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안중근, 오늘은 추남…정성화 “연습은 나의 힘”

어제는 안중근, 오늘은 추남…정성화 “연습은 나의 힘”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공연 실황. 배우 정성화가 ‘춤을 춰요 에스메랄다’를 부르는 모습. (주)마스트인터내셔널
정성화의 ‘춤을 춰요 에스메랄다’ 라이브 영상을 본 누리꾼 반응. 유튜브 캡처

배우 정성화가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대표곡 ‘춤을 춰요 에스메랄다’를 부른 영상에 달린 댓글 하나. “조국의 독립을 에스메랄다라는 객관적 상관물로 표현하고 있네요. 애국심이 차오릅니다.” 뮤지컬 ‘영웅’에 10년 넘게 출연하며 안중근 의사를 연기해온 정성화를 향한 ‘과몰입’ 댓글이 배꼽을 잡게 한다. 6일 서울 신사동 오드포트에서 정성화를 만나 이 댓글을 읽어주니 “‘일어나, 에스메랄다. 독립운동해야지’란 반응도 있었다”며 웃었다.

온 국민이 알 만한 대표작이 있기에 가능한 이 농담을 정성화는 숙제로 받아들였다. “내 눈높이로 표현한 노래와 관객이 받아들이는 느낌은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댓글을 보고 반성했다”며 “대표작이 있더라도 다른 작품에 출연할 땐 이전 역할을 생각나지 않도록 표현하는 게 배우의 몫”이라고 말했다. 2004년 뮤지컬 ‘아이 러브 유’로 무대 연기를 시작한 베테랑 배우의 관록이 엿보였다.

‘영웅’에서 네 번째 손가락을 구부려 안 의사를 표현하던 정성화는 요즘 등을 잔뜩 웅크리고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무대에 오른다.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연기하는 콰지모도가 척추후만증과 시·청각 장애를 가진 인물이라서다. 정성화는 “왼쪽 다리로만 걸어야 해 연습 첫날 이후 며칠 앓아누웠다”고 떠올렸다. 분장도 강렬하다. 등에 혹을 붙이고 입술도 뒤틀린 모양으로 칠한다. 공연을 본 큰딸이 대기실에서 ‘어? 어…’하며 아빠를 피했을 정도라고 한다.

정성화. (주)마스트인터내셔널

강산이 두 번 바뀌는 동안 20편 넘는 뮤지컬에 출연해온 정성화에게도 콰지모도는 도전이었다. 신체장애를 표현해야 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목소리 고민도 컸다. 콰지모도는 통상 거친 목소리를 가진 배우가 연기한다. 2007년 초연 때부터 300회 넘게 콰지모도를 연기해온 윤형렬이 대표적인 보기다. 정성화는 “‘너무 청아한 콰지모도’라는 관객 평에 나를 돌아보게 됐다”며 “노래 실력만 뽐내서는 안 되는 작품이란 생각에 가사와 감정표현에 더 신경 쓰기 시작했다”고 했다.

“콰지모도는 추한 외모를 가졌으나 관객에게 연민의 정을 불러일으켜야 해요. 콰지모도의 흉측한 외모를 보고 놀랐던 관객도 작품이 끝날 땐 ‘나라도 콰지모도를 사랑해주고 싶다’고 생각할 만큼요. 콰지모도가 왜 저렇게 에스메랄다를 사랑하는지, 에스메랄다는 어쩌다 콰지모도에게 마음을 여는지 관객이 이해할 수 있게 표현하는 게 중요합니다.”

조국 독립을 위해 총을 든 운동가(‘영웅’)부터 하이힐을 사랑하는 드래그퀸(‘킹키부츠’)까지, 정성화는 무대에서 표현한 캐릭터만큼이나 연예 활동을 하며 겪은 굴곡이 다이내믹하다. 1994년 개그맨으로 데뷔해 SBS 드라마 ‘카이스트’에 출연하며 “평생 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을 만큼 명성을 떨쳤다. 그런데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일이 끊겼다. 버는 돈이 없어 집에 전기가 끊길 정도였다. 그때 만난 게 뮤지컬이다. 정성화는 “발전하지 않으면 끝이라는 생각으로 이를 악문 채 오늘까지 왔다”고 돌아봤다. 노력의 결실은 달콤했다. 뮤지컬 시상식 남우주연상만 5번 받았다.

지난해 뮤지컬 영화 ‘영웅’에 안중근 역으로 출연하며 활동 저변을 넓힌 정성화는 아직도 목이 마른다. “세상은 넓고 위대한 사람은 많더군요. ‘노트르담 드 파리’만 봐도 그래요. 콰지모도를 300회 넘게 연기한 윤형렬, 이 작품에 1000회 넘게 출연한 댄서 타이거…. 동료들의 위대한 몸짓이 저를 겸손하게 만듭니다.” 이렇게 말하는 그도 소문난 연습벌레다. 작품에 캐스팅되면 예습부터 한다. “(연기가) 내 몸에 완전히 붙을 때까지 연습하지 않으면 다음 날 불안하다”고 할 정도다. 정성화는 “관객이 보내주는 환호성과 박수는 매일 받아도 질리지 않는다”며 “연습은 그런 함성을 받을 만한 자격을 갖추기 위한 과정”이라고 말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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