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생존 아닌 ‘자아실현 공간’ 돼야” [저출생, 기업의 시간④]

“기업, 생존 아닌 ‘자아실현 공간’ 돼야” [저출생, 기업의 시간④]

최영준 연세대 교수 인터뷰 

편집자주 
한국 ‘소멸론’까지 불러온 저출생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정부는 물론 기업과 가계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특히 위기 극복에 선발주자로 나선 정부의 노력이 한계를 보이면서 이제는 기업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기업이 나서야 하는 이유와 역할을 중심으로 저출생 위기 극복을 위한 해법에 대해 들어봤다.

최영준 연세대 교수가 쿠키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최근 국내 모 건설회사가 출산한 임직원에게 자녀당 1억원을 쾌척해 귀감이 되고 있다. 출산과 보육으로 인한 재정 불안을 잠재우는 가장 현실적인 지원이지만 보편적인 혜택이 되진 못한다.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도 안심하고 출산할 수 있는 근로 환경 마련이 시급하다. 

최영준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복지국가연구센터장)를 최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최 교수는 출산을 장려하기 위한 기업 역할의 중요함을 강조했다. 근로시간의 유연화, 열심히 일하고 일찍 퇴근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자는 게 그의 지론이다.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업 역할은 무엇인가

기업이 역할을 해주면 가장 좋다. 출산율을 높이려면 출산과 보육 지원이 가장 중요하다고들 이야기한다. 지원하는 주체는 세 가지로 국가, 가족, 기업이다. 국가는, 모두가 동의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할 수 있는 많은 걸 했다. 예를 들어 0세부터 5세까지 무상보육 시스템을 만든 국가는 거의 없다. 유럽도 시스템을 보고 놀란다. 질이 조금은 떨어질 수 있지만 시설도 매우 많고 ‘아이 돌봄 서비스’라고 급한 일이 있으면 돌봄을 요청할 수 있다.

맞벌이 부부라면 부모님이나 이웃으로부터 하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게 두 번째 가족이고, 국내에서 부족한 부분은 역시 세 번째 ‘기업’이다. 유럽에서 왜 출산과 보육만 잘하면 되느냐면 근로시간이 짧다. 예를 들어 독일과 한국은 1년 근로시간이 거의 600~700시간 차이난다. 한국이 일을 너무 오래하는 것이다. 또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통근 시간이 가장 긴 국가로도 알려졌다. 이렇다 보니 육아와 근로 병행이 안 된다. 

결국 기업은 돌봄 시간을 확보해 주는 게 중요하다. 시간 문제는 근로시간 유연화가 필요하다. 일감을 조금만 주자는 의미가 아니라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찍 출근하면 일찍 퇴근하고 늦게 출근하면 늦게 퇴근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유연근무다. 우리는 아이를 돌보려면 육아 휴직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국가에선 육아휴직을 쓰지 않거나 휴직기간이 짧다. 근로시간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근무시간엔 열심히 일하고 정시에 퇴근할 수 있게 만들어줘야 한다. 저녁에 일하는 문화를 없애는 게 너무 중요하다. 

출산지원금은 좋은 시도다. 하지만 능력이 있는 기업은 가능할지 몰라도 모든 기업이 따라 할 대책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중소기업 근무자가 80% 이상인 국가에선 쉽지 않고, 비정규직이나 플랫폼 노동자, 자영업자는 꿈도 못 꿀 일이다. 기업과 국가가 이런 부분을 계속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달라져야 할 조직 문화가 있을까

수평적 조직 문화를 만드는 것 또한 굉장히 중요하다. 이건 국가가 할 수 없다. 지금 세대는 탈권위적 가족문화 속에서 자랐다. 부모와의 관계가 굉장히 수평적이고 오히려 부모보다 위에 있는 아이들도 많다. 그런 문화 속에 자라온 아이들이 직장에 갔다고 가정해 보자. 그들이 군대 문화를 경험했을 때 느끼는 이질감은 크다. 나 혼자 생존하기도 힘든데 아이를 갖는다고 건 상상이 안 되는 것이다. 

기업이라는 공간이 생존의 공간을 넘어서 미래 공간, 그러니까 자아실현을 위한 공간이 돼야 한다. 기업이 동기를 주고, 하는 일이 의미 있음을 알려주고, 제안을 하면 수용되면서 조직이 나아지고, 성과가 날 때 삶의 의미가 생기고, 그러면서 연애도 하고, 자녀에게 ‘뭔가 해주고 싶다’는 느낌이 들어야 한다. 

수평적인 조직문화는 젊은 세대에게 중요한 저출산 대응 정책이 될 수 있고, 그게 생산성을 높일 것이다. 인구 감소 사회에서 생산성은 중요하다. 과거처럼 다그치기만 해서 생산성이 오르는 게 아니다. 창의적인 사회에선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사회를 만드는 게 기업 역할이다.

좋은 제안이지만 이상적일 수 있다

맞다. 쉽지 않다. 쉽지 않기 때문에 출산율이 계속 떨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고집해 온 패턴을 바꾸지 않고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 문제는 이 패턴을 바꾸지 않은 채 왜 문제가 안 풀리는지만 고민한다. (최 교수는 앞서 청년 세대가 왜 ‘출산 파업’을 하는지, 어째서 아이를 낳을 여건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지를 먼저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관점을 바꿔서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출생 문제를 복잡한 심정으로 보고 있다. 세 가지인 것 같은데 인구가 늘지 않는다는 게 문제고, 왜 젊은 세대가 출산파업을 하는 걸까, 그리고 너무 오랜 기간 저출생이 유지돼 오면서 향후 20~30년 동안 이미 정해진 미래처럼 인구감소 사회가 올 텐데 우리는 인구감소 사회를 준비하고 있는가. 이 세 가지가 다 있다 보니 복잡한 이야기가 되는 것 같다. 

저출생 대응 정부 정책에 대한 견해는 

육아휴직 급여를 올린다고 했는데 좋은 정책 같다. 육아휴직 급여와 임금격차가 크면 아이 키우는 데 부담이 된다. 육아휴직급여를 받으려면 고용보험 대상자여야 한다. 그런데 고용보험 대상자 중 비정규직이나 플랫폼 노동자, 자영업자는 빠져 있다. 이러면 점점 소수를 위한 정책이 될 수 있다. 누구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 

최영준 교수는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바스대학교 사회정책학과 박사 △연세대 사회과학대학 연구소장 △Social Policy and Society, Social Policy Administration 국제자문위원 △한국정책학회, 한국사회복지학회, 연구위원장 △Lab2050 이사, 푸르메재단 이사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학과장 

송금종 기자
song@kukinews.com
송금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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