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쿠키 영화] 주말이면 방송되던 KBS 1TV ‘동물의 왕국’은 온 식구들이 모여앉아 숨을 죽이며 두 눈을 똥그랗게 뜨고 지켜보던 시절이 있었다. 철이 들고 머리가 커질 대로 커져버린 고등학교시절 이후에는 ‘퀴즈 탐험, 동물의 세계’를 즐겨보며, 여자 친구를 만나거나 소개팅 자리에서 나만 알고 있다는 듯 자랑스레 동물들의 신비한 이야길 늘어놓곤 했었다.
얼마 전 중복 날, 찾아간 본가에서 이젠 할아버지가 된 아버지께서 조카들과 함께 자연다큐멘터리를 보시며 즐거워하고 계셨다. 어린 시절 나에게도 ''세계일주'' 만큼 큰 꿈은 자연 속에 펼쳐지는 신비한 동물의 세상이었건만, 어느덧 세상의 때가 묻으며 마음속 한 구석에 묻혀버린 꿈의 편린들이 되었다.
화석처럼 굳어가던 내 꿈의 조각들에게 오랜만에 생명을 불어 넣어주는 즐거운 다큐멘터리가 찾아왔다. 방학이 끝나가는 여름의 끝자락에 놀랍고도 경이로운 꿈과 모험과 자연의 세계가 담겨진 다큐멘터리 영화가 찾아와 스크린에 펼쳐진 것이다.
오랜만에 스크린에 펼쳐진 신비의 세계
천적을 피해 끝없는 얼음바다 위에서 새끼를 낳고,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새끼와 함께 얼음 물 속으로 첫 헤엄을 치는 웨델표범으로 모습으로 영화 ‘원 라이프’(One Life)는 시작한다.
아기 올챙이를 보살피는 딸기독화살개구리의 유난스런 모성, 가족들을 지키는 아빠 실버백 고릴라, 수염수리의 특이한 식사습성과 갈색꼬리감기원숭이의 도구를 이용한 식사법, 사냥의 달인 카멜레온의 날랜 사냥법과 무시무시한 코모도왕도마뱀의 사냥, 달콤한 유혹의 파리지옥과 영리한 그라스커터개미의 놀라운 식사. 그리고 병코돌고래의 무릎을 치게 하는 물고기잡기, 경쾌하게 달아나는 붉은 긴코땃쥐의 스펙터클한 모험, ''예수도마뱀''이라 불리는 바실리스크 도마뱀의 줄행랑, 고공에서 펼쳐지는 다윈사슴벌레의 짝짓기와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며 치러지는 흑동고래의 짝짓기, 일생에 단 한번 엄마가 될 수 있는 대왕문어의 고귀한 모정 등 자연의 신비한 광경이 1시간 25분여동안 스크린에 펼쳐진다.
’신비한 세계’ 그것을 담아낸 과학기술의 발전
모두 4년의 기간 동안 제작비 400억 원을 들여 밀림, 초원, 사막, 하늘과 바다 등 극한 오지를 비롯해 전 세계를 망라해 찾아가며 이 다큐멘터리를 촬영했다. 등장하는 생물들도 해양동물, 육지동물, 조류, 어류, 곤충은 물론 식물에 이르기까지 수십 여 종 생물들의 신비로운 삶을 담아놓았다.
생물들의 생생한 모습을 잡아내는 자연다큐멘터리의 특성상 일반 카메라로 담을 수 없는 특별한 영상들이 가득했다. 특히 이를 위해 새로운 촬영기법과 기기들이 이용됐다. 붉은 긴코땃쥐가 줄행랑치는 장면이나 바실리스크 도마뱀의 특별한 달리기 모습 등이 제작진이 개발한 슈퍼슬로우 기법으로 촬영됐고, 자이로스코프를 이용해 흔들림을 방지한 ‘자이로안정기’로 촬영한 공중장면은 이전의 다큐에서 만나지 못한 새로운 장면들을 선보이게 했다. 이외에도 초고속카메라와 방수장치, 항공촬영을 자동차로 옮겨놓은 요기캠, 마이크로세계를 엿볼 수 있게 해준 HD매크로 카메라 등 단순히 자연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놀랍게 발전한 기술을 함께 느끼는 것이라고 하겠다.
더없이 편안하고 친근하게 다가온 내레이션
특히, 개그맨 이수근과 아역탤런트 김유정의 명품 콤비로 들려주는 친근한 해설은 감칠맛 나고 머릿속에 쏙쏙 들어와 방학을 마무리하는 어린이들에게 안성맞춤의 마지막 방학선물이라고 하겠다.
영화의 더빙을 마친 이수근은 “내 아이에게 아빠가 하는 첫 작품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게 기분 좋고 기쁘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의 크게 오버하지 않고 담담하게 하지만 웃음을 가득 머금은 목소리는 아이에게 자연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딱 그대로 아빠의 목소리였다. 게다가 감정이 고조되며 흐르는 눈물이 느껴지는 김유정의 목소리 연기는 자연에 대한 호기심과 신비로움을 관객들 모두가 함께 할 수 있게 해줬다. 이 두 사람의 목소리가 명콤비를 이뤄 다큐멘터리를 관객 곁으로 더 할 나위 없이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이끌었다.
다큐를 완성시킨 두 전문가의 탁월한 품새
BBC의 ‘내츄럴 히스토리’에서 프로듀서로 시작한 마이클 건튼은 이후 프로듀서 겸 감독으로 명성을 날리며 60 여 편의 자연다큐멘터리를 연출한 베테랑이다. 그는 현재 ‘Africa and Survival’을 기획하고 있다. 중동에서 태어나고 자란 마샤 홈즈는 동물학을 전공하고 박사과정에서 물고기의 행동을 연구한 해양동물 전문가라고 하겠다. 북극에서 제작한 ‘Wildlife Special:Polar Bear’를 연출하기도 했다.
"이 영화는 자연과 인간을 하나로 연결시킬 뿐만 아니라 그들의 위대한 삶을 통해 우리에게 큰 감동을 선사할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이 두 사람의 자연에 대한 따뜻한 애정의 시선과 탁월한 연출력이 훌륭한 다큐멘터리를 완성시켰다. 앞으로도 이들이 만든 다양한 다큐멘터리들을 계속 만나볼 수 있기를 바래본다.
영화의 말미에 이수근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메시지는 관객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이끈다. 그 이야길 들려주며 자연에 대한 어릴 적 나의 꿈들을 다시 꿈꿔보면 어떨까? 물론 자녀들이 함께 있다면 두 손을 꼭 잡고 함께 말이다.
“오늘 여행에서 만난 이 세상의 모든 생명들은 우리와 다를 바 없어요. 우리와 함께 살아갈 좋은 친구들이에요. 우리가 이들과 ''친구''라는걸 잊지 않는다면 그래서 먼 미래에도 우리가 함께 살아갈 수 있다면 이 세상의 생명들은 더 풍요로워 질 거에요. 함께 살아가는 것이 행복하다는 걸 모두 알게 될 거에요.”
정지욱(鄭智旭, 영화평론가, nadesiko@unitel.co.kr )
현재 일본 Re:WORKS 서울사무소 편집장으로 일하며,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 심사위원,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부문본심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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