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Z talk] ‘삼국지 : 명장 관우’ - 가장 낭만적인 삼국지가 왔다

[Ki-Z talk] ‘삼국지 : 명장 관우’ - 가장 낭만적인 삼국지가 왔다


[쿠키 영화] 서울 흥인문(동대문) 밖에 가면 ''동묘''가 있다. 이곳은 관우 장군의 제사를 지내기 위한 사당으로 ''동관왕묘(東關王廟)''가 원래 이름이다. 그곳에서 멀지 않은 경동고등학교를 다닌 나는 고교시절 “이곳에 여(呂)씨 성을 가진 이가 들어가면 죽는다”는 이야기(관우와 그의 아들 관평이 여몽(呂蒙)의 계략에 의해 죽음을 당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를 우연히 접하고, 여씨 성을 가진 친구를 어떻게든 꾀여 데려가 보려는 계략을 짜보기도 했다. 물론 친구가 죽음은 고사하고 실성이라도 할까 두려워 결국에는 시도해 보지 못했지만.

<적벽대전> <용의 부활> 이후로 잊어졌던 삼국지가 반가이 스크린을 찾아 왔다. 빠르고 날렵한 붉은색의 적토마와 82근(18.286Kg)의 청룡언월도, 그리고 긴 수염에 대춧빛 얼굴로 상징되는 인물로, 삼국지 등장인물 가운데 가장 사랑받는 영웅 중의 영웅 관우가 이번 삼국지 영화의 주인공이다. 제목마저 <삼국지: 명장 관우>이다.


영웅 그리고 영웅: 관우 그리고 조조

정성스레 나무를 고르고 깎아 몸을 만들고 그 위쪽에 베어진 관우의 목을 놓는 조조의 모습으로 영화는 시작되고, 어느새 과거로 돌아간다.

하비성 전투 후 조조(강문)의 휘하에 들어가게 된 관우(견자단)는 ‘딱 한사람을 죽이면 전투가 끝이 난다’는 조조의 말에 술잔이 식기 전에 적을 물리치는 용맹함, 백성들을 돌보는 세심함을 지닌 용장이다. 그의 품성은 조조의 군에서조차 존경의 대상이 되고, 조조의 믿음은 더욱 커져 간다.

이 영화는 간극에 담긴 조조와 관우에 대해 보다 심도 있는 이해가 필요한 작품이다. 일반적으로 악인에 해당하는 조조지만 영웅을 알아보고 연민과 존경을 표하는 모습들이 담겨있다.

영웅 그리고 로맨스 : 관우 그리고 기란

유비에게 돌아가려는 관우를 말려 보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사람과 상황을 꿰뚫어보는 매와 같은 시선을 지닌 조조는 관우가 연정을 품고 지키는 기란(손려)을 이용해 보려 관우에게 최음제를 먹인다. 하지만 기란은 유비의 후처로 예정된 여인으로, 예부터 연정을 품어 왔으나 주군 유비에 대한 충성심이 강한 관우는 비록 갈등하지만 그녀를 지키기 위해 마음을 다잡는다. 당돌하고 적극적인 영화 속 기란은 청초한 자태와 단아한 기품으로 남성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영화는 이처럼 ‘유비의 후처가 될 여인을 관우가 마음속 깊이 품었다’는 새롭게 꾸며진 이야기를 넣음으로써 역사상 가장 낭만적인 삼국지를 구현하고 있다. 물론 갑작스레 속내를 고백하는 기란, 애잔하게 그녀를 바라보는 관우의 시선이 기존 삼국지와 전혀 다른 전개이다. 하지만 매끄럽지 않게 느껴지지 않는다. 살아가면서 한번쯤은 사랑하는 여인을 마음에 묻어 놓고 살고픈 뭇 남성들의 로망을 이번 삼국지는 과감하게 표현, 또 다른 감칠맛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영웅 그리고 액션 : 관우 그리고 오관참육장

기란과 함께 주군 유비에게 돌아가는 관우 앞엔 험난한 여정이 기다린다. 원작 <삼국지>에서 ‘오관참육장(五關斬六將)’ 또는 ‘오관돌파(五關突破)’로 소개되는 이 이야기는 영화의 기둥 줄거리로 자리 잡는다. 특히 18kg이 넘는 청룡언월도를 가볍게 놀리는 관우, 수백 필의 기마병이 등장하는 등 대규모 몹신은 물론이고 다양한 무기들이 등장해 수많은 검법과 진법이 화려하게 펼쳐진다.


관우 그리고 조조 : 견자단 그리고 강문

관우를 연기한 견자단(甄子丹)은 일찍이 이소룡의 스승 ‘엽문’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엽문> 시리즈와 <정무문>을 통해 화려한 무술연기를 선보인 배우다. 뛰어난 실력으로 이 영화에서는 무술감독 역할까지 해 내며 그 몫을 톡톡히 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부족함은 있는 법. 기란을 향한 애절한 연정의 연기는 화려한 무술실력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 그래도 뭇 사내들은 무뚝뚝한 그의 연기를 보며 어쩌면 더 깊이 감정이입을 할런지도 모른다. 깊은 속내를 표현하지 못했던 나의 모습을 찾게 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처세에 능란하며 난세를 치세로 이끈 야망의 사내 조조를 연기한 강문(姜文). 그는 심의(深意)를 품고 있는 현실적 정치가로서의 조조를 밀도 있게 잘 표현해 냈다. 적장이지만 놓치기에 너무도 아까운 관우를 지켜보는 안타까운 시선이나 영화 마지막에 등장하는 나이든 조조의 모습은 관객들에게 조조에 대한 ‘드라마틱한 재해석’을 조금의 무리도 없이 인도한다.


사극에까지 미친 느와르적 영상언어

일찍이 홍콩 최고의 느와르로 손꼽히는 <무간도>를 연출한 맥조휘(麥兆輝)의 손으로 이 영화는 만들어졌다. 그는 조조와 관우, 엇갈리는 두 남성의 운명을 전작이었던 <무간도>에서와 마찬가지로 팽팽한 긴장감과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균형감각을 통해 연출해 냈다. 게다가 가슴 떨리는 애절한 로맨스를 곁들일 수 있었던 건 그만이 할 수 있는 연출이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봐 왔던 <삼국지>들과 사뭇 다른 것이 것이 이번 <삼국지: 명장 관우>다. 어쩌면 어색하고,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자. 낭만이 깃든 삼국지는 이번이 처음 아닌가? 우리가 기대했던 액션이 전혀 부족하지도 않은데 말이다. 화려한 액션과 영웅들의 고뇌에 낭만적 연정이 곁들여 있나니, 이 어찌 뭇 사내들의 가슴에 파문을 일으키지 않겠는가.


정지욱(鄭智旭, 영화평론가, nadesiko@unitel.co.kr )
현재 일본 Re:WORKS 서울사무소 편집장으로 일하며,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 심사위원,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부문 본심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다.

*외부 필자의 기고는 국민일보 쿠키뉴스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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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상 기자
nadesiko@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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