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대목이라는 것도 옛말이다. 물가는 오르고 공산품에 밀리니 사람들이 더 지갑을 열지 않는다. 장사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영등포전통시장에서 만난 야채를 판매하는 상인 장 모씨가 쉴새없이 부채를 부치면서 토로한 말이다.
추석 무렵이 되면 선선한 날씨와 차례상을 준비하는 주부들이 전통시장을 찾아왔지만 올해는 그렇지 않은 듯 하다. 추석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찾아온 폭염으로 전통시장에 고객들이 발길을 돌리고, 그나마 방문한 고객들도 고물가로 지갑을 열지 않는 모습이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실제로 기자가 직접 영등포전통시장에 방문했지만 시장에서 추석 대목의 열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느껴지는건 당일 최고기온 34.6℃까지 올라 뜨겁게 달아오른 시장의 무더위였다. 특히 전통시장 내부는 비가림막으로 위가 가려져 있어 온도가 더 뜨거웠다.
무더위로 인해 상인들은 취급할 수 있는 품목들이 크게 줄었다고 푸념했다. 특히 추석 차례상에 반드시 올라가는 시금치의 가격이 너무 올라 들여놓는 것을 포기했다는 발언도 나왔다. 시장상인 장 씨는 “지금 시금치 한 박스에 10만원이 넘는다”며 “만약 들여놓는다고 하더라도 시장이 더워서 시금치가 순식간에 풀이 죽어 상품성이 떨어져 팔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시금치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뛰어오르고 있었다. 전통시장 인근에 위치한 대형 마트에서도 시금치 한 팩(200g)의 가격이 무려 7000원에 달했다. 식자재마트에서 시금치 한 단의 가격도 1만2000원까지 올랐다.
시금치만 가격이 오른 것은 아니다. 모든 식자재의 가격이 올라 명절에 판매하는 전을 부치는 상인들도 어려움을 토로했다. 영등포전통시장에서 전을 판매하는 김 모씨는 “꼬지전에 쪽파를 넣어야 하는데 쪽파 두 단의 가격이 8000원이 넘는다”며 “그렇다고 모둠전 한 팩에 만원을 넘게 받으면 시장 방문 고객들이 사지 않으니 마늘종으로 대체해서 어떻게든 저렴하게 팔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터넷쇼핑몰에서는 대량으로 만든 모듬전 1kg를 2만원에 팔고 있어서 가격 면에서도 이미 밀리고 있다”며 “올해는 예약 전화도 드물고 추석 대목이 대목 같지 않다”고 한 숨을 내쉬었다.
다른 채소 가격도 고공행진하기는 마찬가지다. 배추(상품) 도매가격은 11일 기준 10㎏에 3만3560원으로 1년 전보다 102.2% 올랐다. 무(상품) 도매가격은 20㎏ 2만8480원으로 1년 전, 평년과 비교해 각각 63.0%, 53.5% 상승했다.
그나마 영등포전통시장에서 사람들이 몰린 곳은 청과물을 취급하는 곳이였다. 인근에 영등포청과물 시장이 있어 과일을 비교적 저렴하게 공수해올 수 있기에 차례상에 올릴 사과와 배를 찾는 고객들이 많았다. 사과의 경우 박스 당 4만5000원, 배는 4만원대였으며, 포도는 1만5000원대, 복숭아도 1만5000원대로 인근 대형마트의 △사과(3알 2만4000원) △배(3알 1만6000원) △포도(1박스 1만7000원~2만원) △복숭아(2만3000원) 가격보다 저렴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가격이 비싸다며 시장 방문객들은 필요한 만큼만 구매하는 소량 구매하고 있었다. 과거 사과를 한 박스씩 샀다면 이제는 제사에 필요한 개수만큼만 구매하는 식이다. 청과상을 운영하는 김 씨는 “과거에는 박스 단위로 구매해가던 손님들이 많았는데 그것도 옛 말”이라며 “대목인 명절에 바짝 벌어둬야 하는데 이제는 그런 것도 기대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전통시장의 어려움을 돕기 위해 온누리상품권을 특별 할인 판매하고 있다. 지난 9일부터 중소벤처기업부가 카드형·모바일 온누리상품권을 기존보다 할인율을 5%p 높여 15% 할인된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 지류형 온누리상품권도 5%p 늘어난 10% 할인 가격에 판매한다. 개인별 월 할인 구매 한도는 지류, 카드형, 모바일 상품권 모두 200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