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쿠키 스포츠] 올해 플레이오프의 사나이 두산 베어스 고영민 선수가 최근 4주간 군사훈련을 마치고 퇴소했다.올림픽 우승에 따른 군 면제의 혜택을 받았기에 이번 훈련은 그가 군대를 접한 유일한 경험이었던 셈이었다. 퇴소한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군사훈련 받은 동기들을 “전우”라 칭할 만큼 군기(?)는 여전했다.
고영민은 “다시는 군대가고 싶지는 않지만 많은 것을 배웠다”며 군 정신을 바탕으로 내년 두산 우승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9일 서울 잠실운동장 내 두산 구장 사무실에서 고영민을 만나 직접 군생활의 에피소드와 내년 각오 등을 들어봤다.
◇군사훈련 쉽지만은 않아…군대 자살도 이해할 정도◇
-4주간의 훈련은 어땠는지?
태어나서 야구만 했는데, 각기 다른 지방에서 모인 전우들과 단체훈련을 하는 것이 색다른 경험이었다. 처음에는 적응이 잘 안됐으나 함께 몸 부딪치며 훈련받고 시간이 흐르다보니 익숙해지더라. 나에게는 의미 있는 4주였다.
-군 동기와는 많이 친해 졌나
퇴소 이틀 후에 전우들과 모여서 회포를 풀었다.
-고 선수와 전우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다.
나도 익숙하지만은 않았다. 처음에는 전우들이 나보고 야구선수라고 신기해 했었는데 함께 지내다보니 동네 형 같다고 하며 편해하더라.
-실제로 군 생활을 4주가 아닌 2년간 한다면 어떨 것 같나?
군대에서 자살문제가 심각하다고 하는데, 이 생활을 2년 동안 하면 그럴 것도 같다.(웃음)
-선수들이 받는 훈련은 혹독하기로 유명하다. 그에 비하면 군 훈련은 아무것도 아닐 것 같다. 야구 훈련과 비교한다면 어떤가?
운동은 항상 해왔던 것이고 스케줄이 정해져 있어서 내가 뭘 해야 할지 명확히 알 수 있다. 하지만 군 생활은 잘 모르는 사람들과 섞인데다 어떻게 할지 모르다보니 어리바리하다며 혼나기도 했다. 시간이 가면서 적응해 갔지만 쉽지만은 않더라.
-다시 돌아간다면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가?
솔직히 다시 가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많은 걸 배우고 왔다.
-군대 음식은 입에 맞던가?
김치가 맛있더라. 난 정말 밥을 많이 먹는다. 그런데 양이 좀 적었다. 한 번은 제육볶음이 반찬으로 나왔는데 좀 더 달라고 했더니 안주더라. 살짝 화가 날 뻔 했다.
-가장 생각났던 바깥음식은 뭐였나?
삼겹살이 많이 생각났다.
-훈련기간에서 재밌던 에피소드가 있었나.
화생방 훈련 때 가스가 ‘뻥’하고 터지는 순간, 옆에 있던 친구 한 명이 “총 앉아 쏴”라고 해야 하는데 “엎드려 쏴”라고 말하며 혼자 엎드려서 전체가 5분간 온통 웃음바다가 됐다.
-군사훈련 받은 뒤 살이 좀 붙은 것 같다
운동할 때 성격이 예민해서 살이 좀 빠지는 편인데, 4주 훈련에서는 아무 생각 없이 편하게 규칙적으로 먹고 자니까 몸이 더 좋아졌다. 아픈 곳도 군 내에서 치료를 항상 해줘서 나았다. 볼 살이 좀 쪘다고들 한다.
-여자친구가 편지 많이 써주던가?
편지 한 통이 그렇게 감동이 될 줄은 몰랐다. 나 역시 여자 친구에게 하루 일과를 써서 보냈다. 수첩에다가도 일기와 일상을 써서 여자 친구에게 보여줬다.
-같이 갔던 선수 중 누가 제일 힘든 내색을 하던가.
내가 아니었나 싶다. 뭔가 하게 되면 아프다고 빠지려고 하고 사실 좀 꾀를 많이 부렸던 것 같다.
우리팀의 김현수는 분대장 상을 받을 만큼 무척 열심히 하더라. 그렇지만 현수 역시 두 번 다시는 못가겠다고 하더라.

◇라이벌은 오직 나뿐◇
-지난 시즌에는 발목부상 때문에 힘들었을 것 같다. 그럼에도 플레이오프때 투혼의 경기를 보여줬다
팀이 3위를 해서 무척 아쉽다. 시즌 때 내가 팀에 도움이 되지 못한 것이 많이 아쉽다. 내년에는 꼭 만회할 생각이다.
-이번에 한국시리즈는 봤나?
관중석에서 많이 봤다. 1위든 꼴찌든 결과는 모르는 게임이 야구다. 1초라도 방심하면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게 야구라고 생각한다.
-혹시 라이벌로 생각하는 야구선수가 있나?
라이벌이라고 생각해본 사람이 한 명도 없다. 내가 워낙 자아가 강해서 누구를 따라 간다거나 스타일을 닮고 싶다기 보다는 내가 못해도 ‘내 스타일, 내 야구’를 보여주는 게 오히려 자신한테도 더 좋은 것 같다.
-공격할 때 준비동작을 보면 앉았다 일어났다 하는 모습이 재미있다.
바지가 커 자꾸만 내려가서 그런 거다.
-운동 때는 다른 것에 신경 쓰이지 않도록 맞게 입어야 하지 않나.
더 붙는 바지를 입으면 말라보여서 일부러 좀 크게 입는다. 사람들이 TV화면이랑 실물이 많이 다르다고들 한다.
-오랜 무명시절 가장 힘든 건 뭐였나.
고등학교 때 야구로 주목을 받고 두산베어스에 입단했다. 입단하기 전에는 야구를 잘하다보니까 옆에 있는 사람이 늘 도와주고 힘이 돼 줬는데, 구단에 들어와 보니 나에게 먼저 따뜻한 말 건네는 사람도 없고 도와주지도 않았다. 스스로 커야한다는 것을 늦게 깨달았다. 2군 생활은 정말 힘들었다. 안타를 치던 홈런을 치던 팬들의 박수도 없고 고영민이라는 이름을 외쳐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 서러웠다. 그 시절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지금도 2군의 시절을 항상 머릿속에 떠올리고 그 때 그 힘들고 서럽던 시절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야 자만하지 않고 더 스스로에게 용기를 북돋워주는 힘이 되는 것 같다.
-고영민 선수 수비는 이익수(2루수+우익수)로도 유명하다. 수비의 비결이 따로 있다면?
초등학교 때 야구부 감독님의 말씀이 아직 기억에 남아 있다. 반 발짝 먼저 스타트하는 게 내야수에게 중요하다고 항상 말씀하셨다. 그래서 투수를 보면서 타자를 보는 게 아니라, 옆으로 투수를 보고 타자의 스윙각도를 보면서 반 발짝 먼저 스타트하는게 내 장점이 아닌가 싶다.
-조금 다른 질문인데, ‘루저 파문’에 대해 들어본 적 있나?
들어본 것 같다. 나는 183㎝이다.(웃음)
◇야구노조문제는 형들을 믿고 따를 뿐…내년 가을잔치때 마지막으로 웃겠다◇
-야구 노조가 설립된다고 하는데 이것을 창구로 사회적 발언을 할 생각이 있나?
팀 형들이 후배들을 생각하면서 우리를 이끌어나갈 것이라고 본다. 팀에선 내가 아직 어리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말을 해서 무언가 이끌어 내려고 하기보다 형들을 믿고 따르겠다.
-선수로서 다음 목표는 뭔가?
목표는 세 가지다. 내년엔 더 열심히 해서 전 경기에서 뛰는 게 바람이고, 개인 성적은 타율 3할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 내년 가을잔치에 마지막으로 웃을 수 있는 두산 베어스가 됐으면 좋겠다.
사진 촬영을 위해 그라운드로 나갈 때 고영민은 후배들의 인사를 잇달아 받았다. 후배가 사복차림에 파마머리를 하고 있자 “나도 파마하고 싶다”며 부러운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라운드에서는 전사와 같던 고영민이지만 알고 보면 순수한 스물다섯 청년 그 자체였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인턴 이상미 기자, 사진=장일암 작가 32gos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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