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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명이 샤워실 앞에 줄을 섰다 [1.5평의 권리⑤]

-조리에 뒷정리까지 끝내면 녹초…몸 구겨야 간신히 들어가는 휴게실
-좁은 공간 탓에 벽 매달린 옷장…조리사 덮쳐 하반신 마비 사고까지
-땀·음식물 찌꺼기 뒤집어쓴 몸, 샤워 수전 1개로 19명 씻기도


1.5125평. 서울시가 정한 1인 휴게 공간 적정면적입니다. 현실은 빠듯합니다. 9명의 노동자에게 주어진 공간은 1평 남짓입니다. 어떤 이는 계단 구석에서 또 다른 이는 곰팡이 슨 지하에서 숨을 돌립니다. 누군가는 묻습니다. 일하러 간 직장에 휴게실이 왜 필요하냐고요. 노동자는 깨끗하고 안전한 공간에서 쉴 권리가 있습니다. 쿠키뉴스 특별취재팀은 열악한 휴게 공간을 돌며 현장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바뀌긴 할까요” 묻던 한 노동자에게 이제는 우리 사회가 답할 차례입니다.

*기사는 노동자들의 목소리와 취재 내용을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했습니다.

광주 남구 한 학교 급식 조리사 휴게실 모습. 먼저 누운 이들이 두 다리를 들어 옷장에 기대야 머리 위에 다른 동료가 누울 자리가 생긴다. 민주노총

매일 평균 150인분의 밥을 차립니다. 어린 학생 입에 들어갈 점심입니다. 무엇 하나 허투루 하지 않습니다. 불려둔 쌀로 밥을 안치고, 기름이 펄펄 끓는 가마솥 앞에서 돈가스를 튀깁니다. 볶음 요리를 할 때는 눌어붙지 않도록 1m 길이의 조리삽으로 끊임없이 저어 줘야 합니다. 가까스로 제시간에 맞춰 밥을 내보냅니다. 여기서 끝이냐고요? 한숨 돌린 뒤에는 청소를 해야죠. 

저는 학교 급식실 조리 노동자입니다. 뒷정리까지 끝나면 오후 3시가 넘어요. 무거운 식자재를 운반하고, 오래 서 있다 보니 다리는 천근만근입니다. 10명 중 7명이 근골격계질환 증상을 호소해요. 어깨와 팔은 말을 듣지 않죠. 젖은 솜처럼 무거운 몸을 끌고 휴게실로 갑니다.
옷장, 냉장고, 책상 등이 자리를 차지해 휴게 공간은 더 좁아진다. 각각 다른 광주 소재 학교 급식 조리사 휴게실. 민주노총

휴게실은 좁습니다. 무릎을 접고 몸을 구겨야 다 같이 앉을 수 있어요. 누울 때는 자리 배분을 잘해야 해요. 먼저 누운 이들은 두 다리를 들어 옷장에 기댑니다. 그래야 머리 위에 다른 동료가 누울 자리가 생기기 때문이죠. 몸을 뒤척이다 서로 부딪히기도 일쑤예요. 3.636㎡(1.1평)을 9명이, 2.314㎡(0.7평)을 5명이 쓰는 학교도 있답니다.


방을 정리하면 공간이 생기지 않겠냐고요? 저희는 음식 조리와 청소만 하는 게 아니에요. 일과를 적은 일지도 작성 합니다. 기타 문서 작업과 온라인 교육을 받기 때문에 컴퓨터는 치울 수 없어요. 작업복은 매일 빨아요. 건조대에 말려 둬야 다음 날 일하지 않겠어요. 옷, 소지품, 세면도구를 보관할 옷장도 마찬가지이고요. 사무공간과 휴게공간을 분리하면 좋겠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아요.

왼쪽은 경남 창원 한 학교 지하에, 오른쪽은 대전 한 초등학교 1층에 위치한 휴게실. 민주노총

휴게실이 지하에 있으면 고역입니다. 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진동하는 음식 냄새에 머리가 깨질 것 같아요. 모두가 두통약을 끼고 삽니다. 휴게실이 지상에 있는 학교로 옮겨간 동료가 한번은 전화를 했어요. “언니, 머리가 하나도 안 아파. 빨리 나와”라고 하더군요.    

지난 6월 휴게실 벽에 걸린 옷장이 조리사들을 덮친 사고를 기억하시나요. 4명이 다쳤습니다. 그중 한 명은 중상을 입고 하반신이 마비됐습니다. 벽에 옷장을 제대로 부착하지 않은 데 사고 원인이 있겠죠. 하지만 바닥에 있어야 할 옷장이 벽에 달린 이유를 먼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남 얘기 같지 않습니다. 저희도 얼마 전까지 머리 위에 공기청정기가 있었거든요.
왼쪽은 대전 한 학교 급식 조리사 휴게실. 책상, 컴퓨터, 옷장 등이 놓여있다. 오른쪽은 대전의 또 다른 학교 샤워실. 샤워실과 화장실이 분리되지 않았다. 민주노총

개선이 급한 곳은 따로 있어요. 샤워실입니다. 샤워실은 급식 조리사들에게 필수에요. 씻지 않고는 집에 갈 수 없어요. 하루에도 여러 번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어요. 식판에 남은 음식물을 치우고, 급식실 하수구를 매일같이 파내야 합니다. 이때 음식물이 얼굴, 작업복 할 것 없이 튀어요. 몸은 땀에 절고요. 근데요, 인원에 비해 샤워 수전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19명이 수전 1개로 어떻게든 샤워를 해야 하는 곳도 있어요. 전에 일했던 학교는 샤워실에 더운물이 안 나왔습니다. 하는 수 없이 급식실에서 물을 끓여 식힌 뒤 써야 했죠. 샤워실, 화장실을 남자 조리사와 같이 사용하기도 해요.

서울시가 정한 1인당 휴게 적정 면적 5㎡(1.51평)까지는 바라지도 않아요. 2㎡(0.6평)만이라도 지켜줬으면 좋겠어요. 헌법재판소는 1인당 2㎡를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할 만큼 좁은 공간’의 기준으로 봅니다. 인원수에 맞춘 샤워 수전, 남녀 분리된 화장실을 바란다면 지나친 욕심일까요. “여사님께서 이해해 주세요, 참아주세요”. 저희는 언제까지 이런 말을 들어야 하나요. 

정진용, 정윤영 기자 jjy4791@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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