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에 1109억 증발…세운상가 상인들 ‘부글부글’

3년 만에 1109억 증발…세운상가 상인들 ‘부글부글’

한 시민이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 공중 보행로를 이용하고 있다. 이예솔 기자

“서울시에서 공청회를 했다는데, 나는 몰랐어요. 제 주변 상인들도 모릅니다. 만든 놈이나, 없애는 놈이나 세금으로 헛짓거리하는 거지. 1000억을 넘게 투자해서 만들었으면서, 그걸 또 3년 만에 없애려고 하나…”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재임 시절 1109억원을 들여 만든 세운상가 공중보행로가 철거 확정된 가운데, 세운상가 인근에선 한숨 소리가 터져나왔다. 번복되는 공사 시기와 소음 문제, 영업 부진 등의 불편은 고스란히 상인들의 몫이었다.

앞서 시는 지난해 12월26일 제6차 도시재생위원회에서 이같은 내용을 담은 세운상가 일대 도시재생활성화계획 변경(안)을 원안가결했다. 슬럼화한 세운상가 일대를 다시 살리기 위해 세워진 보행로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게 시의 판단이다.

세운상가 일대 공중보행로는 세운상가에서 청계‧대림상가, 삼풍상가‧PJ호텔, 인현‧진양상가까지 약 1km 구간에 걸쳐 설치돼 있다. 변경안에는 삼풍상가와 PJ호텔 양쪽 250m의 철골 보행로 철거안이 담겼다. 시는 남은 750m도 단계적으로 철거한다는 계획이다.

서울시는 지난 16일 설명자료를 통해 “공중보행로 철거와 관련해 그간 제기된 시민, 주민, 의회, 전문가 등 의견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 시민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철거 시기를 조정한다”며 “삼풍상가 공원화 사업 시기와 연계해 (공중보행로를) 철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중보행로 철거 확정 소식에…상인 의견 ‘분분’

그러나 개통 3년 만의 철거 결정에 ‘예산 낭비’라는 지적과 ‘의견 수렴이 부족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취재 결과, 세운상가 인근 상인들은 “몰랐다” “철거해야 한다” “활성화해야 한다” 등 각기 의견이 갈렸다. 1000억이 넘는 돈을 투자해 만든 길이 개통 3년도 안 된 시점에서 철거 확정되고, 공사 시기가 번복되면서 상가 내부 상인들조차 혼란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세운상가 일대에서 45년 간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는 라모(71·남)씨는 “(공중보행로) 생기고 나서 화장실 생기고, 서울시가 관리해서 일대가 깔끔해졌다”면서도 “좋은 건 그거 하나뿐이다. 생기고서 장사가 더 잘 되긴 커녕, 그대로였다”고 말했다.

라씨는 “어차피 공중보행로는 ‘사라질 운명’이다. 오 시장은 공중보행로가 생기기 이전부터 세운상가를 없애려고 했다. 정권이 바뀌니 본인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는 것”이라며 “만약 다음 정권에서 지금과 반대되는 성향의 시장이 오게 된다면, 공중보행로 해체는 무산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철거 둘러싸고 “공청회 열었다” “처음 듣는다” 갑론을박

철거에 찬성하는 상인들도 공사 과정에서 손해를 걱정했다. 라씨는 “설치 공사 당시에도 상가 안에 물이 다 새고 난리통이었다”고 회상했다. 상인 A씨는 “가뜩이나 경기가 안 좋아서, 다들 늦게 출근하고 일찍 퇴근한다. 안 그래도 상가가 조용한데, 공사까지 진행되면 방문객이 더 없을 것 아니냐”며 “철거 비용으로 활성화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울분을 터트렸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실이 서울시에서 받은 ‘세운상가 철거 관련 세부계획서’를 보면, 철거 관련 예산은 모두 23억원이다. 공사비 20억원, 설계비 1억8000만원, 감리비 1억2000만원 등이다. 

지난해 11월부터 세운상가 인근에서 장사를 시작한 리동(29·남)씨는 “이제 막 장사를 시작했는데 철거 공사가 시작되면 소음 때문에 장사가 더 안 될 것 같다”고 우려했다. 세운상가 인근에서 근무하는 B씨도 “2년밖에 안 됐는데 헌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된다”며 “공사 소음과 물난리가 걱정된다”고 말했다.

일부 상인은 철거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홍모(60대·남)씨는 “몇몇에만 (철거 여부)를 알린 것 아니냐”며 “같은 층 상인들도 잘 모르는 눈치”라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난해 9월 공청회를 진행했다”며 “시민, 전문가, 인근 상인 등 60여명이 참여했다”고 말했다. 다만 시 관계자는 전문가와 시 관계자를 제외한 시민, 상인이 몇 명이었냐는 물음에 “파악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예솔 기자
ysolzz6@kukinews.com
이예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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