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과 지미는 짝꿍…‘전교생 1명’ 졸업 앞둔 섬 학교

선생님과 지미는 짝꿍…‘전교생 1명’ 졸업 앞둔 섬 학교

-경남 통영시 산양초 곤리분교장, 이지미 학생 졸업과 함께 폐교 예정
-담임선생님 포함 여섯 명의 선생님들과 함께 쌓은 추억

곤리도의 마지막 남은 초등학생 이지미(13) 양이 지난 1일 경남 통영시 산양초등학교 곤리분교장 교실에서 방과 후 수업으로 우쿨렐레 연주를 배우고 있다.

비 내리는 섬마을은 고요하다. 이런 날은 구태여 섬을 찾는 뭍사람도, 나가려는 섬사람도 없다.

지난 1일 아침 경남 통영시 산양읍에 딸린 작은 섬 곤리도에도 비가 내렸다. 산양초등학교 곤리분교장 허태욱(37) 선생님은 비가 내려도 섬에 드는 특별한 뭍사람이다. 곤리도의 유일한 초등학생 이지미(13) 양도 그런 선생님을 빠짐없이 마중한다. 이날은 채비가 늦었는지 자전거를 타고 내리막을 질주했다. 둘의 동행은 배가 1시간 30분 간격으로 총 6차례 오가는 동안 이어진다.

경남 통영시 곤리도에서 허태욱(37) 선생님과 이지미 학생이 등교하고 있다.
경남 통영시 산양초등학교 곤리분교장 교정으로 허태욱 선생님과 이지미 학생이 나란히 등교하고 있다.
경남 통영시 곤리산에서 허태욱 선생님과 이지미 학생이 점심을 먹고 졸음을 떨치기 위해 산책하고 있다.
경남 통영시 산양초등학교 곤리분교장 교실에서 이지미 학생이 수학 문제를 풀고 있다. 허 선생님은 지미가 직접 과정을 적어 가며 문제를 푸는 방식으로 수학을 가르친다.
등굣길은 꽤 가파르다. 허 선생님은 속도보단 과정을 중시한다. 지미가 뒤처지면 시간이 걸려도 기다리는 편이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올라온 길을 돌아보면 추억은 선명해지고 내일은 환해진다. 다시 소소한 일상을 나눌 만큼, 숨이 차지 않는 보폭으로 진득이 걷는다. 둘의 시간은 어긋날 걱정 없이 오롯이 연결돼 있기에 다음을 기약하기보단 지금을 묻고, 보폭 대신 방향을 설정하며 나란히 흘러간다.
경남 통영시 산양초등학교 곤리분교장 교정에서 이지미 학생이 등교하고 있다.
경남 통영시 산양초등학교 곤리분교장 교육상담실에서 이지미 학생이 차담회 때 마실 보이차를 준비하고 있다.
경남 통영시 산양초등학교 곤리분교장 교육상담실에서 안태식(68) 주무관과 이지미 학생, 허태욱 선생님이 차를 마시며 이야기하고 있다.

매일 아침 등교하자마자 갖는 차담회는 전초전이다. 각자 마실 차와 음료를 준비하고 하루를 생각한다. 따뜻한 차 한 잔은 깊은 속내를 끌어내는 보조제다. 그렇게 둘은 한없이 내밀한 일상을 나눈다. 허 선생님은 “지미 아버님이 무늬오징어를 많이 낚았다는 소식을 듣고 그날 저녁에 따라서 잡은 기억이 난다”며 한 일화를 떠올렸다. 일상을 나누고 나면 하루 계획을 얼추 세운다. 이날은 콜라를 활용한 평판화 그리기 수업을 하기로 했다. 지미가 키우는 청계(청란을 낳는 닭)인 ‘초코’와 ‘바닐라’ 이야기를 하다가 즉흥으로 나온 계획이었다.

경남 통영시 산양초등학교 곤리분교장에서 허태욱 선생님과 이지미 학생이 평판화 그리기 수업을 하고 있다.
경남 통영시 산양초등학교 곤리분교장에서 이지미 학생이 이날 그린 평판화를 펼쳐두고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경남 통영시 산양읍 곤리도에서 안태식 주무관이 이지미 학생에게 들꽃을 따서 선물하고 있다.
경남 통영시 산양초등학교 곤리분교장 복도 창가에 안태식 주무관이 화분을 전시해 화사한 분위기를 내고 있다.

학생이 한 명이라고 선생님도 한 명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학교에는 필요한 최소한의 인력이 있다. 허 선생님은 “분교라도 돌아가는 방식은 일반 학교와 다르지 않다”며 “사소한 설문조사부터 행정업무 등 처리할 것들이 있다”고 말했다.

2017년 부임한 안태식(68) 주무관은 노후한 학교 시설을 관리한다. 평소 좋아하던 조경 실력을 뽐내며 교정을 아름답게 꾸미고 있다. 3년 전 부임한 김정숙(52) 조리사는 지미의 취향을 파악하고 본교 영양사에게 특식으로 제안할 만큼 열성을 기울인다. 이날 점심에는 마라탕 이야기가 나왔다. 지미가 “친구들과 마라탕도 먹고 싶고 인생네컷(무인 즉석사진관)도 찍고 싶다”고 말하자, 김 조리사는 다음 달 본교에 특식으로 마라탕을 제안하겠다고 답했다.

경남 통영시 산양초등학교 곤리분교장에서 이지미 학생이 우쿨렐레를 연주하고 있다.
경남 통영시 산양초등학교 곤리분교장에서 이지미 학생이 방과 후 수업으로 우쿨렐레 연주를 배우고 있다.
경남 통영시 산양읍 곤리도에서 이지미 학생이 방과 후 수업을 마치고 우쿨렐레 선생님과 함께 하교하고 있다.

곤리도에서 삼덕항은 배로 6분이면 닿는다. 지미는 내년 초 산양중학교에 진학할 예정이다. 허 선생님이 그랬던 것처럼 매일 아침 곤리항에서 배를 타고 삼덕항으로 가 1.2㎞ 떨어진 산양중학교로 등교한다. 곤리도와 삼덕항 사이에서 여객선을 운항하는 박창현(60) 선장은 "배가 뜨지 못할 만큼 풍랑이 심한 날은 거의 없다"며 지미의 등하굣길이 걱정할 만큼 위험하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어른들은 물리적 거리보다 정서적 거리가 걱정이다. 지미의 방과 후 수업 우쿨렐레 선생님은 향후 지미가 중학교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어 한다. 그가 “사량중학교에 다니는 2학년 학생을 소개해 줄까”라고 묻자, 지미의 눈이 반짝였다. 쾌활한 성격 뒤에도 새로운 곳에 대한 두려움은 있기 마련이었다.
경남 통영시 산양초등학교 곤리분교장 교실 뒤에 설치된 게시판에서 이지미 학생이 그동안 촬영한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아직 계절이 오지 않은 겨울 칸은 새로운 사진을 기다리고 있다.
경남 통영시 산양초등학교 곤리분교장 교실 뒤에 설치된 게시판에 이지미 학생의 추억을 담은 사진들이 붙어 있다.
경남 통영시 산양초등학교 곤리분교장 교실 뒤에 설치된 게시판에 이지미 학생의 가을을 담은 사진들이 붙어 있다.

지미가 교실 뒤에 있는 게시판 앞에 섰다. 지미의 사진들이 계절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었다. 봄에는 학교를 지키는 진돗개 꼬물이와 산책하고, 평소 좋아하던 케이크를 직접 만들었다. 여름에는 사량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 병아리 두 마리를 선물해 ‘초코’와 ‘바닐라’라는 이름을 붙였다. 가을에는 사진작가 선생님과 암실에서 필름을 인화하는 특별한 경험도 했다. 추억은 차곡차곡 쌓였고, 이제 채워가야 할 겨울, 마지막 한 페이지만을 남겨두고 있다.

내일을 기다리는 것은 설레는 일이다. 미국의 여류 사진가 이모젠 커닝햄(1883~1976)은 ‘내일 찍을 사진’을 최고의 사진으로 꼽았다. 지미도 내일 찍을 사진을 기대하며 오늘을 보낸다. 통영 산양읍에 딸린 작은 섬, 곤리도의 하나 남은 초등학교는 지미의 졸업과 함께 폐교된다. 설렘과 아쉬움이 공존할 지미의 겨울은 어떤 색으로 채워질까.

유희태 기자
joyking@kukinews.com
유희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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