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쿠키 영화] 스크린쿼터 일수가 축소로 영화계가 술렁이던 2006년 4월, 조용히 스크린을 찾아온 작품이 하나 있었다. 큰 예산으로 제작되지도, 스타급 배우들이 출연하지도 않았던 이 영화는 입소문을 통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급기야 230만 명의 관객을 스크린 앞에 앉히는 기염을 토했다. 박용우와 최강희를 주연으로 한 손재곤 감독의 영화 <달콤 살벌한 연인>이었다.
그 후 4년의 세월이 흐른 지난해 가을. 손재곤 감독은 좀 더 파워풀해진 코믹과 멜로, 그리고 추리가 뒤섞인 영화 <이층의 악당>을 들고 다시 스크린을 찾았다.
한 지붕 두 가족, 악당과의 동거
인사동에서 알아주는 문화재 밀매범 창인(한석규 분)은 작가를 자처하며 우울증으로 인한
불면증에 시달리는 연주(김혜수 분)의 이층집에 세 들어온다. 창인은 시 외곽의 한적한 주택가에서 새 작품을 쓰기 위해 왔다고 연주에게 말하지만 사실은 이 집 어딘가에 감춰진 20억 원짜리 도자기를 찾기 위해서다. 그리고 한창 사춘기를 겪고 있는 아역 CF스타였던 연주의 딸 성아(지우 분). 비록 아래 위 층이지만 이렇게 한 지붕 아래 거처하게 된 사람들의 기막힌 동거가 시작된다.
1층 집이 비워지면 도자기를 찾기 위한 창인의 가공할만한 노력이 펼쳐진다. 하지만 성아는 학교 가기를 거부하고, 연주마저 출근을 거부한다. 도자기를 찾기 위해 몸까지 바쳐가며 혼신의 쏟는 창인은 어렵게 들어간 지하 창고에 갇혀 버린다. 도자기를 찾고 창인의 정체를 둘러싼 추리, 쉴 세 없이 작렬하는 말발과 코믹, 그리고 남녀 주인공을 중심으로 은근하게 달궈지는 멜로, 절대로 넘치지 않게 담겨지는 사회적 메시지.
만만찮은 코믹, 예사롭지 않은 멜로가 가슴을 콩당콩당 뛰게 하는 추리와 자그마한 반전과 엉뚱하게 꼬여가는 상황들을 만나 맛깔난 한 편의 영화를 만들어 내고 말았다.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손재곤의 악당들
<이층의 악당>에 등장하는 악당은 역시 창인이다. 손재곤 감독의 이전 작품을 살펴보면 <달콤 살벌한 연인>에서는 미나(최강희), 그 이전 작품인 <감독 허치국(2001)>에서는 허치국, <너무 많이 본 사나이(2000)>에서는 살인자가 악당이다. 이 악당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죄는 미워하더라도 사람을 결코 미워할 수 없게 만드는 매력이 그것이다.
살기위해 어쩔 수 없이 살인을 계속하게 된 미나. 쫓기는 생활 속에서도 영화에 대한 애정을 감추지 못하고 자신의 영화를 만들겠다는 허치국.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해 비디오를 보다가 결국 영화 마니아가 되어버린 살인자. 그리고 이번에 등장하는 강선생 역시 마찬가지다. 문화재 밀매범에게 뭔 동정이 가겠냐마는 헐~ 영화를 보다보면 그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게 된다. 게다가 마지막에 등장하는 초짜 악당의 출연과 그들에 대한 연민의 정까지 일어나게 하다니 어쩌면 손재곤 감독 머릿속의 악당은 진짜 악당이 아닐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악당을 미화시키는데 달인인 그가 진짜 악당일지도 모른다.
반가움이 가득한 이들의 만남
이 영화가 반가운 것은 비단 감독만이 아니다. 16년 전 안방극장에서 최고의 나쁜 남자로 손꼽히며 장안의 손가락질을 혼자 다 당했던 비열한 남자 홍식. 비열한 남자 홍식이었던 한석규가 드라마 <서울의 달>에서의 독특한 능글맞음과 달콤하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를 가지고 되살아났다. 그것도 혼자가 아니라 15년 전 자신의 첫 영화 데뷔작 <닥터봉>에서 사랑을 공방을 펼쳤던 김혜수와 함께했다.
한동안 이 들의 연기력에 대한 논란과 출연작에 대한 우려가 많았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의 강박증적인 연기와 웃음을 자아낼 수밖에 없는 융통성 넘치는 코믹한 연기를 보노라면 관객들은 역시라며 무릎을 치게 된다.
추억 속에만 남아있던 그의 능글맞음과 그녀와의 상큼한 사랑이 조금은 색깔이 달라졌지만, 세월이 묻어나는 찰떡궁합을 과시하며 관객들에게 다가온 것은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올림픽 감독의 귀환만큼 이들의 찰떡궁합을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우리 관객들은 행운을 거머쥐었달 수 있겠다.
더 강력하게 첨가된 다양한 조연들의 맛
전작에서 볼 수 있었던 조연들의 감칠맛이 <이층의 악당>에서 좀 더 체계적으로 구비됐다. 옆집에 살며 사사건건 잔소리를 하는 여인의 이용녀, 연주에게 연모의 감정을 품고 있는 오순경의 이장우, 창인의 파트너이자 만능 멀티맨 성식역의 김기천, 하대표 역의 엄기준, 무대뽀 송실장의 오재균 등이 던지는 조연들의 감칠맛은 예사롭지 않다.
특히 <달콤 살벌한 연인>에 조은지가 있듯, 이곳에는 김기천이 있어 더욱 풍성한 영화가 마련됐다. 더욱이 영화의 뒷부분에 보여주는 이들의 몽타주 장면은 손재곤 감독이 유난히 좋아하는 영화적 장치로, 관객들에게 각 캐릭터를 이해할 수 있는 선물한 보너스라고 할 수 있다.
올림픽감독의 멍에? 명예!
‘올림픽 감독’이랄까? 4년의 주기로 개봉한 탓일까? 사람들은 그를 그렇게 부르며 2010년 가을을 맞아 스크린을 방문한 감독 손재곤을 열렬히 환영하고 있다. 4년 전 축소된 스크린쿼터 일수의 영향이 한국영화산업에 미친 영향은 적잖았고, 어쩌면 ‘올림픽 감독’이라는 호칭이 그에게 부담스런 멍에가 될 수도 있지만, 많은 관객들은 4년 만에 찾아온 그를 명예롭게 맞을 준비를 하며 영화관에 불이 꺼지고 스크린이 환하게 비춰지길 기대하고 있다.
더불어 나의 작은 바람이라면 앞으로 올림픽만 챙기지 말고 최소한 아시안게임도 챙겨 2년에 한 작품씩 손재곤의 신작들을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기를.
/ 정지욱(鄭智旭) 영화평론가 nadesiko@unitel.co.kr (일본 Re:WORKS 서울사무소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심사위원,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부문본심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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