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재정 2028년 소진…의료공백 장기화에 ‘고갈 시계’ 빨라지나

건보재정 2028년 소진…의료공백 장기화에 ‘고갈 시계’ 빨라지나

16일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정기석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이 흔들리고 있다.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노인 증가와 인구 감소, 경제성장률 저하 등으로 인해 건보 재정 규모의 축소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의료공백 사태 속에서 필수의료 유지에 재정 지출도 계속되고 있다. 지속가능한 건보 재정 유지를 위해 중·장기 재정 확보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기석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1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전공의·의대생 이탈에 따른 의료공백 사태와 관련해 “끝이 보이지 않는다”며 “일정 기간 안에 건강보험 재정수지가 적자로 돌아갈 것으로 예측돼 유념해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지난 8월30일 향후 5년 동안 국가 재정 10조원과 건보 재정 10조원을 합해 총 20조원 이상을 의료개혁에 투입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의료개혁 1차 실행 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시범사업에도 오는 2027년까지 건보 재정 10조원을 투입한다. 의료공백 대처를 위해 건보 재정 2조원을 사용하겠단 계획도 밝혔다. 현재 정부는 비상진료체계 유지를 위해 매달 약 1890억원의 건보 재정을 투입하고 있다. 복지부에 따르면 그동안 비상진료체계 유지에 실제로 투입된 건보 재정은 6237억원이다.

의료대란을 막기 위해 이미 많은 건보 재정이 들어갔지만 재정당국은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정 이사장은 건강보험 보장성과 건전성이 악화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취약층 보호와 보장성 강화는 쉼 없이 가고 있다”며 “아직까지 공단이 예측했던 금년도 급여 지출 총액보다는 적게 나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현 상황에서 가입자인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지출”이라며 “지금 한 달에 1890억원씩 지출되는 부분은 응급실, 중환자, 입원환자, 야간관리료 등에 쓰이고 있어 공단이 지출해야 할 부분에 지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야당 의원들은 “책임의식을 가져라”, “건보 재정을 곶감 빼먹듯 계속 빼먹으면 어떡하나”라며 질타를 쏟아냈다. 내년부터 건보 재정수지가 적자로 돌아서고, 오는 2028년에 적립금이 소진되는 등 재정 건전성에 ‘빨간불’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최근 국회예산정책처가 발간한 ‘2023~2032년 건강보험 재정 전망’에 따르면, 올해부터 건보 재정 당기수지 적자가 예상돼 2028년에는 적자액 누적에 따른 적립금 소진이 전망된다. 건보공단은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라 건보와 장기요양보험의 재정 안정성을 위해 적립금을 관리하고 있다. 건보공단에 따르면 지난 2023년 기준 적립금 누적액은 건보가 27조 9977억원, 장기요양보험은 4조1699억원이다.

법에 따라 국가는 일반회계와 건강증진기금으로 매년 건강보험료 예상 수입의 20%, 장기요양보험료 예상 수입의 20%에 해당하는 금액을 건보공단에 지원하도록 하고 있지만, 매년 국고지원은 부족한 상황이다. 김남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건보 일반회계에서 2022년 2조332억원, 2023년 2조2631억원이 부족하다. 건강증진기금에선 2022년 214억원, 2023년 1121억원이 모자란다.

재정운용 수익도 저조한 편이다. 건보 적립금 운용수익률은 5%, 장기요양보험은 4.21%로 국민연금(13.59%), 공무원연금(11.05%)과 비교하면 절반 이하 수준이다. 건보공단이 운용하는 부서 인력 중 다수는 금융 관련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자산 운용 경험이 부족하고 민간 자산 운용 경력이 부재해 성과 향상이 저조하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이개호 민주당 의원은 “성과주의 보수 체계를 도입하고, 투자를 다각화하는 연구가 필요하다”라며 “공무원 연금이나 국민연금처럼 별도 독립기구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한다”고 짚었다. 정 이사장의 ‘재정 지출이 예측했던 금년도 급여 지출 총액보다 적다’는 답변에 대해선 “적게 나간 건 그만큼 국민들의 진료가 어렵다는 것을 반증한다”라며 “정부 무능에 따라 일어난 의료대란을 건보 재정 부담으로 때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16일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정기석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답변하고 있다. 왼쪽은 강중구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원장. 연합뉴스

김남희 의원은 불법 개설 요양기관으로 인한 재정 누수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김 의원은 최근 5년간 불법 개설 의료기관과 약국의 불법 행위로 인한 건보 재정 누수가 1조4403억원에 달하며, 불법 개설 적발까지 의료기관은 6년 이상, 약국은 7년 이상 걸린다고 꼬집었다. 의료기관이나 약국은 의사 또는 약사가 개설해야 한다. 이들 또는 법인의 명의를 빌려 의료기관, 약국을 개설하는 것은 불법이다.

김 의원은 “불법 사무장병원, 불법 개설 약국 운영이 장기화되면서 건보 재정에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면서 “특별사법경찰법(특사경법)에 동의하지만 법 개정만 기다리고 있을 때는 아니다. 복지부와 협의해 담당 직원을 충원하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합동으로 적극적인 단속에 나서야 한다”고 피력했다.

국회 복지위 위원장인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국회 예산정책처 시나리오 상으로는 올해부터 건보가 적자로 전환되고 2028년에 준비금이 소진되는데, 의료대란으로 인해 이 시나리오가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박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복지부 장관에게 정부의 전망이든 국회의 전망이든 단순하게 생각해도 앞으로 건보 재정은 굉장히 안 좋아질 텐데 재정 소요 부분을 반영한 새 재정 시나리오가 만들어져야 되는 것 아니냐고 얘기했다”면서 “이에 장관도 동의하면서 종합감사 때까지 갖고 오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건강보험 종합계획에 새로운 변수들이 계속 생기고 있다. 재정 건전성 확보 방안을 마련하려면 새로운 재정 시나리오가 만들어지고 투명한 논의가 필요하다”며 “의료대란의 끝을 모르겠다고 하니 걱정이 든다. 많은 재정 소요로 국민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의료개혁특별위원회 등에서 내놓은 안에 대해 무조건 찬성하지 말고 건강보험 가입자들을 위한다는 마음으로 전문가로서 책임감을 갖고 적절한 의견을 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에 정 이사장은 “꼭 그렇게 하겠다. 국회에서도 많이 도와달라”고 답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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