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검증구역’ 불순분자, 엄벌이 최선이었을까” [쿠키인터뷰]

“‘사상검증구역’ 불순분자, 엄벌이 최선이었을까” [쿠키인터뷰]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 속 벤자민(임현서). 웨이브

“벤자민 쇼는 끝났습니다.” 이 한마디에 평화로워 보였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유년기를 보냈다고 자신을 소개했던 벤자민이 본색을 드러내면서다. 각기 다른 사상 코드를 가진 13인이 모인 이곳에서 벤자민이 맡은 역할은 불순분자. 공동체 구성원들 사이에 불신을 심어 배반을 유도하는 게 그의 임무다. 한때 구성원들에게 신임을 얻어 일일 리더로도 뽑혔던 그는 곧 정체를 발각될 위기다. 도망갈 길은 없다. 벤자민은 스스로 패를 까고 거래를 시도한다. 이 과정이 담긴 웨이브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이하 사상검증구역) 10화에선 요즘 말로 ‘도파민이 폭발’한다.

벤자민의 ‘본체’는 변호사 겸 사업가 임현서다. 그는 ‘사상검증구역’ 이전에 채널A ‘신입사원 탄생기–굿피플’과 TV조선 ‘미스터트롯’ 등에도 출연한 아마추어 방송인이기도 하다. 임현서는 제작진으로부터 불순분자 역할을 제안받고 3명의 가상 인물을 구상했다고 한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자란 사업가 벤자민, 홍대 부근에서 활동하며 예술에 심취한 음악가, 마르크스에 심취한 혁명가 청년 막수 등이다. 그중 왜 벤자민이었을까.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동 한 회의실에서 임현서가 들려준 얘기는 이랬다. “셋 중 제일 과하지 않고 소화 가능한 캐릭터라고 (제작진이) 판단하신 것 같아요. 제가 만났던 사기꾼들, 특히 부산과 괌을 오가며 사기 치던 사람을 떠올리며 ‘괌에서 유학한 벤자민’을 구상했습니다.”

임현서. 웨이브

이렇게 탄생한 벤자민은 합숙 기간 열흘 중 일주일간은 별다른 의심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수익 활동에 이바지했다며 추켜올려졌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불순분자는 마지막 단계까지 생존한 출연자가 많을수록, 그들이 모은 상금이 클수록 유리했다. 죄수의 딜레마로 설계된 최종 게임에서 서로를 배반한 출연자의 상금이 불순분자에게 돌아가서다. 임현서는 “사람들은 불순분자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엄청난 불안을 느끼고 상호 불신을 가졌다. 일탈도 했다”며 “불순분자를 색출해 탈락시키면 일단은 통쾌하다. 그러나 순간순간 기분에 따라 모든 일을 진행할 순 없다. 제도와 규범이 존재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탈락하지 않았더라면 최종 게임의 규칙과 생존법 등을 공유할 계획이었어요. 벌받아야 할 명단과 상 받아도 되는 사람 명단도 짜보려고 했고요. 그런데 이 공동체는 거짓말한 불순분자에게 그런 권력 행사를 용납하지 않았죠. 그보다는 그냥 ‘죽여! 죽여!’ 하는 분위기였어요. 공동체를 속인 사람을 죽이면 잠깐은 만족스러울 수 있어요. 그러나 그 결과가 정말 더 좋다고 볼 수 있을까요. 오히려 지옥에 훨씬 가까워질지도 몰라요. 배척당한 불순분자는 공동체에 적대감을 가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공동체에 융화될 수도 있었던 사람도 반(反)공동체적 괴물이 되는 거예요. 실제로 엄벌의 사회적 효용이 어디까지인가를 연구한 사례도 많습니다.”

그가 탈락 후 남은 출연자들에게 가시 돋친 말을 퍼부은 것도 이런 메시지를 완성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다 망하세요”라며 촬영장을 떠나는 그에게 누군가는 “밖에 나가서도 쟤(임현서)는 안 만난다”며 이를 갈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촬영이 끝나고도 출연자 모두 친하게 지낸다고 한다. 임현서는 “사람마다 사상과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 각자 입장이 다르고 이해관계가 다르고 살아온 궤적이나 꿈도 다르기 때문”이라며 “그렇기에 공동체엔 세련된 제도가 필요하다. 제도를 이행하는 성숙한 자세와 지성적인 이해도 중요하다. ‘사상검증구역’이라는 작은 사회 실험을 통해 이것을 눈으로 보고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법률가로서 나의 일이 가치 있다는 것도 새삼 느꼈다”고 말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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