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익 그리고 이재영…양극화 시대 보수와 진보 [기자수첩]

최근 자택에서 사망한 전두환 전 대통령은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사람이다. 1980년 서울의 봄과 광주를 짓밟은 독재자이지만 그가 집권했던 80년대 초반은 경제 상황은 높은 성장과 물가 안정으로 호황을 누렸던 시기였다. 

사실 80년대는 세계 경제가 유례없는 호황기를 보냈기에 누가 집권을 했던 경제 상황은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하지만 전두환 정권의 경제 초석을 다져놓은 김재익 수석이라는 존재는 한국 경제사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그는 1983년 발생한 미얀마 아웅 산 묘소 폭파 사건으로 인해 안타깝게 사망했다는 점에서 그를 재조명하는 움직임은 지금도 여전하다. 많은 이들이 한결같이 그를 한국경제의 체질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인물이라고 평가한다. 김재익의 경제 안정화 정책 덕분에 80년대 후반 경제 호황이 가능했다는 분석도 있다.


김재익 경제수석은 당시 보기 드문 자유주의적 시장경제를 추구했던 경제관료다. 그는 1975년부터 박정희 정권 하의 경제기획원에서 근무했던 이력이 있지만 그의 경제철학과 박정희 정권의 경제정책(국가주도적 계획경제)은 상극이었다. 

하지만 1980년 전두환의 경제 담임교사로 차줄되면서 그의 인생은 달라지게 된다. 물론 김재익 수석은 전두환 군사독재정부에 호의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당시 주변에서 김재익 수석이 독재정권 관료로 들어가는 것을 만류하자 그는 “경제의 개방화와 국제화는 결국 독재체제를 어렵게 하고 시장경제가 자리잡으면 정치의 민주화는 자연히 따라온다”고 답했다고 한다.

적어도 그는 생전에 경제 정책만큼은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공포정치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었던 전두환 마저 김재익에게는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라며 신뢰를 보냈다. 덕분에 김재익은 박정희 정부 시절의 국가주도적 재벌 위주의 성장 정책을 지양하고 내수와 물가 안정화 정책 방안을 과감하게 추진했다. 

그가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미래를 바라보는 ‘선견지명’ 때문이다. 김재익 수석은 당시 정부가 17년 동안 사용하던 기계식 교환기를 바꿔 한국사회의 정보통신체제를 현대화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실패로 끝났지만 금융실명제 도입을 추진하기도 했고, 이것이 밑거름이 돼 YS(김영삼) 정부의 개혁에 발판을 마련했다. 

김재익이 자유주의 진영에서 최고의 전문가였다면 진보진영에서도 뛰어난 식견을 가진 ‘정책 브레인’이 있었다. 9년 전 세상을 떠난 이재영 전 진보신당(민주노동당 후신) 정책위의장이다. 이재영의 삶은 한국 진보정당 운동의 거대한 역사로 평가받는다. 그는 20대였던 젊은 시절 전두환 군사독재에 저항하면서 삶의 대부분을 진보정치 발전에 바쳤다. 1997년 국민승리21부터 민주노동당, 진보신당까지 그의 발자취는 90년대 이후 대한민국 진보정당사의 좌표였다. 

그는 열혈 진보정당인이지만 현실주의자였다. 운동권에 머물던 진보정당이 ‘민생을 책임질수 있는 정당’으로 성장하는데 그의 역할이 컸다. 현재 기성 정치권에서 시행하고 있는 복지정책(무상교육, 무상보육)도 이재영의 손에서 나왔다. 10년 전만해도 현실성 없다던 정책이 이제는 보수 여야 모두 수용하고 있다. 

김재익과 이재영, 한명은 경제관료이자 최고의 엘리트, 또 다른 한명은 풍찬노숙의 삶을 마다하지 않았던 진보정당인이다. 두 사람의 인생은 어쩌면 다른 길은 걸었지만 목표점은 뚜렷했다. 재미있는 것은 두 사람 모두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를 지향했다는 점이다. 즉 보수와 진보는 상극이 아니라 공존할 수 있는 가치이다. 메르켈 전 독일총리가 정치적으로 성장할 수 있던 배경은 자신의 반대편에 있던 이들을 포용하고 이들의 정책을 적극 수용했다는 점이다. 

코로나19 시대로 인해 사회경제적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부동산 자산은 고공행진하고 있으나 소상공인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은 암담하다. 현재 대한민국은 김재익의 선견지명과 이재영의 전략이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 싶다. 

유수환 기자 shwan9@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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