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말 뒤집고 꼬리 자르기까지...디딤돌로 체면구긴 국토부

장관말 뒤집고 꼬리 자르기까지...디딤돌로 체면구긴 국토부

“정책대출 대상 안 줄여” 국토부 장관 과거 발언
사전예고도 없이 최대 1억원 한도↓…“집값은 안 잡고 왜 서민을”
공문도 없이 구두로 은행권 압박
국토부, 24일 종합감사때 보고하기로

서울의 한 은행 앞에 내걸린 디딤돌 대출 광고. 연합뉴스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정책대출 행보에 소비자 혼란이 크다. 정부는 최근 대표적인 서민 대출 상품인 ‘디딤돌 대출’을 제한하려다 역풍을 맞고, 적용을 잠정 연기했다. 하지만 오는 24일 종합감사에서 입장을 밝히기로 해 규제 적용 가능성은 아직 남아있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당초 21일부터 시행하려 했던 디딤돌 대출 규제 적용을 연기했다. 디딤돌 대출은 부부 합산 연소득 6000만원 이하인 무주택 서민에게 최대 5억원 이하의 주택을 대상으로 2억5000만원, 신혼부부나 2자녀 이상 가구는 4억원까지 2~3%대 저금리로 빌려주는 서민용 정책 대출 상품이다. ‘주거 사다리’로도 불린다.

“1억원 어디서 구하나” 반발 여론에 사흘 전 시행 연기

국토부가 당초 시행하려던 디딤돌대출 규제안에는 디딤돌 대출 한도를 계산할 때 이른바 ‘방 공제’로 불리는 소액 임차인 대상 최우선변제금(서울 5500만원)을 대출금에서 제외시키는 내용이 담겼다. 대출 규모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또한 생애 첫 주택 구입자가 디딤돌 대출을 받을 경우 기존 80%인 담보인정비율(LTV)을 70%로 축소하고, 아직 등기가 되지 않은 신축 아파트를 담보로 하는 ‘후취 담보 대출’을 사실상 중단하도록 했다. 서울 5억원짜리 집을 구입할 때 생애최초자의 경우 기존에는 4억원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었으나, LTV 70% 적용에 방공제(5500만원)를 제외하면 2억9500만원까지만 대출이 가능해진다. 규제로 대출 한도가 무려 1억원 이상 깎이는 셈이다.

수요자 사이에서는 불만이 폭발했다. 어떻게 사전 안내도 없이 기금대출을 하루아침에 대폭 줄일 수 있냐는 것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자금 마련을 걱정하는 우려가 잇따르고 있다. 예비 입주자 사이에서는 “5억 이하 1주택 겨우 마련해 보려고 몇 개월 전부터 계획 세우고 이제 잔금 치루기 한 달 전이다. 당장 한도가 이렇게 1억원 가까이 줄면 그 돈은 어디서 구하나”, “대책도 없이 규제만 하면 어떻게 할거냐”, “무주택자가 겨우 한채 마련해 보겠다는데 희망을 꺾지 말아달라. 서민 정책 대출은 건드리지 마라”는 원성이 잇따랐다. 예상보다 역풍이 거세자 국토부는 말을 바꿨다. KB국민은행을 제외한 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은 이달 21일부터 이같은 조치를 시행하기로 했다. 국민은행은 14일부터 이미 시행에 들어갔다. 하지만 국토부는 18일 디딤돌 대출 규제 시행을 유예하기로 했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달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주택시장 동향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은행탓 하려다 딱 걸린 국토부

디딤돌 대출 한도 축소 과정에서 국토부의 무책임한 태도도 드러났다. 은행권에 ‘꼬리 자르기'를 시도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국토부는 금융권에 공문이 아닌 구두로 대출 규제를 지시했고, 문제가 불거지자 지시한 적 없다고 부인하다 뒤늦게 인정했다. 국토부는 지난 7월부터 금융권에 가계대출을 관리하라고 요구해왔고, 금융권은 다른 대출은 제한했지만 정책대출은 따로 규제하지 않았다. 박상우 국토부 장관이 지난달 초 “정책대출 대상을 줄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토부는 지난 11일 은행권과 만난 금융상황 점검회의에서 ‘왜 말을 안 듣나’라며 정책대출을 줄이라고 구두로 압박했다. 이후 같은주 주말,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재차 은행권에 전화해 디딤돌 대출 취급을 제한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파악됐다. 

은행권에서는 불만이 쌓인 모양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국토부도 어느정도 반발은 예상했을 거다. 하지만 국회의원까지 나서는 등 이정도로 반발이 클 거라고는 생각 못한것 같다”며 “공문도 안 내고 구두로 지시한 것은 은행이 자발적으로 하는 대출규제인 것처럼 보이려 한 의도가 짙다. 정책 혼선으로 은행만 욕받이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자금조달 계획이 틀어진 실수요자 입장에서는 굉장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며 “DSR 시행 처럼 몇달 유예기간이라도 있었다면 차주들이 대책을 세웠을 텐데, 일 단위로 급박하게 바뀌다보니 반발이 더 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토부 결정은…24일 결론날 듯

정부의 갈지자 대출 행보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6월 금융당국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스트레스(가산) 금리 2단계 도입을 7월에서 9월로 두 달을 미뤘다. 시행 일주일 전 돌연 연기 결정을 했는데, 시중은행과 사전 논의는 없었다. 또 금융감독원이 가계부채 관리 주문에 나서자 7월 초 은행권이 대출 금리를 일제히 올리는 등 금융당국의 돌발 메시지도 시장의 혼선을 키웠다.

국회도 비판에 가세하며 국토부는 더 난감한 처지다. 더불어민주당 정무위원회와 국토교통위원회 의원들은 21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디딤돌 대출 규제 철회를 강력히 요구했다. 문진석 민주당 의원은 “윤석열 정부는 집값 잡으라고 했더니 서민을 잡고 있다”며 “모두가 가계부채를 걱정할 때 부도산 부양책을 펴고 빚내서 집을 사라고 부추기더니, 손바닥 뒤집듯 금리를 인상하고 나몰라라 한다. 국토부는 정책 대출을 줄이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요구했다. 

국토부는 “한정된 기금 재원을 가능한 많은 실수요자에게 지원하고 가계부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대출 제도를 운영 중”이라며 “디딤돌대출 축소조치 중단, 전면유예 및 철회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지난 18일 밝혔다. 조속한 시일 내 보완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이다. 국회 국토위 관계자는 “국토부가 오는 24일 국회 국토위 종합감사에서 디딤돌대출 규제에 대한 입장과 보완책을 보고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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