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누가 더 힘든가 겨루는 세상

[쿠키뉴스] 유수인 기자 = “아프냐, 나도 아프다.” 

2003년 방영된 드라마 ‘다모’에서 나온 이 대사는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된다. 속뜻은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내용이지만 요즘은 누가 더 힘든지를 겨루는 뉘앙스로 쓰이는 것 같다. “너만 힘든 게 아니”라는 식으로 말이다. 

코로나19 유행이 장기화되면서 우울증, 불안, 극단적 시도, 중독과 같은 정신과적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마음의 병’도 질환이라는 점을 알아가는 것은 긍정적 변화이지만 ‘정신이 약해서 그렇다’고 여기는 인식 탓에 아픈 사람들이 기댈 곳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정신과적 문제를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 돌리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눈에 보이지 않고 누구나 한번쯤 겪어봤던 감정이기 때문에 더 그렇게 여기는 것 같다. 마음의 병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스스로 극복하려고 아등바등 살아온 사람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여차저차해서 멘토를 만나 극복한 사람들과 달리 술과 같은 중독 물질에 기대는 사람들, 극단적 시도로 생을 마감한 사람들은 힘들다고 말할 힘조차 없는 이들이다. 국내 ‘알코올 사용장애’ 전체 진료인원의 70% 이상이 40~50대 이상 중년층이라는 점을 보면 젊은 시절 마음의 고충을 ‘술’로 풀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알코올 중독은 젊었을 때부터 시작되지만 암, 간질환 등 신체적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하는 40‧50대가 돼서야 금주 치료 등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극단적 시도자 대부분은 중독 상태이다.

최근 20‧30대 젊은층들이 우울증을 호소하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다는 언론보도가 쏟아지고 있다. 술에 기대는 청년층도 늘고 있다. 이들이 왜 힘들어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부정적으로만 바라본다면 20~30년 후 대한민국의 모습은 지금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지금 20‧30대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면 이후 40‧50대의 극단적 선택과 중독을 예방함으로써 막대한 사회경제적 피해도 막을 수 있다. 

또 정신적 문제도 신체적 손상처럼 손상 이유, 손상 정도, 사람의 치유 능력에 따라 극복 기간과 정도가 달라진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내가 극복했다고 해서, 안 힘들다고 해서 남도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시간이 더 필요할 수 있고 혹은 의학적 치료가 필요할 수 있다. 따라서 정신과에 다니는 것을 이상하게 볼 필요도 없다. 

이는 본인에게도 해당되는 얘기다. ‘다른 사람보다 약해서 그렇다. 나는 원래 이렇다’는 식의 사고는 불필요하다. 힘들다면 병원이나 상담센터를 찾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주변인의 시선이 영 불편하다면 공공, 민간영역에서 지원하는 전화상담에 연결해보자. 고충을 털어놓는 것으로도 치료는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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