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유재명 "배우라는 직업의 매력? '어쩔 수 없음'에 있다"②

[쿠키인터뷰] 유재명 "배우라는 직업의 매력? '어쩔 수 없음'에 있다"②

유재명 "배우라는 직업의 매력? '어쩔 수 없음'에 있다"②

(①에 이어)배우 유재명의 데뷔는 2001년. 지금까지 그가 겪었을 부침을 예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지금이라고 해서 편한 것만은 아니겠지만,아마 예전과는 사뭇 그 부침의 결이 다를 것이다. 영화 ‘비스트’(감독 이정호)개봉을 앞두고 그 스스로가 느끼는 변화가 있는지 물었다. 뜻밖에도 “바뀐것은 그리 많지 않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스무살 때 연극을 만나서 연기를 시작했는데, 어느 날 아침 눈을 떠 보니 저는 서울에 와 있고 나이는 마흔 중반이 넘어있더군요. 그 시간동안 많은 작품을 했어요. 연극 무대란 것이 배우들에게는 절실하게만 느껴질 것 같지만, 즐거운 부분도 정말 많은데 저도 즐겁게 느낀 부분이 더 많았죠. 서로를 믿고, 신뢰하고, ‘나’가 ‘우리’가 되어야만 작품을 잘 할 수 있는데, 그 일련의 수많은 작업을 어떻게 했나 싶을 정도로 많은 시간이 지나갔어요. 그리고 그 많은 작품들 속에 제 삶이 녹아있다는 점에서는, 예전과 지금의 저는 똑같아요. 배우로서 많이 알아봐주는 사람들이 있고, 주연이라는 자리에 올라섰기 때문에 부담감이 생긴 건 사실이지만 별다른 건 없죠. 작품을 만나 토론하고, 연습하고, 작품을 해내고, 겨우 끝났구나 안도하는 삶인 건 같아요.”

유재명은 그 시간들을 12월 31일과 1월 1일에 비교했다. 한 해의 마지막 날과 해를 시작하는 첫 날, 의미를 부여하곤 하지만 사실 수많은 날들과 똑같이 넘어가듯 연속된 시간이라는 점에서는 같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날들이 같다고 해서 똑같이 보내지만은 않는다. 유재명은 관성이야말로 연기의 적이라고 말했다. 

“익숙해진 순간 예민하고 적확한 연기는 안 나올거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주문처럼 되뇌곤 해요. 기분 좋은 떨림 혹시 아세요? 스트레스 중에서도 기분 좋은 스트레스가 있잖아요. 그런 떨림을 유지하기 위해 항상 주문을 외우는 편이에요. 관성적 패턴으로 연기하고 있다고 스스로가 느끼는 순간, ‘정신 안 차리냐?’고 되묻기도 하고요. 사실 제가 욕심이 많아서 더 그런 것 같아요. 때론 편안하고 여유있게 연기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돼요. 하하. 아직 젊은가봐요.”

관성과 패턴을 경계하는 모습을 까마득한 선배들에게 배웠다고 유재명은 말했다. 젊은 친구들보다 오래 연기한 선배들이 훨씬 더 열정적이라는 것이다. 여유 있어 보이는 고참 선배라 하더라도 다들 고여 버리는 순간을 경계하고 스스로를 갈고 닦는 모습을 가지고 있단다. 그렇다면 배우로서의 커리어는 어떨까. ‘비밀의 숲’ 이후 유재명은 확실하게 대중들에게 눈도장을 찍었지만, ‘무게감 있는 40대 중후반의 남자 배우’라는 함정은 또 도사리고 있다. 1년에 몇 개씩 나오는 어둡고 무거운 범죄 영화, 그 영화들에서 보이는 패턴과 자주 출연하는 배우들, 비슷한 이미지의 연기들…. 이미지 환기, 그리고 새로운 매력을 보여줄 방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은 아닐까. 

“그런 종류의 작품에 들어가기 위한 행보가 분명 있긴 해요. 그 이미지에 갇혀 패턴화되기 시작하면 재탕을 하게 되고, 삼탕, 사탕 하게 되는 경우가 없지 않죠. 그런데 그런 부분에 관해서는 제가 계획이 없다고 해야 할지, 똑똑하다고 해야 할지…. 여태까지 제가 작업했던 작품들을 돌이켜 보면 정말 계획 없이 (이미지 고착화될 염려가 없이)했거든요. 확실한 건, 저는 ‘작품주의자’가 되고 싶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런 말이 있는진 모르겠지만, 작품 선택에 있어서만은 저 하고 싶은 대로, 이미지 생각 없이 자유롭게 택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좋은 작품이라면 그게 어떤 작품이든, 누가 됐든, 무슨 매력이 있든 매력있는 작품을 하고 싶은 거예요. 이미지를 걱정하느라 정체되기보다는 ‘재미없으면 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솔직하게 작품을 선택해보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유재명은 배우라는 직업의 대한 매력으로 ‘어쩔 수 없음’을 꼽았다. “작품을 만난 순간 어쩔 수 없이 그 사람으로 살아야 하고, 그 사람이 돼야 하고, 그 사람을 좋아해야 하며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하는 거죠. 그것들을 끊임없이 반복해야 하는 게 배우의 삶인데, 그게 매력이기도 해요. 어쩔수 없는 제 명운이랄까요. 어느날 갑자기 이 일을 그만두게 된다면 그때야말로 그 ‘어쩔 수 없음’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것 같지만 지금 당장 그러질 못하니 한동안은 그 ‘어쩔 수 없음’에 집중하고 싶어요.”

이은지 기자 onbg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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