교체 이후 논의해 내년 지방선거에서 2단계 개헌으로 추진하자”고 밝혔다. 사실상 이 대표의 입장에 힘을 실은 것이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이 대표의 개헌 구상이 공개된 직후, 개헌 논의를 본격화하자는 메시지를 재차 강조하며 힘을 실었다. 그는 “양 교섭단체 지도부가 대선 동시 개헌에 원칙적으로 동의한 만큼, 정당 간 합의로 충분히 추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한 내 논의할 수 있는 부분부터 먼저 진행하고, 가장 어렵고 핵심적인 권력구조 개편은 이번 기회에 반드시 추진해야 한다”며 개헌을 밀어붙이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