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Z talk] ‘오월愛’ - 서른 해 전 그날들을 기억하십니까?

[Ki-Z talk] ‘오월愛’ - 서른 해 전 그날들을 기억하십니까?


"[쿠키 영화] 어버이날, 어린이날 그리고 스승의 날, 오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부른다. 계절의 여왕이라 불리기도 하는 오월은 싱그러운 신록의 계절이며, 붉은 장미와 향기로운 내음의 아카시아, 라일락이 만개하는 시절이다.

종교적 의미에서는 4월의 마지막 에 있긴 하지만 예수의 부활을 기념하는 부활절로부터 5월이 시작되며, 성모 마리아의 로사리오 성월이며, 부처님의 탄생을 상징하는 초파일이 있어 온 세상이 축복에 가득한 시간이다.

하지만 오월, 삼십년 전 이 땅에는 싱그러운 신록의 계절 오월에 장미 꽃잎보다 더 붉은 핏빛으로 물든 눈이 부시도록 슬픈 역사가 존재했다. 강산이 변해도 세 번은 변했음직한 세월이 지난 2011년의 오월. 우리들이 기억하고 보듬어야 할 역사가 있고, 역사 속에 침잠하는 이들의 안부를 물어 살펴야 할 시간이 있다.


오월愛(사랑, 그리고 아픔)

김태일 감독의 다큐멘터리 ‘오월愛’는 조연출 주로미 씨가 아이들과 함께 망월동을 찾으며 시작된다. 두 아이와 함께 망월동을 찾아가는 그녀의 모습은 어찌 보면 낭만적이고, 해맑은 아이들의 미소는 세상에 대한 사랑이 가득하다. 막연히 30년전 역사적 사실에 대한 사랑에서부터 이 영화는 시작된다.

당시 항쟁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길 원하며 영화를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오월을 품고 가는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방법으로 아픔을 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카메라를 외면하는 시민은 묵묵히 자기 일만 해간다. ''''아무 쓸데없는 것이야. 쓸데없는 짓''''이란 말만 되풀이하며.


오월哀(초조한 마음속의 슬픔)

지금까지 광주민주화항쟁에 대한 여타의 기록들은 항쟁을 주도했던 이들과 이른바 핵심인물에 초점을 맞춰 들려줬다. 이 항쟁에는 어린아이부터 팔순노인까지 수많은 일반 시민들이 참여했고, 피를 흘렸다. 일반 시민군으로 참여했던 청년, 이들에게 주먹밥을 지어주던 아주머니, 그리고 이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내던 사진기자의 목소리를 담아냈다. 심지어는 게엄군의 소대장으로
역사의 현장에 있던 이의 증언도 함께.

이들은 누구하나 후회하지 않는다. 다만 가슴 속 깊은 그곳에 담긴 슬픔을 어디에도 토해내지 못하고, 삼십년의 세월을 지냈던 이들이다. 하지만 "이런 해봤자 밥이 나오냐? 돈이 나오냐?"며 손사래를 치던 과일가게 아주머니도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이 겪었던 일들과 그들의 가슴에 맺힌 사연을 들려준다. 도청을 향해가는 사람들에게 격려와 힘을 북돋아주던 시민들을 기억하며 말을 잇지 못하고, 전남방적 노동자들의 모습을 감격스레 증언하는 사람들의 증언에는 슬픔이 뚝뚝 묻어난다.


오월愛(사랑, 그리고 나아감)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이들은 대부분 화려한 사람이 아니다. 현재 이들은 신발닦이, 과일 노점상, 중화요리집 주인, 관광버스 운전기사 등 40여명의 시민들이 출연한다. 징한 그들만의 사투리로 전달하는 이야길 듣고 있자면 슬픔보다는 이들의 뜨거운 애정이 느껴진다. 이들의 투쟁은 분노였기보다 함께 살던 이들에 대한 지극한 사랑에서 시작됐음을 알게 된다. 당시 이들은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니고 스스로 자신이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마음가는대로 행했을 뿐이다.

오월은 더 이상 봄이 아닌 싱그러운 신록의 시간, 즉 오월은 초여름이다. 영화는 슬픔을 토해내던 이들의 활짝 핀 미소들과 함께 마지막을 장식한다. 역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안고 살아가는 그들이지만 눈 내리는 광주의 골목을 힘겹게 걸어가는 이의 모습에서, 면발을 뽑기 위해 밀가루 반죽을 매만지는 손길을 지켜보면 아픔과 슬픔에만 젖어 있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서 이들은 소임을 다하며 30년 전을 기억하고 있는 이들을 볼 수 있다. 이들은 조용히 내일을 기다리며 역사의 미래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


더불어 상구네

영화를 제작한 회사의 상호가 ‘상구네’다. 연출 김태일, 조연출 주로미, 촬영보조 김상구가 한 가족으로 ‘온 가족 프로덕션’이라 불린다. 2009년 5월 광주의 대안시장 뒷골목에 작은 방을 구해 작업실 겸 생활공간으로 꾸민 이 가족은 시장 구석구석을 누비며 이들과 이웃이 되며 속내를 하나하나 들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비로소 이들의 증언을 담아낼 수 있게 된다.

김태일감독은 민중의 시각에서 쓰는 ‘민중의 세계사’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 바램의 시작으로 ‘오월愛’가 만들어졌다. 제도권 교육을 거부하고 스스로 공부하는 길을 선택한 열다섯살이 된 상구와 함께 이 가족은 인도차이나 반도의 이야기를 담는 두 번째 작품을 준비 중이다. 앞으로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등지를 돌며 화려하지 않은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세계 역사의 현장에 있던 이들을 담으려 한다.

민중의 눈으로 지켜보는 세계의 역사, 한 가족의 손으로 담아내는 세계의 역사가 앞으로 어떻게 이어질지 계속 지켜보며 박수와 함께 자그마한 격려를 보내본다.

정지욱(鄭智旭, 영화평론가, nadesiko@unitel.co.kr )
현재 일본 Re:WORKS 서울사무소 편집장으로 일하며,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 심사위원,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부문본심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다.

*외부 필자의 기고는 국민일보 쿠키뉴스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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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상 기자
nadesiko@unitel.co.kr
박효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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