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 재정 부담’이라는 그럴듯한 핑계 [취재진담]

‘연금 재정 부담’이라는 그럴듯한 핑계 [취재진담]

한국의 연금에는 각종 감액 제도가 존재한다. 은퇴 후 재취업해 일정 소득이 생기면 국민연금 수령액의 최대 절반을 깎는 ‘재직자 노령연금 감액제도’가 대표적이다. 또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동시에 받는다면 기초연금의 최대 절반까지 연계 감액되는 제도, 부부가 함께 살면 기초연금의 80%만 수령할 수 있는 부부 감액 제도 등이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감액 제도에 대해 불합리하다며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도 제도 개선 필요성엔 공감한다고 말한다. 다만 ‘연금 재정 부담’을 고려해야 한다며 검토만 하고 있다.

정부 말대로 각종 감액제도가 폐지되거나 그 기준이 완화될 경우 재정 부담이 크다. 재직자 노령연금 감액 제도는 은퇴 후 생업전선에 나가는 고령자가 많아지면서 삭감 규모가 해마다 꾸준히 늘다가, 지난해 2000억원을 처음으로 돌파했다. 이 제도로 삭감된 국민연금 가입자는 12만여명에 달한다. 국민연금 연계 감액으로 깎인 수급자는 지난해 60만명에 육박했고, 감액 금액도 약 500억원 수준이다. 수급자의 40% 이상이 적용 받는 부부감액 제도는 폐지될 경우 2022~2027년간 총 10조8624억원의 예산이 필요하다는 추산도 있다.

연금 곳간이 바닥날 위기에 재정 안정화를 꾀해야 한다는 논리는 얼핏 그럴 듯해 보인다. 저출산·고령화의 영향으로 2056년 연금 기금 고갈이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기금 소진 시점을 늦추기 위해 연금개혁을 서두르고 있는 상황에서 감액 제도 폐지는 후순위 과제처럼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이 감액 제도가 현재 국민연금 가입자들에게 ‘페널티’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연금 수급자 절반은 월 40만원도 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건강한 고령자들은 재취업을 해야 할지 연금을 온전히 받는 것이 이득일지 계산기를 두드리는 실정이다. 국민연금-기초연금 연계감액 제도로 보험료를 매달 꼬박꼬박 납부하는 국민연금 가입자들의 불만이 큰 데다 제도의 실효성이 크지 않다는 연구도 있다. 부부감액 제도가 위장이혼을 부추긴다는 웃지 못 할 비판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 감액제도가 국민연금 가입 의욕을 꺾고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 국민연금 임의가입자 수는 매년 하락하고 있다. 임의가입자 수는 의무 가입 대상자가 아닌 데도 자발적으로 국민연금 보험료를 내겠다고 신청하기 때문에 국민연금 신뢰도를 측정하는 대표적인 지표로 통한다. 국민연금 신뢰도가 떨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국민연금 가입 사각지대로 지목되고 있는 1인 자영업자나 특수고용노동직, 프리랜서들이 늘어나는 현재의 노동구조에서 자발적 가입자가 줄어드는 건 정부가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대목이다. 

정부는 연금개혁을 통해 국민연금의 신뢰도를 제고하겠다고 목표했다. 그러나 불합리한 제도는 남겨두고, 연금 보험료만 올리는 연금개혁이 국민들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연금 재정 부담을 고려해야 한다’는 핑계로 제도 개선을 미루기엔 잃는 것이 더 클 수 있다는 점 또한 ‘검토’하길 바란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김은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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