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일, 제21차 ‘샹그릴라 대화’가 3일간의 포럼을 마치고 폐막됐다. 올해는 40여개국에서 국방장관 등 고위급 관리, 전문가 등 500여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샹그릴라 대화는 2002년 싱가포르의 샹그릴라 호텔에서 개최된 소규모 ‘아시아 안보회의’를 모태로 출범, 오늘날과 같이 광역 아태지역 주요 국방안보 대화플랫폼으로 발전했다. 런던소재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가 주관한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2년(2020 & 2021) 중단된 외에는 매년 거르지 않고 개최됐다.
올해 아태지역은 복합적 안보도전에 직면해 있다. 무엇보다 역내 미중 경쟁과 갈등, 민진당 라이칭더 총통 취임이후의 중국-대만 양안관계, 심화되는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그리고 날로 더해가는 북한으로부터의 다층적 위협 등은 모두 아태지역 안보지형을 불안정하게 하는 요소들이다. 더하여 이번 샹그릴라 대화는 2년을 훌쩍 넘어 지속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중국의 역할과 태도, 북한의 대러 무기수출 등이 아태지역에서도 점차 민감 요소로 대두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하에서는 간략히 올해 샹그릴라 대화의 전반적 기류를 파악해 보고자 한다.
첫째, 우선 광역 아태지역 국가들에게 가장 큰 안보현안은 역시 남중국해 해양영토 분쟁과 이로 인한 잠재적 위기로 보인다. 중국은 분쟁중인 암초들의 군사기지화 등 해양영토 확장을 시도해 왔고, 최근 몇 달, 중국 해경이 분쟁지역 조업 중인 필리핀 선박을 수포 추격하는 등 갈등이 높아졌다. 예컨대, 4월 30일 중국 해경선이 영유권 분쟁지역인 스카버러 암초 인근에서 수포로 필리핀 선박 2척을 공격, 그 중 1척이 파손됐다. 이를 놓고 중국 해경은 자국법에 따라 해역에 침입한 필리핀 선박 2척을 몰아냈다고 발표했다. 2016년 필리핀의 손을 들어준 상설중재재판소 (PCA) 판결에도 불구, 중국은 남중국해 대부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영유권 분쟁은 당사국들은 물론, 항행의 자유를 기치로 한 대다수 역내외 국가들에게도 긴장요소가 된다. 글로벌 무역의 1/3이 남중국해를 거쳐야 한다.
이번 개회식 기조연설을 통해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은 중국의 “불법, 강압, 공세적 행위”를 비난하며, 이에 따른 미국의 역내 평화 및 안보 역할 필요성을 부각시켰다. “필리핀 등 동남아 국가들의 남중국해 평화와 안정, 번영의 비전을 다른 행위자가 훼손시키고 있다”고 했다.
둘째, 미중 경쟁과 갈등의 지역 안보구도가 양국 국방장관의 전체회의 연설에서 표면화됐다. 이미 역내 동맹국·파트너들과의 역사적 유대 속 가일층 협력공고화를 추구하는 미국과 강압을 통해서라도 이를 극복하려는 중국간 이해 간극의 불가피성이 보였다. 특히 둥쥔 장관의 단호한 어조와 경고는 그러한 면모를 다분히 보였다.
먼저 오스틴 장관은 ‘미국의 인도태평양에서의 전략적 파트너십’ 제하의 연설(6.1)을 통해 미국의 역내 공약을 재확인하는 데에 주력했다. 미국에게 인도태평양은 중요한 이해지역이기 때문에 “아시아가 안전할 때만이, 미국이 안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바로 이 이유로 미국이 이 지역에 존재하는 것이고, 바로 이유로 미국이 동맹·파트너들과의 공약 이행에 필요한 투자를 지속하는 것”이라 밝혔다. 이는 최근 들어 유럽(우크라이나-러시아)과 중동에서 계속되고 있는 전쟁(이스라엘-팔레스타인)으로 인해 미국의 아태지역 관여도가 축소되는 것은 아닌지, 아울러 올 11월 미국 대선결과에 따라 관여도 변동이 야기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역내 일부 국가들의 우려에 답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 3년 역내 전략적, 안보적 파트너십이 공고화됐다고 보면서, 인도태평양 안보의 새 시대는 “보다 강하고, 보다 탄력적이며, 보다 능력 있는 파트너십 네트워크”의 창출에 있다고 강조했다. 하나의 동맹이나 연합이 아닌, “비전과 상호의무를 공유하는 일련의 중첩적이고, 보완적인 이니셔티브 및 제도”의 중요성을 밝혔다. 국가명을 거론치 않았지만 그의 지역 비전에는 역내 국가들과의 영유권 분쟁 및 군사적 위협 강도를 높여온 중국이 큰 자리를 차지한 것으로 보인다. 필리핀 선박에 대한 수포공격 및 바로 며칠 전 중국이 대만 주변에서 대대적 군사훈련(5.23~24)을 벌이며 “분리주의자들”에 대한“처벌”이란 표현을 한 터여서 청중들에게 설득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강압이 아닌 “대화”를 통한 평화로운 분쟁해결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중국 둥쥔 국방부장은 오스틴 장관의 연설 다음날(6.2.) ‘글로벌 안보에 대한 중국의 접근’제하의 연설을 했다. 대만, 남중국해, 우크라이나 전쟁 등 모든 안보현안에서 전날 오스틴 장관의 방향과는 대척점을 보였다. 해군사령관 출신으로 지난해 12월 임명된 그에게는 첫 샹그릴라 연설이었다.
둥쥔 부장은 중국의 대만 독립 불용 및 남중국해 절제 한계를 경고했다. 그는 “대만이 점차적으로 독립을 추진하려 한다”며 “중국이 단호히 막을 것이기 때문에 성공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미국을 의도한 것으로 보이는 바, 누구든 이를 지원하는 세력은 스스로를 파멸로 몰아가는 것이라 경고했다. 중국은 평화적 통일을 공약하고 있는데, 점차 대만 독립을 꾀하는 분리주의자들과 외세에 의해 이 전망이 잠식되고 있다”는 중국의 시각을 전했다. 연설 후 대만 대륙위원회는 중국은 대만을 지배한 적이 없었음을 재강조하면서 둥쥔 부장의 연설이 “자극적이고 비합리적”이었다는 성명을 냈다.
둥쥔 부장은 남중국해에 대해서도 “도발”에 관한한 중국의 절제에는 한계가 있다고 경고했다. 직접적 이름을 거론치 않았으나 필리핀을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이틀 전 마르코스 대통령 연설에 대한 반격의 모양새가 됐다. 둥쥔 부장은 “어떤 국가가 외부세력에 의해 대담해져 도발을 했다”고 했다. 마르코스 대통령 취임 후 미국과의 국방협력 강화를 시사한 것으로 보였다.
한편 그는 중국을 인자한 국가라 칭했는데, 증폭되는 중국의 공세성에 비추어 역내 국가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서도 그는 중국이 책임 있는 태도로 평화협상을 도모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중국은 전쟁 중인 두 나라 모두에 무기 공급을 하지 않았으며 이중목적 물자도 엄격히 수출통제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언급은 지난 4월, 백악관이 중국이 이중목적 물품수출을 통해 러시아의 방산기반 활성화 및 전쟁연장에 기여하고 있다는 지적을 한 데 대한 대응으로 보인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깜짝 등장 마지막 날 연설했지만, 중국 대표단과의 회동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곧 있을 ‘우크라이나 평화에 관한 국제회의’(스위스, 6.15~16) 지지 및 참석을 요청했다. 러시아는 2022년 개전 이후 샹그릴라 대화에 참석치 않고 있다.
셋째, 북한으로부터의 위협은 회의 둘째 날(6.1.) 신원식 국방장관이 한반도 안보상황을 논하는 자리에서 표면화됐다. 마침 북한은 회의 며칠 전, 군사정찰위성 로켓발사를 시도하다가 실패했으며(5.27). 10여발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했었다(5.30). 신원식 장관은 반인도주의적 대남 오물풍석 투석, 유엔안보리 결의를 위반하는 탄도미사일기술을 사용한 로켓 발사 등이 기존 핵과 미사일 위협과 함께 역내 국가들에 대한 실질적 위협이자 국제평화에 대한 직접적 도전이라 강조했다. 신장관은 또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수행을 위해 북한제 무기를 수입하고 있고, 그 대가가 북한의 군사력 증강에 이용된다는 추정하, 무기거래의 즉각적 중단을 촉구했다.
종합적으로, 2024년 샹그릴라 대화에서는 지난 10여년과 크게 다르지 않게 미중갈등과 양안관계, 남중국해 분쟁 등 아태지역 안보 불확실성이 화두로 비춰졌다. 이는 현실주의 사고 속 새로울 것이 없다. 그럼에도 사이드라인으로 1년 반 이상 중단됐던 미중 국방장관 회의가 성사됐고, 적어도 소통 자체에 대해서는 양측이 모두 긍정적으로 평가한 점은 다행이다. 양측 보도문들을 보면 민감 현안 상당수가 테이블에 올라왔으며, 조만간 군대군 접촉도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샹그릴라 대화가 불안정한 아태지역 안보환경 속, 강대국은 물론 비강대국에게도 공식, 비공식 이익표출의 플랫폼이 되어 꾸준히 “관련성”과 “효용성”을 높여가기를 기대해 본다. 끝으로 국제규범과 제도, 법치, 민주주의 이념이 특정 권위주의 강대국들에 의해 약화 내지 훼손된다면, 이는 한국 같은 “비강대국”에게 결코 좋은 소식이 아니다. 더욱이 한국은 법치기반 국제질서에 의존, 지속 발전해온 대표적 국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은 국익차원에서 역내 및 글로벌 차원 좀 더 폭넓게 다양한 형태의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동시, 한미동맹과 한미일 안보협력의 중요성을 재인식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