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코로나19와 연구윤리

[기자수첩] 코로나19와 연구윤리

[쿠키뉴스] 전미옥 기자 =지난해 11월 미국에서는 암으로 사망한 한 여성의 세포를 수십년간 연구에 사용한 것에 대한 거액의 배상이 이뤄졌다. 미국 하워드 휴스 의학연구소가 전 세계 연구실에서 실험에 쓰이고 있는 헬라(HaLa) 세포를 제공한 헨리에타 렉스에 사실상 재정적 배상을 한 것이다. 
 
헨리에타 렉스는 1951년 자궁경부암으로 사망한 흑인 여성이다. 이 여성에서 채취한 암세포인 헬라 세포는 본인과 유족의 동의없이 사용되기 시작해 70여년간 전 세계 연구에 쓰여왔다. 각종 치료제 개발 등 의학발전에 이바지했지만 유족들에 아무런 대가도 돌아가지 않았고, 당사자의 의료기록과 유전자 정보가 온라인에 공개되기도 했다. 이같은 비윤리 문제를 청산하고자 하워즈 휴츠 연구소가 헨리에타 렉스 재단에 수억원대 기부금을 내기로 한 것. 의과학계 연구윤리 기준을 되짚게하고, 윤리 위반에 경종을 알린 사건이기도 하다.

그로부터 몇 달 뒤 한국에서는 반대의 일이 일어났다. 감염병 환자의 혈액, 객담 등을 본인의 동의없이 연구에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려는 시도다. 최근 국회에 발의된 '감염병예방법'과 '병원체자원법'일부 개정안 이야기다. 해당 감염법예방법 개정안에는 연구자가 감염병 환자 등으로부터 유래된 감염병 병원체를 연구할 경우 서면동의 없이 연구하게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병원체자원법개정안에는 혈액, 소번, 객담 등을 인체유래물 기준에서 제외해 기관생명윤리위원회(IRB) 심의를 받지 않고도 연구에 활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 각각 담겼다. 

코로나19를 비롯한 신종 감염병에 대한 치료제와 백신 개발 속도를 높이고자하는 의도에서 나온 법안인데, 정작 연구윤리는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높다. 특히 세계 연구윤리 기준이 점차 엄격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연구윤리를 역행하는 일이 일어난 데에 국내 학계는 당혹스럽다는 입장이다. 

한국생명윤리학회 등 4개 학회는 공동 성명서를 내고 해당 법개정안이 "입법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감염병 연구과정에서 감염자 인권은 침해되며 연구의 윤리성‧과학성에 대한 검증부재로 인해 국제적인 학술적 인정도 받기 어렵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새로운 지식 창출인 의학연구가 연구 대상자 개인의 권리와 이익보다 우선할 수 없다는 취지다. '연구'라는 이름으로 혈액 등에 녹아있는 유전정보가 무단으로 사용될 경우 각종 부작용 발생할 수 있다.

시민사회의 반발도 컸다. 법정 감염병에는 코로나19를 비롯해 결핵, A·B·C형 간염, 에이즈를 비롯한 각종 성병 등 80여종의 질환이 포함돼있다. 해당 법안으로 수많은 환자가 동의없는 연구 대상자가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국회 입법예고시스템 내 해당 감염병예방법 개정안 입법예고 페이지에는 ‘공권력으로 감염병 환자의 개인의 인격이나 개인정보보호를 무시해도 좋다는 막가파식 국가폭력이다’, ‘인류 존엄성을 무시하고 당사자(가족)의 동의 절차를 생략해 개인의 의사결정권을 빼앗는 무도한 입법안이다’, ‘적어도 유족들의 동의는 얻어야 예의가 아니냐’ 등 2600여개의 반대 의견이 달렸다. 

흔히 한국을 '빨리빨리'의 민족이라 한다. '빨리빨리' 정신은 한강의 기적을 일군 한국인의 장점 중 하나다. 하지만 원칙을 무시한 '빨리빨리'는 부작용을 낳기 마련이다. 코로나19 관련 연구개발에 빠르게 속도를 내고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침해하는 방식이 우선돼서는 안 된다. 생명을 다루는 연구분야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하워드 휴스 의학연구소는 헨리에타 렉스의 세포를 사용한지 70여년만에 한화 수억원대 배상금을 지불했다고 한다. 이런 시대에 인권을 무시한 연구가 허용될 경우 가까운 미래의 후손들이 인권침해와 연구윤리 위반에 대한 막대한 대가를 치러야 할지 모른다. 

romeok@kukinews.com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
전미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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