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선진국의 민낯 [안태환 리포트]

의료 선진국의 민낯 [안태환 리포트]

글‧안태환 의사, 칼럼리스트


구급차를 타고 2시간이나 병원을 찾아다니다 10대 청소년이 숨진 사고가 또다시 발생했다. 자타공인 의료 선진국이라 평가받는 대한민국의 익숙한 풍경이다. 사고 지역인 대구는 대학병원이 4곳이나 있는 ‘메디시티’였기에 그 황망함은 더하다. 건물에서 떨어져 다친 10대 학생을 태운 구급차량은 의사와 병상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었다. 촌각을 다투던 환자는 결국 골든타임을 놓쳤고 소중한 목숨을 잃었다.믿기지 않는 현실이지만 환자를 태운 구급차가 응급실을 찾아 헤매는 ‘구급차 뺑뺑이’ 실태는 실로 심각하다. 개선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농어촌이 아닌 대도시에서 벌어지는 일이기에 의료 선진국이라는 대내외적인 평가가 무색하다. 소방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 해 구급차가 병원의 거부 등으로 환자를 재이송한 사례는 무려 6천840건에 달한다. 세밀하게 따지고 들어가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두 차례 이상 치료가 거부된 환자 비율은 2020년 12.0%, 2021년 13.3%, 지난해 15.5%로 매해 증가일로에 있다. 상황은 더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달 정부가 발표한 중증·응급, 소아, 분만 환자 등이 제때 필요한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병원 간 응급의료 순환 당직제는 진료 공백을 해소하고 공공정책수가를 도입해 필수의료 분야 병원과 의사에 대한 보상을 늘리겠다는 취지여서 과거에 비해 진일보되었다. 그러나 사실 실효성이 크지 않은 정책이다. 알맹이가 빠져있다. 필수의료 분야의 수가를 높여 보상을 강화하겠다지만 정작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의료진에겐 그다지 체감온도가 높지 않다.  

유례없는 저출생으로 인한 산부인과, 소아과의 폐업이 일상화된 현실에서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한 해법 중 핵심인 의료 인력난에 대한 구체적 계획은 아직도 요원하다. 정부 정책에도 명확하게 그 대응책이 담겨 있지 않기 때문이다. 순환 당직제에 대해 의료계 일각에선 5년 전 정책의 재탕에 불과하다는 혹평도 있다. 순환당직 모형이 이번 응급의료 기본계획 4차 계획에 처음 등장하는 것이 아니고, 3차 계획에도 있었지만 제대로 구현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의료 수가는 여전히 수년째 제자리이며 외과 의사들은 하루걸러 야근을 해야 할 정도로 업무 강도는 심각한데 정부 정책은 제자리걸음이다. 

주자하다시피 ‘필수의료’란 생명과 직결되지만 업무 강도가 높고 금전적 보상이 적어 의사들이 기피하는 중증·응급, 소아, 분만 등의 분야를 말한다. 필수의료 분야의 의사 부족 현상에다 지역 간 의료 격차로 인해 필수의료 공백은 국민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엄혹한 문제가 되고 있다. 대구에서 벌어진 10대 청소년 사망사고도 이러한 의료현실에서 촉발된 예견된 참사이다.

구급차 안에서 수술할 병원을 찾지 못해 안타까운 목숨을 잃는 사고는 이제 없어야 한다. 구급차 뺑뺑이 사고는 의료 후진국의 민낯일 뿐이다. 이번 사건은 응급의료 체계를 대수술하는 엄중한 계기가 되어야 한다. 의사나 병상이 없어서 발생한 일이라면 우리 응급의료 체계에 큰 구멍이 생긴 것이다. 사람을 살리는 응급의료 체계 확립은 국가의 책무이다. 응급실의 주요 전공의에 대한 적절한 보상과 유인책이 필요하다. 환자와 응급실을 연결하는 시스템 구축은 이제 즉각적인 당면 과제가 되었다. 국민의 생명보호만큼 중차대한 국가의 의무는 없다.
이영수 기자
juny@kukinews.com
이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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